[최성환 칼럼] "삼성 떠난다" 가짜뉴스 솔깃한 까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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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성환 고려대 경제학과 객원교수
입력 2021-02-07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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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성환 교수]




지난달 중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옥중 특별 회견문’이라는 제목의 글이 온라인상으로 유포되었다. 삼성전자는 즉각 "이 부회장이 직접 옥중 회견문이란 것을 작성한 적이 없다"는 공식 입장을 밝히면서 "누군가가 악의적으로 작성한 가짜뉴스"라고 말했다. 삼성전자가 공식적으로 밝히기 전에도 대다수 일반인들은 회견문을 읽으면서 이미 가짜뉴스라는 생각이 들었을 것이다. “삼성에게 80억이 돈입니까”, “제 개인 돈으로 지원했어도 뇌물은 변함이 없었을 것”, “이 모든 일들에 대한 책임을 진다는 게 솔직히 이해되지 않습니다” 등의 어처구니없는 내용에다 띄어쓰기와 문법적 오류도 적잖이 눈에 띄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뒷부분으로 가면 매우 설득력이 있을 뿐 아니라 공감이 가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일부를 생략하면서 순서를 바꾸면 가짜뉴스의 저자가 하고 싶은 말의 핵심을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할아버님과 아버님의 노력으로 이룩한 삼성을 글로벌 경쟁에서 낙오시킬 수 없습니다. 기업을 한국에서 경영하기는 너무 힘든 것 같습니다. 이제 이 나라를 떠나려고 생각합니다. 그룹의 본사부터 제3국으로 옮겨 가겠습니다. 마음껏 나래를 펼칠 수 있는 친기업의 나라로 가서 세계를 선도하는 기업으로 키우겠습니다.”

사실 삼성이 본사를 외국으로 옮기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이 같은 우려를 분명하게 전달하고자 한 것이 가짜뉴스 저자의 의도가 아니었을까. 삼성이 없는 한국 경제를 생각해 보라. 물론 몇몇 대목에 지나치게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기업인과 전문가를 포함한 수많은 사람들이 가짜뉴스인 줄 알면서도 그 행간을 읽고 고개를 끄덕였다면 귀담아들을 만한 가치가 있을 것이다.

2019년 1월 영국의 글로벌 가전업체 다이슨이 본사를 싱가포르로 이전할 계획이라는 이야기가 나왔다. 2018년 10월 전기차 생산공장을 싱가포르에 건설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한 지 3개월 만이었다. 무선진공청소기와 헤어드라이어가 우리나라에서 선풍적 인기를 끄는 등 영국 제조업의 자존심이라고 할 수 있는 다이슨의 본사 해외이전 계획은 영국을 발칵 뒤집어 놓았다. 영국을 대표하는 제조업체 ARM(반도체 설계)과 재규어 랜드로버(자동차 제조)가 각각 일본의 소프트뱅크와 인도의 타타자동차에 팔려간 후 거의 유일하게 남은 영국의 제조 대기업이었기 때문이다. 영국의 경제일간지 파이낸셜타임스는 "제임스 다이슨을 영국의 대표 창업가이자 발명가로 생각하고 있는 영국 정부와 국민들에게 엄청난 충격을 안겨 주고 있다"고 보도했다.

더욱이 다이슨의 창업자 제임스 다이슨은 그간 브렉시트(Brexit∙영국의 유럽연합 탈퇴)의 적극적인 지지자였다. 그랬던 그가 막상 브렉시트가 임박하자 외국으로 탈출하겠다는 것이었으니 배신자 또는 위선자라는 비난이 쏟아졌다. 싱가포르는 2018년 10월 유럽연합(EU)과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했기 때문에 브렉시트 후폭풍을 피할 수 있는 곳이었다. 여기다 싱가포르로 옮기면 소득세∙법인세와 상속세 등 세금을 절약할 수 있다는 셈법이 나오기도 했다. 특히 영국의 상속세는 40%인 반면, 싱가포르에는 상속세가 없기 때문에 1947년생인 제임스 다이슨이 상속세를 피하기 위한 꼼수라는 의심이었다.

이에 다이슨은 갈수록 중요해지고 있는 아시아지역에 집중하기 위해 짐 로완 최고경영자(CEO) 등 일부 고위직이 싱가포르에서 일할 계획일 뿐 본부를 이전하는 것은 아니라고 공식적으로 부인하고 나섰다. 하지만 5개월 뒤인 2019년 6월 제임스 다이슨은 싱가포르의 최고급 아파트를 사상최고액인 7380만 싱가포르 달러(640억원)에 구입했다. 전기차 공장 건설과 본사 이전 계획에 이어 100% 지분을 가진 창업자의 주거지 구입까지 걸린 기간은 불과 8개월로, 싱가포르 이전은 시간문제로 보였다. 그러나 4개월 뒤인 2019년 10월 다이슨은 전기차 프로젝트 포기를 발표한 데 이어 구입했던 아파트를 100억원 이상 손해를 보고 팔았다. 이후 코로나19 사태까지 터지면서 다이슨의 본사 이전 계획은 더 이상 진전되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다이슨의 사례는 기업 본사의 해외 이전이 쉽지 않음을 잘 보여주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업 본사의 해외 이전 사례는 수도 없이 많다. 대표적으로 미국의 버거킹(패스트푸드)이 캐나다로, 버드와이저(맥주 제조)가 벨기에로, 메드트로닉(의료장비 제조)이 아일랜드로, 럭키스트라이크(담배 제조)가 영국으로 본사를 옮겼다. 2014년 버거킹이 캐나다로 본사를 옮길 때는 미국 의회에서 출국세를 부과하겠다는 법안이 발의되기도 했다. 한 기업의 본사가 해외로 이전할 경우 세금은 물론 고용과 기술 등에서 엄청난 파급효과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기업 본사의 해외이전에는 다 이유가 있을 것이다. 표면적 이유는 해외시장 개척과 성장을 위한 교두보, 무역장벽 해소, 해외 투자 유치 등일 것이다. 이와 함께 세금 회피 또는 규제 회피, 고비용∙저효율 탈피, 기술 및 인력 등과 같은 인프라 환경, 반(反)기업 정서를 피해 친(親)기업 성향 국가로의 이동 등도 빠지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무작정 애국심에 호소하거나 비난만 할 것이 아니라 떠나려는 근본적 이유를 찾아 해소하려는 노력이 정부와 기업, 민간 차원에서 필요할 것이다. 만약 다이슨이 향후 어렵사리 영국 탈출에 성공한다면 회사 역사를 기술할 때 분명히 ‘다이슨의 영국 탈출기’를 넣을 것이다. 삼성이 ‘삼성의 한국 탈출기’를 쓰지 않도록 우리는 지금 무엇을 해야 할까.

/ 최성환 고려대 경제학과 객원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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