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스페셜]중국의 또 다른 급소 '수입산 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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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이재호 특파원
입력 2021-03-18 0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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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종자 문제 해결, 핵심 과제로 부상

  • 美 등 서구와 갈등 속 안보 이슈로

  • 농가소득 증대 내수중심 전략 화두

  • 종자 순수입국, 수출보다 2배 이상

  • 연구개발 규모·역량 선진국 못미쳐

[그래픽=이재호 기자 ]


중국 헤이룽장성 커산(克山)현은 4000만㎡(약 1200만평) 면적 농지에서 연간 35만t의 씨감자(종자용 감자)를 생산한다.

하지만 '중국 씨감자 고장'이라는 별칭이 무색하게 전체 재배지의 절반에서는 미국산 유전자변형(GMO) 감자 품종인 애틀랜틱(Atlantic)이 자라고 있다.

2015년 한 포대에 3500위안(약 61만원)이던 일본산 브로콜리 종자 가격은 이후 꾸준히 올라 지난해 포대당 2만 위안까지 뛰었다.

같은 기간 중국 내 브로콜리 가격 변동은 거의 없었다. 일본산 종자에 의존하던 브로콜리 농가는 직격탄을 맞았다.

러시아는 올해 1월 1일부터 해바라기씨와 유채씨 수출 관세율을 기존 6.5%에서 30%로 대폭 인상했다.

중국에서 식용 및 공업용으로 사용되는 해바라기씨와 유채씨의 50%가 러시아산이다. 대체 수입원도 마땅치 않아 울며 겨자 먹기로 높은 관세를 감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중국이 우량 종자 확보와 관련 산업의 경쟁력 강화에 사활을 걸었다.

지난해 말 중앙경제공작회의에 이어 올해 첫 정책 발표였던 '중앙 1호 문건', 향후 5년의 국가 운영 전략이 담긴 14차 5개년 계획(14·5계획)에 이르기까지 종자 문제가 빠짐없이 언급되고 있다.

대외적으로는 식량 안보와 직결된 사안이라는 판단에서다. 중국인의 주식인 쌀과 밀은 거의 자급자족이 가능하다. 다만 사료용 농작물과 채소, 약용 식물의 종자는 수입 의존도가 심각하다.

미국 등 서방 세계와의 갈등이 격화될 경우 종자 자원이 자칫 대중 압박 수단으로 활용될 수 있다.

대내적으로는 쌍순환(雙循環)으로 대표되는 내수 중심 발전 전략의 주요 화두 중 하나다.

내수가 확대되려면 소비가 증가해야 하고, 소비가 늘어나려면 소득이 증대돼야 한다. 특히 대도시 주민보다 소득 수준이 낮은 농민들의 주머니를 채워 주는 게 관건이다.

고부가가치 종자 보급은 농가 소득을 끌어올리고 농민들의 도시 이주를 막을 수 있는 방편이다.

글로벌 기업들이 장악하고 있는 중국 종자 시장에서 로컬 기업 점유율은 7%에 불과하다. 중국은 스스로 공언한 대로 '판선장(翻身仗·낙후하고 불리한 처지를 타개하기 위한 부활전)'에 성공할 수 있을까.

◆'종자'가 목을 조를 수 있다

지난해 12월 16~18일 개최된 중앙경제공작회의에서는 8대 중점 임무에 '종자 문제 해결'이 포함됐다.

육종(신품종 개발 및 기존 품종 개량) 자원의 보호·이용 강화와 종자 은행 건설 등이 골자다.

중국신문망은 "식량 안보를 위한 조치"라며 "중앙경제공작회의에서 종자 문제가 집중 부각된 것은 이례적"이라고 평가했다.

쉬훙차이(徐洪才) 중국정책과학연구회 부주임은 "종자는 농업의 반도체와 같아 수입에 의존하면 식량 안보에 불리하다"며 "중국인의 손으로 밥그릇을 단단히 쥐고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같은 달 28~29일 열린 중앙농촌공작회의에 참석한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농업 과학기술의 자립자강을 견지하고 관건적 핵심 기술 연구에 몰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춘제(春節·음력 설) 직후인 지난달 21일 발표된 올해 1호 정책 문건은 삼농(농업·농민·농촌) 문제가 여전히 중요하다며 식량 안보 수호와 종자 산업 쇄신을 주요 과제로 꼽았다.

리커창(李克强) 총리는 지난 5일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 개막식에서 올해 중점 업무 중 하나로 종자 자원의 보호와 우량 품종 선정·육성·보급을 제시했다.

리 총리는 14·5계획을 설명하면서도 "향촌진흥을 전면 추진하고 신형 도시화 전략을 보완해야 한다"며 종자의 안전 확보를 거론했다.

천밍(陳明) 중국사회과학원 정치학연구소 연구원은 "중국 종자 시장에 대한 글로벌 공룡들의 통제력이 무서울 정도"라며 "수입산 종자가 우리 목을 조르는 것은 아닌지에 대한 우려가 제기된다"고 지적했다.

탕런젠(唐仁健) 농업농촌부 부장은 양회(전인대·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 기간 중 종자 이슈와 관련해 재미있는 언급을 했다.

탕 부장은 "생존에는 지장이 없지만 품질의 경우 여전히 격차가 있다"고 표현했다.

그는 "가장 기본이 되는 식량인 쌀과 밀은 완전히 중국산 종자이지만 옥수수와 대두(콩)의 단위 면적당 생산량은 세계 수준의 60%도 안 된다"며 "피망과 토마토 등 채소도 수입산 종자가 비교적 많은 편"이라고 부연했다.

◆한국산 종자 가격 중국산의 20배

중국의 종자 산업 경쟁력은 어떤 수준인가. 우선 중국은 종자 순수입국이다.

2019년 기준 중국의 종자 수입량은 6만6000t, 수출량은 2만5100t이다. 금액으로는 수입액이 4억3500만 달러(약 4900억원), 수출액은 2억1100만 달러다.

미국산이 1억2700만 달러로 가장 많고 이어 일본, 덴마크, 칠레, 태국, 독일, 캐나다, 프랑스, 이탈리아, 한국 등의 순이다.

품목별로는 채소 종자가 2억2415만 달러로 수입액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사료용 종자가 그 다음이다.

반면 해외로 수출되는 중국산 종자의 68%는 벼 종자다. 주로 파키스탄과 베트남, 스리랑카 등에 수출되는데 부가가치가 낮다.

수입산 종자의 경우 국가별로 특히 많이 수입하는 품목이 있다. 예컨대 미국은 옥수수, 일본은 과일, 한국은 채소, 이스라엘은 고추 등이다.

중국이 자급자족이 가능하다고 자랑하는 옥수수는 최대 재배지가 화북 평야와 동북 지역인데 화북 평야는 미국의 다국적 종자 기업 아메리칸 뱅가드의 품종을, 동북 지역은 독일산 품종을 사용한다.

류펑쿠이(劉鵬魁) 후베이성 농업농촌청 주임은 "한국산 무 종자 가격은 중국산의 20배 이상"이라며 "한국산 무는 모양이 예쁘고 즙이 많으며 더 오래 저장할 수 있어 중국산에 비해 경쟁력이 높다"고 평가했다.

양톈위(楊天育) 간쑤성 농업과학원 소장은 "옥수수와 채소, 특히 고가의 농산물은 외국산 종자가 많다"며 "종자가 중국의 급소라고 한다면 아마도 이런 품목들일 것"이라고 말했다.

왕후이(汪暉) 칭화대 교수는 "중국에서 쓰이는 옥수수 품종은 대략 5종인데 3종은 외국계 합작사가, 2종은 중국 기업이 생산한다"며 "합작 기업의 경우 연구·개발(R&D)과 생산은 해외 전문가가 맡고 중국은 판매만 하는 시스템"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결국 외국 자본이 중국 종자 시장을 잠식하고 있는 셈"이라고 덧붙였다.

중국의 종자 시장 규모는 1192억 위안(약 20조7400억원)으로 전 세계의 3분의 1에 달한다. 중국 내 종자 기업은 4000개가 넘는데 자체 개발 역량을 갖춘 곳은 100곳 정도다.

지난해 중국 증시에 상장된 50개 종자 기업이 지출한 R&D 비용은 15억 위안으로, 세계 최대 종자 기업인 몬산토 R&D 비용의 7분의 1에 불과했다.
 

지난해 2월 중국 하이난성 싼야에 소재한 중국농업과학원 유료작물연구소가 재배한 대두를 노동자들이 채취하고 있다.[사진=신화통신]


◆대두·돈육도 위험, 해법 마련할까

중국의 식량 안보 위기를 상징하는 농작물은 대두다. 지난해 중국의 대두 생산량은 1960만t이었다. 반면 수입량은 1억33만t으로 처음 1억t을 넘어섰다.

수입 의존도가 90% 이상인데 최대 수입국이 미국이다. 미·중 갈등이 심화하는 와중에 대두가 중국의 약한 고리로 부각됐다.

중국은 난국을 타개하기 위해 재배 면적을 넓히고 종자 개량에도 박차를 가했지만 아직 성과는 미미하다. 중국의 토지 면적 단위인 한 무(畝·666.7㎡)당 대두 생산량은 130㎏으로 미국의 60%에도 못 미친다.

종자 연구 전문가인 류융중(劉永忠) 화중농업대 교수는 "중국은 대두 원산지라 종자 연구에 큰 이점을 갖고 있는데도 실제 연구 성과는 많이 부족하다"고 토로했다.

중국 소비자물가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돼지고기 가격도 종자 문제와 얽혀 있다.

베이징의 한 사료 기업 관계자는 "돼지와 소, 양 등 가축을 번식시키는 데 외국에서 들여온 생식 세포가 쓰인다"며 "가축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수입 의존도가 상당한 편"이라고 전했다.

차이옌(柴岩) 시베이농림과기대 교수는 "중국은 외국에 비해 종자 연구 비용이 적은 데다 여기저기 분산돼 있다"며 "연구 목표도 불확실하고 이를 진두지휘할 컨트롤타워 역시 부재한 상태"라고 꼬집었다.

쑨롄쥔(孫連軍) 중국농업대 교수는 "미국 등 종자 산업 선진국은 기업이 R&D의 주체인 반면 중국은 학계가 연구를 주도해 상업화가 어렵다"며 "정부는 국유기업과 연구기관, 민영기업을 차별하지 않는 공정한 시장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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