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선거철만 되면 멀어지는 '금융 허브'의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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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영훈 기자
입력 2021-04-01 1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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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책은행의 지방 이전은 매번 선거 때마다 반복되는 해묵은 이슈 중 하나다. 이번에도 4.7 보궐선거를 앞두고 국책은행을 비롯한 공공기관의 지방 이전 문제가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부산시장 여야 후보는 '금융중심지'를 명분으로 한 이전 관련 공약을 앞다퉈 내놓고 있다.

이는 단시간 내 민심을 잡기 위한 조치로 풀이된다. 만약 실현될 경우, 지역 내 부동산 가격을 비롯한 다양한 측면에서 긍정적 효과를 발생시키기 때문이다. 이는 일정 수준의 표를 끌어모으는 동력으로 작용할 수 있다.

그러나 넓은 시각에서 금융당국이 육성 중인 ‘아시아 금융허브’ 전략에는 치명적이다. 금융허브의 핵심 요건은 밀집된 인프라인데, 국책은행을 지방으로 분산시키면 이 부분에서의 경쟁력 약화가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금융권에선 시장 상황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공약이란 핀잔도 나온다. 기존 금융기능을 여의도로 더욱 밀집시켜도 모자랄 판에, 오히려 흩트리는 건 철저히 정치적 잇속만 고려한 처사란 지적이다.

이는 선거 시즌마다 연례행사처럼 반복돼 온 고질적인 패턴이다. 작년 4.15총선 당시에도 관련 이슈가 수면 위로 부상하면서 시장을 한 차례 크게 어지럽혔던 적이 있다.

그러는 사이, 한국의 ‘금융 허브’ 경쟁력은 더욱 악화되고 있다. 외국계 금융사들의 한국 진출은 갈수록 줄어들고, 떠나는 곳은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다. 지난 5년간 외국계 은행의 국내 점포 수는 10% 가량이 줄었고, 최근엔 급기야 씨티은행의 철수설까지 불거졌다. 월스트리트를 대표하는 투자은행(IB)인 골드만삭스를 비롯한 맥쿼리은행, UBS, RBS, BBVA 등은 이미 한국을 떠난 지 오래다. 작년엔 푸르덴셜생명과 악사손해보험도 방을 뺐다.

이 틈을 타 주변 경쟁국가들은 빠르게 치고 나가고 있다. 일본, 싱가포르 등은 정책금융기관을 수도에 집결해 금융경쟁력을 끌어올리고 있다. 강제로 국책금융기관을 이전하거나 이전하려는 움직임도 없다. 바로 이 부분이 우리나라의 미래 경쟁력 악화에 대한 우려를 키우는 대목이다.

불행 중 다행인 건, 이러한 상황 속에서도 정부와 서울시가 관련 육성 방안을 활발히 내놓고 있단 점이다. 해외 금융기관이 여의도에 사무공간을 마련하면 임대료의 70%를 지원해주고 구심점 역할을 할 '국제금융오피스'도 마련했다. 이 같은 노력에 힘입어 서울시의 최근 금융경쟁력은 세계 16위권까지 개선되기도 했다.

그러나 정치권에서 금융을 한낱 도구로 활용하려는 움직임이 앞으로도 계속된다면, 더 이상의 유의미한 발전은 기대하기 힘들다. 오히려 관련 경쟁력이 퇴보하게 될 가능성이 더 높다. 금융허브는 국내 금융 산업이 퀀텀점프를 이룰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국가적 위상과도 직결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이 기회를 효율적으로 잡기 위해선, 매 선거 때마다 고개 드는 ‘시대착오적 발상’은 반드시 근절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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