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준석, 과학의 시선] 윤석열 대선운세 잠룡관상 뉴스 판치는 까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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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준석 과학작가, ‘나는 과학책으로 세상을 다시 배웠다’ 저자
입력 2021-04-07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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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준석 작가, ‘나는 과학책으로 세상을 다시 배웠다’ 저자]


[최준석, 과학의 시선] 서울 서대문자연사박물관 전시실을 돌아다니는데 가장 많이 들려온 말은 “엄마”였다. 그 다음으로 많이 들린 말은 “아빠”였고. 서대문자연사박물관은 지방자치단체인 서울 서대문구가 만들었다. 집에서도 그리 멀지 않아, 지난 4월 2일 찾아갔다. 코로나19 대유행으로 예약을 하고 가야 했고, 가보니 어린이들 목소리만이 들렸다.

자연사박물관에 가본 건, 전시보다는 다른 걸 더 확인하기 위해서다. 아이 말고, 어른은 자연사박물관에 얼마나 오는지가 궁금했다. 창구직원은 “어른도 많이 온다”라고 말해줬으나, 들어가자마자 마주친 거대한 공룡 화석 ‘아크로칸토사우루스’ 주변에는 예상했던 대로 아이들이 절대 다수였다. 성인은 보였으나, 그들은 아이들과 동행한 부모들이었다. 아이를 동반하지 않은 성인은 딱 두 사람 보았다. 친구 사이로 보이는 20대 중반 여성들이었다. 서대문자연사박물관은 어린이 박물관이 아니다. 그런데도 사실상 어린이와 학생이 주요 이용자다. 어른들은 어디에 갔을까?

자연사박물관이라는 곳은 어릴 때 가는 곳이지, 일정한 나이가 넘으면 발을 끊는 곳이라고 우리 머릿속에는 입력이 되어 있다. 아이가 10대 중반이 되면 자연사박물관이나 과학관은 졸업하고 다른 데로 간다. 문화 예술 전시장과 공연장이 새로운 관심의 공간이다. 미술전시를 보려 국립현대미술관으로, 조성진과 손열음의 피아노 연주를 보러 예술의전당을 찾는다. 감수성이 예민하고 빠른 사람일수록 과학관을 일찍 졸업한다. 그렇지 않으면 덜떨어진 사람이다. ’티라노사우루스 렉스‘(공룡 이름)를 뒤로 하고 ’오이디푸스 렉스‘(고대 그리스 희곡 작가 소포클레스 작품)를 찾아가는 건 이 시대 문화 현상이다(<원더풀 사이언스> 책 인용)라는 말이 있는 걸 보니, 서양도 그런 모양이다. 그런데 어른도 ’자연사박물관‘을 찾고 전시물을 즐길 만한 이유가 있지 않을까?

얼마 전 동네 주민 몇 명과 어울릴 기회를 가졌다. 서울 북악산 뒤편의 산동네에 이사 온 지 5년 이상 지나서 만들어진 첫 자리다. 수십년 전, 그러니까 1968년 김신조 등 북한의 무장 공비 일당이 청와대 공격을 위해 이 동네를 지나갔을 때부터 산 사람이 있어, 동네의 옛 얘기를 들었다. 세검정 쪽에서 보면 국민대 쪽과 불광역으로 가는 두 갈래 길이 있고, 이 중에서 국민대로 가려면 북악터널을 지나야 한다. 그러니까 북악터널이 뚫리기 전이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은 평창동 주택가가 자리 잡은 이 지역은 서울 도심에서 가까우나, 터널이 없으니 외진 곳이었다. 북악터널이 뚫린 후에야 평창동은 오늘날 모습을 지니게 되었다.

1971년 북악터널을 뚫을 때 얘기다. 주민 한 사람에 따르면 당시 평창동에는 무속인이 많이 살았다. 북악터널을 뚫는다고 하니, 이들이 들고 일어났다. 북악터널 쪽은 용의 머리에 해당하는데, 거기에 구멍(穴)을 낸다는 건 아니 될 일이라는 주장이었다. 그럼에도 박정희 정부는 터널 공사를 했고, 공사비 조달을 위해 평창동 개발 사업을 했다. 당시에는 주택은행이라는 정부 소유 은행이 있었는데, 주택은행이 나서 평창동 땅들을 큰 덩어리로 잘라 분양을 했다. 그 자리에 오늘날 큰 단독주택가가 자리 잡았다. 그 자리에 살던 무속인들은 미아리 고개로 옮겨갔다고 한다.

북악터널과 평창동 이야기를 길게 하는 이유는, 그 얘기를 듣던 동네 사람 일부의 반응 때문이다. 무속인들이 ‘용의 머리’ 운운하면서 터널 공사에 반대했다는 얘기를 듣던 일부 사람이 무속인의 주장에 일리가 있다는 식으로 말했다. “평창동이 기가 센 곳이다. 사업하는 사람은 이곳이 좋지 않다. 대신 예술가들이 살기에는 좋다. 평창동에 예술가가 많이 사는 건 그 때문이다.” ‘기’라는 건 따져보면 근거가 없다. 동아시아의 옛 전통이 세상의 작동원리를 설명하기 위해 만들어낸 가설의 하나이나, 과학적이지 않다.

장삼이사(張三李四)만 비과학적인 이야기를 일상적으로 하는 게 아니다. 먹물들도 그렇다. 요즘 웃기는 건 언론들의 ‘○○○ 후보 운세’ 운운하는 보도다. 서울, 부산 시장 보궐선거가 실시되고, 다음 대통령 선거가 내년 3월 9일로 1년도 남지 않으면서, 후보들을 조명하면서 그들의 사주와 선영의 풍수 관련한 기사가 계속 보인다. 최근 읽은 신문에서 기사를 보았으나, 이런 보도가 얼마나 많은지 확인하기 위해 구글에 들어가서 확인해봤다. 가령 ‘윤석열 사주 운세‘란 키워드를 검색해 보았다. 그 일부 기사의 제목을 보면 이렇다.

“윤석열 선영은 ‘세종’시 ‘장군’면… 대선 운세는?”(조선일보)
“관상으로 보는 대권 잠룡 10인의 운명”(월간중앙)
“윤석열 검찰총장, 믿을 사람은 띠동갑 아내“(경기일보)
“21년 운세 분석 야권 잠룡, 대통령 누가 될까? 윤석열, 홍준표, 안철수”(뉴스1)
“[우호성의 사주 사랑(舍廊)]- 윤석열 검찰총장은 왜 윗선과 충돌하는가“(영남일보)
“사주팔자로 살펴본 윤석열:국민뉴스“(국민일보)

신문과 잡지는 명색이 지식인이라는 사람들이 만드는 지식 상품이다. 그런데도 이렇다. 개념 없이 혹세무민한다. 박근혜씨가 대통령 당선이 유력할 때는 ‘무궁화(槿) 피는 동산에 학이 나네’라고 했던 역술인 말이 풍미했던 게 기억난다. 그런데 요즘은 또 ‘박근혜 대통령 석방 시기 예측‘이라는 게 유튜브에 굴러다닌다. 한국인이 비과학적이다, 과학적 사고가 부족하다라는 말을 듣는 건, 이런 것 때문이다.

사주와 관상은 재미로 보는 건데, 뭘 그걸 갖고 그러냐고 할지 모르겠다. 많은 이는 재미로, 웃자고 말할지 모르나, 그렇지 않은 사람도 많다. 명당 찾아 아버지 어머니 묫자리를 옮기고 옮긴 정치인 사례가 기억나지 않는가?

심지어는 과학기술부 장관으로 일한 사람이 ‘유사과학’을 떠드는 일도 있었다. L모씨는 지난해 10월 15일자 한 신문 기고에서 코로나 바이러스와 싸우는 자신만의 과학적 방법을 제시했다. 그는 “(삼국지의) 조조와 손권처럼, 코로나 바이러스와 그의 천적 미생물이 서로 싸우는 소위 ‘미생물 적벽대전’을 일으키자. 인류는 음이온과 원적외선 등 자연계 에너지를 동남풍처럼 활용해서 천적 바이러스를 도와주면, 코로나 바이러스를 궤멸시킬 수 있을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음이온, 원적외선, 미생물 적벽대전이라니, 어처구니없어 입을 다물 수 없었다. 음이온이 몸에 좋다는 건 과학적 근거가 없는 얘기이며, 원적외선 효과 운운은 엉터리 과학이라고 알려져 있다. ‘미생물 적벽대전’은 역사소설을 많이 읽은 탓이다.

과학적인 사고란, 회의적인 사고다. 쉽게 받아들이지 않고 의심하는 사고다. 과학자가 말하는 내용이라고 해서 그냥 믿으면 과학적인 사고가 아니다. 그래서 ‘과학’과 거리가 먼 ‘종교’를 보면 과학이 잘 보인다. 종교는 뭐라고 하느냐? 먼저 믿으라고 말한다. “믿습니다”를 강조한다. 과학은 다르다. 믿지 않는다. 받아들일 수 있는 근거가 제시되지 않는 한 믿지 않는다. 이런 회의적 사고를 잘 설명하는 책들이 있다. <왜 사람들은 이상한 것을 믿는가>(마이클 셔머) <스켑틱>(〃) <악령이 출몰하는 세상>이 유명한 책들이며, 최근에 나온 책들로는 <과학이라는 헛소리>(박재용) <유사과학 탐구영역>(계란계란)이 좋다.

책이 잘 머리에 들어오지 않는다면, 과학관과 자연사박물관을 찾아보길 권한다. 어려서 가본 자연사박물관, 혹은 아이들을 데리고 갔던 박물관과는 다른 차원에서 전시물들이 눈에 들어올 수 있다고 본다. ‘기’와 ‘명당’과 같은 뜬구름 잡는 이야기는 이곳에 없다. 우리의 삶과, 자연에 관한 심오한 이야기가 이곳에는 빼곡히 있다. 과학적이고 회의적인 시선에 근거해서 수집한 증거들이다. 특히 50대 이상은 다시 자연사박물관(과학관)을 찾을 때다. 이들은 학교를 졸업한 지 오래되어, 과학적 사고에 취약하다. 전통에 많이 노출되어 있기도 하다.

내가 가본 서울 서대문자연사박물관은 생각보다 훨씬 콘텐츠가 좋았다. 깊이 들여다볼 게 많았다. 가령 1층의 공룡 골격 화석을 보면, 공룡과 ‘유사 공룡’ 구별법이 나와 있다. 공룡 비슷하다고 다 공룡이 아니다. 예컨대 악어처럼 어기적어기적 걷는 건 공룡이 아니다. 공룡은 사람처럼 무릎 관절이 펴져 있다. 아랫다리뼈와 윗다리 뼈가 일자다. 일반 파충류는 무릎이 펴지질 않는다. 그리고 땅이 아니라 바다에 살면 공룡이 아니다. 바다에 살았던 어룡은 공룡이 아니라고 한다.

공룡과 ‘일반파충류’를 구별할 줄 알아서 뭐하느냐? 가령 이런 거 아닐까? 인류가 나중에 멸종한 뒤에 후대의 고생물학자가 우리와 동시대에 살았던 침팬지 화석을 보았을 때 ‘인간’과 ‘침팬지’를 구별하지 못하면 어떨까? 우리가 죽어서도 속이 쓰리지 않을까.

서대문자연사박물관 2층에는 스트로마톨라이트 화석들도 있다. 경산에서 나온 대형 스트로마톨라이트는 아름다웠다. 스트로마톨라이트는 지구에 산소를 최초로 뿜어낸 식물(시아노박테리아)이 남긴 화석이다. 내가 둘러보고 있을 때, 어린 딸을 데려온 아빠는 그걸 보더니 “스트“라고만 이름을 읽어보고, 낯선 화석 이름을 끝까지 발음하지도 않은 채 그 자리를 떠났다. 그가 그런 건, 전시물에 대한 설명이 부족한 탓이 있다. 모르기 때문이다. 그의 삶과, 오래전 이 스트로마톨라이트가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를 얘기 들을 수 있었다면, 그 화석에서 그렇게 빨리 등을 돌릴 수는 없었을 거다. 이런 게 무수히 많다. 장수에 관심이 있다면 실러캔스라는 물고기를 보고 그 비결을 찾아보기 바란다. 그리고 한번에 전시콘텐츠를 모두 보려는 건 내가 해보니, 어리석은 방법이다. 시간이 날 때마다 찾고 가서 전시물의 이야기와 나를 연결해 보는 게 필요하다. 중년, 자연사박물관을 다시 찾을 때다.
 

[서울서대문자연사박물관 1층의 공룡 골격화석]

[경북 경산에서 나온 스트로마톨라이트 화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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