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씨네 리뷰] 안소니 홉킨스·올리비아 콜맨, '더 파더'를 완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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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송희 기자
입력 2021-04-08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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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일 개봉한 영화 '더 파더'. [사진=영화 '더 파더' 스틸컷]
 

"낭만적이네요. 이 조명, 온도, 습도···."

한 예능 프로그램에서 출연자가 남긴 말이었다. 장소, 조명, 온도 등 하나하나의 요소로 어떤 분위기가 형성된다는 의미였다.

그의 말대로 대개 추억은 여러 요소가 뒤섞여 만들어진다. 그날의 날씨, 그날의 기분, 그날 먹은 음식이나 만난 사람들 등등. 모든 요소가 그날의 기억이 되는 셈이다. 영화도 마찬가지다. 어떤 영화는 작품이 가진 본질보다 다른 요소들로 재미를 가르기도 한다. 혹평받은 영화가 '인생작'으로 등극할 때도 있고, '인생영화'가 다시 보니 형편없게 느껴질 때도 있다.

관객들도 필자와 같은 경험을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에 필자는 그날 영화를 만나기까지의 과정까지 녹여낸 '최씨네 리뷰(논평)'를 통해 좀 더 편안하게 접근해 보기로 했다. <편집자 주>


작아지는 부모님을 볼 때면 마음이 심란해진다. 문득 돌아보니 나도 부모님도 그런 나이가 됐다. 세상 제일가는 효녀는 아닐지라도 작은 등을 보며 홀로 다짐들을 늘어놓곤 한다. 아마 나와 같은 마음을 가진 이들이 많을 거다.

영화 '더 파더'(감독 플로리안 젤러)는 부모님의 작은 등만큼이나 마음을 무너트리는 작품이었다. 부모님의 자식으로서, 아이들의 부모로서 충분히 짐작 가능한 상황과 감정들이 보는 내내 괴로웠다.

80대 노인 안소니(안소니 홉킨스)는 런던의 한 아파트에서 노후를 보내고 있다. 괴팍한 성격 탓에 간병인들은 견디지 못하고 떠나버리고 딸 앤(올리비아 콜맨)만 그를 찾곤 한다. 그는 간병인 없이 홀로 잘 지낼 수 있다며 간병인을 거부하지만, 딸은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프랑스 파리로 떠나기로 했다며 또 다른 간병인을 구하겠다고 한다. 결국 안소니는 이를 받아들이기로 하지만 다음날 찾아온 딸은 말을 바꾸며 "아버지를 혼자 둘 수 없어 집으로 모셔왔다"라고 한다. 안소니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얼굴의 딸을 보며 큰 혼란을 겪는다. 그는 딸이 낯설게 느껴지기 시작하고 점점 현실과 사랑하는 딸, 그리고 자기 자신까지 의심하기 시작한다.

영화는 동명 희곡을 원작으로 한다. 프로리안 젤러는 '더 파더'를 비롯해 '더 마더' '더 트루스' '더 라이' 등 10편 이상의 연극을 집필한 유명 극작가로 이번 작품을 통해 장편 영화로 감독 데뷔했다. 단단한 짜임새를 자랑하는 '더 파더'는 집 안을 무대로 주인공 안소니가 치매를 앓으며 느끼는 정신적 혼란을 정교하게 풀어냈다. 연극적인 구성이지만, 공간과 인테리어 그리고 음악을 통해 영화적인 매력을 강조했다.

안소니가 사랑하는 딸과 자신을 의심하고 무너지는 과정은 여느 스릴러 장르 못지않게 긴장감 있게 그려진다. 그의 기억은 물론, 정보들이 흐트러지며 관객들 역시 그 혼란으로 뒤엉기고 만다. 치밀한 구성과 심리 묘사는 니와 관객들을 고통으로 밀어 넣는다.

프로리안 젤러 감독은 "작품에 녹아 있는 인간의 감정과 연결 공감의 정서는 공간적 배경을 뛰어넘는 보편적인 힘을 가지고 있다"라고 말한 바 있다.

그의 말처럼 관객이었던 나도 때로는 안소니로, 때로는 앤의 심정을 느끼곤 했다. 천천히 무너져내리는 안소니와 앤을 견디며 문득 스스로도 이 이야기의 일부가 되어있음을 깨달았다.

영화는 배우들의 명연기로 완성됐다. 안소니 홉킨스는 안소니가 느끼는 혼란부터 공포와 고통을 완벽하게 그려냈다. "처음부터 극 중 안소니를 이해하고 있었다"라는 그의 말이 허투루 느껴지지 않을 정도다. 딸 앤 역의 올리비아 콜맨의 연기도 훌륭하다. 점차 나약해지는 아버지를 보며 가족과 자신의 삶을 두고 고뇌하는 인물의 심리를 세밀하게 그렸다.

안소니와 앤이 느낀 공포와 고통이 이상하리만치 가까이 느껴졌다. 안소니든 앤이든 그 누구의 시선으로도 시간과 젊음, 그리고 관계의 덧없음과 나약함에 울적해진다. 치매를 앓는 아버지를 돌보는 것이 일상이 된 딸이 문득 치밀어 오르는 감정에 울음을 터트리는 장면과 기억이 뒤엉키며 공포를 느끼고 무너진 안소니의 모습이 가장 인상 깊다.

7일 개봉이며 러닝타임은 97분 관람 등급은 12세다. 제93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 남우주연상, 여우조연상 외 등 총 6개 부문에 이름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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