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재 칼럼-지금·여기·당신] 경제민주화(化)를 넘어서는 민주경제화(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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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재 수석 논설위원
입력 2021-04-12 1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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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경제학자 모리스 돕은 언젠가 이상적인 사회에서는 국민이 그들이 원하는 정부를 선택할 수 있고 그들이 원하는 상품을 소비할 수 있어야 한다고 쓴 적이 있다.”(보수·진보 매체를 넘나들었던 고(故) 정운영 칼럼니스트가 쓴 1988년 5월 15일자 한겨레신문 창간호 ‘경제민주화 방향과 과제’ 칼럼의 첫 문장)

오래된 학자의 말을 인용한 33년 전 글을 그대로 따온 이유는 요즘 민심을 말하기 위해서다. 돕 교수(1900~1976)의 말과 정운영 선생(1944~2005)의 글은 지난 7일 재·보선 결과를 설명한다. 나아가 내년에 치를 대선의 화두를 슬쩍 던져준다.

우리는 우리가 원하는 정부를 선택할 수 있다. 그러나 2021년을 사는, 그 미래를 살아나갈 많은 대한민국 국민은 원하는 상품(재산과 일자리)을 소비(또는 획득)하기 어려울 거라는 좌절감에 휩싸여 있다.

재·보선에서 뿜어져 나온 우리 민심의 기저에는 경제민주주의를 넘어선 경제공화주의가, 다시 말해 경제민주화(民主化)에서 더 나아가 민주경제의 공화(共和), 민주경제화(經濟和)가 자리하고 있는 듯하다.

◆그들이 원하는 정부
지난 7일 대한민국 1, 2위 도시인 서울과 부산시장을 뽑는 선거에서 야당인 국민의힘이 압승했다. 여당은 참패했다. 내년 3월 치러질 대통령 선거의 전초전이라는 점에서 여야 간 환호와 탄식이 엇갈렸다.

결과를 놓고 여러 분석이 나왔지만 대체적으로 ‘정부·여당 심판론’이 설득력을 얻는다. 여기에는 지방자치단체의 장(長)을 뽑는 선거에 그치지 않았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 때문에 문재인 정권의 잘못, 실정(失政)을 두고 유권자들이 채찍을 들었음을 부인하긴 어렵다.

조국 사태와 추미애-윤석열 갈등, 부동산 급등과 투기 의혹으로 인한 ‘먹고사니즘’ 문제가 얽히고설켜 정의와 공정, 성장과 분배의 축이 무너졌다고 판단한 듯하다.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자뿐 아니라 평범한 이들이 꿈꾸는 이상 사회는 국민이 선택한 정부가 국민이 원하는 상품을 제공하고 구매 가능한 곳이다. 이번 재·보선 결과가 이 이상에 해당한다고 보지는 않지만, 그 결과의 지향, 시사점만큼은 분명해 보인다.

물론 ‘원하는 정부와 상품의 선택과 소비’라는 이상사회는 ‘이상’이기 때문에 불가능하다. 모두가 원하는 걸 이룰 수는 없다. 하지만 ‘1인 1표’ 선거로 지도자를 뽑는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더 많은, 다수가 원하는 걸 이룬다.

‘원하는 정부’만큼은 특히 더 그렇다. 터무니없는 부정선거 음모론에 찬동하는 이들을 뺀 우리 국민은 저마다 원하는 정부를 택했다고 믿는다. 1987년 대통령 직선제 개헌 이후 국민은 원하는 정부를 직접 선택해 왔다. 무엇보다 2016~17년 촛불을 들었던 국민들은 2017년 대선과 2020년 총선에서 ‘내가 원하는 나라’를 만들 것으로 예상하는 정부와 정당을 선택했다.

◆상품 소비의 공정과 정의
상품은 재화와 용역이다. 돈, 물건, 부동산, 서비스다. 내가 원해 택한 정부는 나에게 그런 상품을 가질 수 있고, 소비할 수 있게 '능력의 최대치'를 발휘해야 한다. 합법적으로, 합리적으로, 상식적으로 하는 나의 상품 소비 말이다. 상품의 소비와 그 기회를 정의롭고 공정하게 해 나와 내 가족이 상대적 박탈감, 경제적·사회적 손해를 보게 해서는 안 된다.

하지만 두 차례 선거에서 국민의 선택을 받은 정부는 부동산 정책에서 보듯 무능력, 무기력 그 자체였다. 원하는 상품에 대한 현재와 미래의 소비를 사실상 불가능하게 했다. 지금은 어려워도 미래에는 소비가 가능할 거라는 기대도 저버렸다.

내가 원하는 상품 소비의 기회를 주는 첫 관문인 입시, 원하는 소비를 가능케 할 재산 증식의 최대 수단인 부동산을 둘러싸고 공정과 정의의 상식을 외면했다.

조국 일가 입시와 LH 투기 등, ‘원하는 소비’와 관련해 ‘선택된 정부’는 유능하지도 공정하지도 정의롭지도 않았다. 공정한 절차는 선택적으로 적용됐다. 정의로운 결과는 그들만의 것이 돼버렸다.

◆경제민주화와 민주경제의 공화
맨 위 정운영 선생 글은 여전히 ‘경제민주화’의 당위와 실용이라는 점에서 가치가 있다. 재·보선 결과를 두고 경제민주화를 강조한 김종인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의 역할이 컸다는 분석도 있다. 그렇지만 경제민주화는 그 누구의 전유물이 아니다. 극단적인 보수 자유주의경제 신봉자가 아니면 누구라도 비슷한 주장을 펴왔다. “보수든 진보든 함께 잘 살자”고 하는데 누가 표를 주지 않을까? 큰 선거마다 여야 모두 가장 중요한 공약이라고 내세웠다.

경제와 민주는 동전의 양면이다. 서로 불가분의 관계다. 그런데 요즘 대한민국 민심을 보면 경제민주화라는 정치적 구호가 아닌, 경제의 공화(공공의 화합)를 강렬히 요구하는 건 아닌지 고민하게 된다. 물론 공화제, 공화주의는 군주제에 맞서는 정치체계를 말하지만, 경제민주화라는 측면에서 공화는 적잖이 다르다.

경제민주화는 고도성장 결과물의 고른 분배라는 뜻으로 읽히지만, 경제의 공화는 좋은 경제를 통한 올바른 성장과 공정한 분배의 개념으로 진화한다. 경제민주화를 넘어서는 민주경제화다. 민주주의 정치의 비효율성을 극복해 경제화하자는 뜻(좌승희 전 한국경제연구원장의 '정치의 경제화' 개념)이 아니다. 민주경제를 공화하자는 요구다.

민주경제화는 민주주의를 경제화해서 효율과 가성비를 높이자는 몰(沒)민주가 아닌, 민주경제를 공화(公和)한다. 민주경제는 ESG(Environmental, Social and Governance)와 디지털의 결합이다. 민주경제의 핵심 내용은 말 그대로 친환경, 사회적 가치, 좋은 지배구조이며, 블록체인·AI(인공지능)·클라우드 등 디지털을 공화의 수단으로 삼는다.

만약 개헌이 된다면 경제 분야에 이런 민주경제 개념이 반드시 도입돼야 한다. 경제민주화 관련 헌법 조항의 수정을 상상해 본다.

제119조 ②국가는 균형있는 국민경제의 성장 및 안정과 적정한 소득의 분배를 유지하고, 시장의 지배와 경제력의 남용을 방지하며, 경제주체 간의 조화를 통한 경제의 민주화(***와 민주경제의 공화***)를 위하여 경제에 관한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다.

내년 대선뿐 아니다. 우리의 미래는 민주경제의 공화에 따라 달라질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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