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재원의 Now&Future] 황우석 응징에 연구 씨말린 한국, 그 틈에 줄기세포 노벨상 받은 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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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재원 수석논설위원
입력 2021-04-13 1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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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6년 중반 당시 차광렬 차바이오 회장이 “줄기세포 분야에서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4~5년 밖에 없다”고 한 말이 이제 그대로 맞아 들어가는 듯한 섬칫한(?) 느낌이 든다. 당시 남경필 경기도지사와 필자(경기과학기술진흥원장)는 차바이오그룹이 2년 전 판교에 세운 월드 클래스의 바이오융합 연구개발(R&D) 센터인 ‘차바이오 콤플렉스’를 방문했다. 이 자리에서 차 회장은 황우석 사건(2005년에 있었던 배아줄기세포 허위 논문사건)의 여파로 이 분야의 국내 연구가 거의 죽어 뒤따라오던 일본에 밀리고 말았다고 말했다. 일본 교토대학의 야마나카 신이치(山中伸弥) 교수(현재 교토대 iPS 세포연구소장)는 황우석 연구를 지켜보다가 연구방향을 배아줄기세포에서 윤리적인 문제가 덜하고 안전한 iPS(induced pluripotent stem cell, 유도만능 줄기세포) 쪽으로 돌린 다음 일본 정부의 강력한 뒷받침 아래 결국 2012년 노벨 생리학·의학상을 따냈다. 차 회장이 말한 남은 4~5년은 일본을 따라잡을 수 있는 시간이었고, 우리 연구가 다시 총력을 투입할 절호의 기회였던 것이다. 어찌 되었든 시간은 꼭 5년이 흘러갔다.

2021년 4월 8일. ‘인간 iPS 태반세포 제작 세계 최초 불임연구 진전 기대’라는 뉴스가 일본의 전 미디어에 소개됐다. 인간의 iPS 세포에서 임신의 유지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태반을 형상화하는 세포 제작에 세계 최초로 성공했다고 교토대 iPS 세포연구소가 발표한 것이다. 태반이 관련되는 임신 합병증이나 불임증의 연구가 이어질 것이라는 내용과 함께 이 논문은 8일 미국 과학저널 스템셀 인터넷판에 게재됐다. 이 연구소의 다카시마 야스히로 박사(재생의학) 팀은 착상 전의 수정란에 가까워, 폭넓은 분화 능력을 가지는 신형의 iPS 세포에 4개 종류의 인자를 더하는 등 태반의 기초가 되는 ‘영양외배엽’을 제작하고 거기서부터 태반 내 융모(돌기가 모인 층)의 일부를 형성하는 영양막 세포까지 키우는 데도 성공했다고 밝혔다. 유전자나 단백질을 조사해 기능도 확인했다고 설명했다. 임신 중 태아의 일부로 만들어지는 태반은 태아와 모체를 이어주고 산소와 영양 등을 주고받는 역할을 한다. 태반의 형성과정에 이상이 있으면 유산이나 태아의 발육부전으로 이어지지만 태반의 바탕이 되는 세포는 수정란의 초기에 분화되기 때문에 사람이 알아내기가 기술적으로나 윤리적으로나 어려웠다.

일본에서 거대한 국책사업으로 진행되고 있는 iPS 연구

2021년 4월 7일 교토신문은 ‘교토대가 중심이 되어 iPS 세포를 이용해 코로나19 감염을 억제하는 약제를 발견했다’고 보도했다. 감염 확대를 일으키기 쉬운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등 RNA를 유전자로 하는 바이러스의 치료약 탐색에 응용할 수 있다고 한다. 이 같은 내용은 유럽 과학지에 7일 게재됐다. RNA 바이러스는 형태가 다양해 변이가 쉽고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이외에도 에볼라 출혈열 등을 일으키는 다른 종류도 알려져 있다. 감염 확대를 막기 위해선 치료약 후보의 신속한 개발이 과제가 되고 있다. 교토대 iPS 세포 연구소의 이노우에 하루히사 교수팀은 인간 iPS 세포에 RNA 바이러스의 일종인 센다이 바이러스를 감염시키는 모델을 구축했다. 이 모델을 사용해 미국과 일본에서 다른 병의 치료용으로 사용되고 있는 500개 종류의 기존약을 뿌렸는데, 5개 종류에서 유효성이 있었다고 한다. 게다가 iPS 세포 이외의 세포에 의한 실험 모델을 이용해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와 에볼라 출혈열 바이러스의 감염을 억제하는 것을 확인했다. 이노우에 교수는 “사람에 사용하기 위해서는 한층 더 검증이 필요하다. 향후 새로운 RNA 바이러스 감염증의 치료약 탐색에도 사용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교토신문은 이시카와 도모히사 일본종합연구소 조사부 거시경제연구센터 소장의 말을 인용해 “백신도 물론 중요하지만 치료약 또한 마찬가지로 매우 중요하다. 이러한 iPS 세포를 활용한 방법 이외에도 가정에서 마실 수 있는 코로나 바이러스 치료약 연구도 일본 기업에서 진행되고 있다. 다만 긴급 승인 제도가 잘 정비되어 있지 않은 것이 상품화가 지연되고 있는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이번 연구는 교토대가 중심이 되었지만 간사이(關西)지역에는 고베 의료 산업도시, 오사카, 나카노시마(국제미래의료거점계획) 등 강력한 의료집적 클러스터들이 포진하고 있다.

이에 앞서 지난 2월 23일 교토대 iPS 세포 연구소는 AI(인공지능)와 iPS 세포 기술로 ALS(전신의 근력이 저하되는 난치병 근위축성 측색경화증)의 진단을 돕는 방법을 개발했다는 내용을 미국 과학잡지 애널러지·오브·뉴롤로지에 게재했다. 이른바 루게릭병은 운동신경이 없어져 근력이 떨어지는 질병이다. 일본 내 환자는 약 9000명이지만 치료법은 확립되어 있지 않다. 발병으로부터 진단이 확정되기까지 일본에서는 평균 13.1개월이라고 하는 보고가 있을 정도로 신속한 진단이 과제가 되고 있다고 한다. 이 연구소 이노우에 하루히사 교수 팀은 정상인과 ALS 환자 15명씩으로부터 iPS 세포를 제작해 운동 신경으로 변화시켰다. 이 운동 신경의 화상을 AI의 심층 학습수법으로 해석한 결과 97%라고 하는 높은 정밀도로 ALS 환자의 iPS 세포로부터 생긴 신경인지 어떤지를 분별할 수 있었다. 앞으로 더 많은 환자로부터 만든 운동 세포를 이용해 진단 모델을 확립하는 게 이 연구소의 목표다.

이에 앞서 1월 18일 교토대 iPS 세포연구소는 인간 iPS 세포에서 암세포를 공격할 수 있는 면역세포 T세포를 효율적으로 분화·증식시키는 기술을 개발했다고 발표했다. 암면역요법으로 iPS세포를 응용하는 데 매우 중요한 연구라는 평가다. 영국 과학잡지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에 게재됐다. 가네코 신 연구팀은 “iPS 세포로부터 T세포를 대량 제조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할 수 있었다. 임상 응용을 목표로 하겠다”고 밝혔다.

2021년 4월 8일 교토대 병원이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로 폐렴이 중증화해 약 3개월 치료를 계속하고 있던 환자에게 가족으로부터 제공받은 폐를 이식했다고 주요 미디어들이 대서 특필했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 후의 환자에게 생체 폐이식은 세계에서 처음이라는 것이다. 폐이식을 받은 환자는 간사이 거주의 여성 환자로 작년 말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호흡 상태 악화로 간사이의 다른 병원에 입원해 체외식 막형 인공폐(ECMO)가 필요한 상태에 놓여 있었다. 바이러스 검사가 음성이 된 후에도 후유증으로 폐가 둘 다 줄고 딱딱해져 원래대로 돌아갈 가망이 없어졌다. 이 환자는 4월 5일에 교토대 병원으로 옮겨 7일 남편과 아들의 폐 일부를 환자에게 이식했다. 환자는 2개월 뒤에 퇴원할 수 있다고 한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환자에 대한 폐 이식은 뇌사 이식 방법으로 중국과 유럽에서 여러 사례가 보고되고 있다. 그러나 뇌사 이식은 장기 기증자가 극히 적어 교토대 병원은 생체 폐이식에 대해 “희망이 있는 치료법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엊그제인 4월 12일 간사이 의과대학(오사카 소재)은 내년 4월 ‘제5의 암치료법’으로서 기대를 모으는 ‘광(光)면역 요법’을 주도할 세계 최초의 연구소를 설립한다고 발표했다. 이 요법을 개발한 미국 국립보건원(NIH)의 고바야시 히사타카 주임 연구원이 이 연구소 소장으로 내정됐다. 그는 현재 치료 대상이 얼굴이나 목부분 암이었는데 유방암 등에도 적용하겠다고 한다. 여러 종류의 암 환자에게 새로운 선택사항을 제공하게 된다. 광면역요법에 쓸 약과 의료기기는 세계 최초로 일본정부가 승인했다. 광면역요법은 기존의 수술, 방사선, 항암제, 면역요법을 넘어선 제5의 암 치료 방법으로 주목받고 있다.

이 같은 의료기술의 큰 성과에도 불구하고 일각에서는 일본이 여전히 미국과 유럽에 비해 실력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나카무라 유스케 암프레시전 의료연구 센터소장은 “일본은 과학력이 높은데 왜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백신을 못 만드는가”라는 공개서한을 일본 미디어에 띄웠다. 그는 일본의 과학력이 실제는 높지 않다는 증거라고 스스로 답을 내렸다. 통계에 따르면 일본 의약품 무역적자는 2015년도 이래 6년 연속 2조엔(약 20조원)을 넘고 있다. 2005년도 의약품 무역적자액 2000억엔과 비교하면 10년간 적자액이 약 10배로 늘어난 것이다. 나카무라 소장은 이것이 일본과학의 현주소를 말해 준다고 강조했다. 연구비를 배로 늘려야 한다는 요구를 에둘러 표현하고 있다.

우리에게는 엄살처럼 들리지만 세계 톱을 지향하는 일본으로서는 이럴수록 박차를 가해야 한다는 다짐일 듯싶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팬데믹의 초입에서 K-방역으로 세계 우등생이던 한국은 백신개발과 접종에서 열등생으로 전락했다. 정부 연구개발예산 30조원-국가 연구개발 투자 100조원으로 규모 면에서 세계 6위, GDP(국내총생산)에서 차지하는 비율로 세계 1, 2위를 달리는 한국의 과학력은 어떤가. 일본 iPS 개화(開花)를 보면서 의료기술에 있어서만큼은 ‘포스트 황우석’의 ‘잃어버린 15년’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을 해본다.
 

[2005년 기자회견하는 황우석 박사/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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