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스터스에서 마쓰야마가 남긴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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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훈 기자
입력 2021-04-14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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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린 재킷(녹색 상의)을 입은 마쓰야마 히데키의 뒷모습 "나를 따라와라."[AP=연합뉴스]


노란색 바탕의 미국 땅 모양. 녹색 테두리. 조지아주 오거스타 위치에 파인 홀과 꽂힌 깃대 그리고 붉은색 깃발. 깃발 밑에 쓰여있는 '마스터스 토너먼트(명인열전)'라는 글씨. 이 대회는 미국 골프 애호가들에게는 심장과도 같다. 자신이 사랑하는 조국에 꽂혀있는 깃대처럼 말이다.

올해는 붉은색 깃발이 미국 땅에 꽂힌 일장기처럼 보인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 제국 해군 제독이었던 야마모토 이소로쿠(일본)가 해내지 못했던 일이다. 미국 유학파이기도 했던 그는 누구보다 전쟁을 반대하다가, 진주만 공습 때 일본에서 전쟁 영웅으로 평가받았다. 그는 진주만을 공습하고 나서 요미우리 신문의 기자와 이런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앞으로 어떤 방식으로 미국과 싸우실 것입니까?" 그의 대답은 "미국과의 휴전을 준비할 것"이었다.

싸우지 않겠다는 것이 아니라 "백악관까지 들어가서라도 평화 협정을 맺겠다"는 뜻이었다. 결국 그는 미군 전투기에 격추돼 사망했다. 이런 말을 했는데 살려둘 미국이 아니었다.
 

우승 직후 캐디와 포옹하는 마쓰야마 히데키(오른쪽)[사진=PGA 투어 페이스북 발췌]


야마모토가 해내지 못한 일을 마쓰야마가 해낸 셈이다. 물론, 전쟁을 통한 점령이 아니라 미국 골퍼들의 심장부인 오거스타 내셔널 골프클럽(이하 오거스타 내셔널)에 일장기를 올렸으니 말이다. 일본 골프 120년 만의 쾌거이자, 아시아 선수로서는 최초다.

남녀 메이저 승수를 통틀어서는 세 번째다. 마쓰야마도 해냈지만, 대회 전 열린 오거스타 내셔널 여자 아마추어(ANWA)에서는 가지타니 츠바사(일본)이 우승했다. 프레드 리들리 오거스타 내셔널 회장은 한 주에 두 명(마쓰야마, 가지타니)의 일본인과 버틀러 캐빈에서 사진을 찍었다.

마쓰야마는 19세에 이 대회에 처음 출전했다. 우승 10년 전인 2011년이다. 2009년 아시아 태평양 아마추어 선수권대회 우승으로 마스터스 출전권을 얻었고, 공동 27위라는 성적을 냈다. 그는 그때 최저 타수 아마추어에게 주는 실버 컵을 받았다.

그로부터 10년을 그린 재킷을 바라보며 달려왔다. 자칫 외로울 수도 있는 외길을 함께한 것은 일본 골프 브랜드들(스릭슨, 렉서스, 데상트 등)이었다. 그중 스릭슨은 마쓰야마와 긴 시간 호흡을 맞추었다. 2016년에는 스릭슨 드라이버를 안 쓰는 수모도 겪었다. 그러나, 전담팀을 꾸려 그의 피드백을 충분히 반영해 4년 만에 마쓰야마의 캐디백에 스릭슨 드라이버가 자리했다. 용품사로서도 각고의 노력이 그린 재킷으로 보상받는 순간이다.

지난해 우승자 더스틴 존슨(미국)이 마쓰야마에게 그린 재킷을 입혀줬다. 그는 두 손을 번쩍 들고 환호했다. 그 모습이 일본을 강타했다. 아니 정확하게는 전 세계를 강타했다. 일본에서는 호외가 발행돼 고등학교 시절 코치가 함박웃음을 지었다.

한국에도 소식이 당도했다. 지난해 아시아 최고 순위(2위)를 경신했던 임성재(23)에게는 아쉬움 가득한 순간이다. 일본 선수가 아시아 선수 중 가장 먼저 그린 재킷을 입었다는 것이 내심 못마땅해했던 누리꾼들도 있었다.

그러나, 지금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누가 먼저 우승을 했느냐'가 아니다. 마쓰야마의 마스터스 우승이 무엇을 남겼느냐가 중요하다.
 

오거스타 내셔널 골프클럽을 향해 고개를 숙인 마쓰야마의 캐디[사진=PGA 투어 페이스북 발췌]


마쓰야마의 캐디(하야후지 쇼타)는 일본인들이 마스터스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그리고 어떻게 대하는지를 온몸으로 표현했다.

18번홀 깃발을 빼고, 깃대를 손에 쥔 하야후지는 홀에 깃대를 꽂고 모자를 벗었다. 그리고는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대회, 골프장, 깃대에 대한 감사함이었다. 돌아서서는 하늘을 한 번, 땅을 한 번 바라봤다. 경의를 표시한 것이다. 그들에게 이 대회와 골프장은 신(神)적인 존재일지도 모른다. 자신들이 우승을 할 수 있도록 허락해주었다는 마음으로 인사를 한 것으로 보인다.

반면, 이 대회에 출전한 김시우(26)는 퍼트가 말을 듣지 않자, 오거스타 내셔널을 퍼터로 내리찍었다. 그리고 그는 '명인 열전' 급으로 우드를 쥐고 파 퍼트에 성공했다. 한 누리꾼은 "지신(地神)이 노해서, 마쓰야마에게 우승을 주었다"고 농담을 했다.

하지만, 이 농담에는 뼈가 있다. 프로골퍼들도 에티켓의 중요성을 되뇌어야 한다. 미국, 유럽, 한국 등 주 무대는 중요치 않다. 대회에 대한 존경심도 필요한 부분이다. 후원사가 없으면 대회가 없고, 갤러리가 없다면 프로골퍼는 일반인이다.

일본은 마쓰야마의 한 마디에 '마쓰야마 키즈' 탄생을 예고했다. 그는 우승 후 인터뷰에서 "개척자이자, 본보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맨발로 박세리(44) 감독이 불러일으킨 '박세리 키즈' 열풍 때와 똑 닮았다.

열풍은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다. 위대한 유산처럼 말이다. 우리는 마쓰야마의 우승을 단순히 일본의 성과라기보다, 아시아 골프의 발전이라 봄이 바람직하다.

아시아인들이 아직 정복하지 못한 대회는 두 개다. US 오픈과 디 오픈 챔피언십이다. 앞으로 나올 두 대회 우승자는 두 아시아인처럼 아시아 골프에 좋은 영향을 줄 것이다.

타이거 우즈(미국)를 누르고 아시아 첫 메이저(PGA 챔피언십) 우승컵을 들어 올린 양용은(49)처럼, 아시아 최초로 마스터스를 정복한 마쓰야마처럼 말이다.
 

우승 다음 날 애틀랜타 공항에서 그린 지캣과 함께 비행기를 기다리는 마쓰야마 히데키[사진=Reddit 제공]


마쓰야마의 우승은 더할 나위 없이 완벽했다. 앞에서도 언급했듯. 자국 브랜드를 쥐고, 입고, 쓰고 한 우승이기 때문이다.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자니, 마냥 부러울 따름이다. 국내 골퍼들은 아직도 국내 브랜드라면 일단 '절레, 절레'한다. 머리 위에 '국산?'이라는 물음표를 띄운다. 언제까지 그럴 텐가. 우리도 우리의 채를 쥐고 우승하는 완벽한 메이드 인 코리아 골퍼를 만들어봐야 하지 않을까. 이 역시도 마스터스가 남긴 이야기이자, 우리가 언젠가는 해결해야 할 필수 과업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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