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스페셜]중국 40년 만의 '교육개혁'…교차하는 기대·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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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이재호 특파원
입력 2021-09-02 0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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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개혁개방 이래 전례없는 대대적 변화

  • 시험·숙제에 성적평가까지 깨알 간섭

  • 교원순환제, 양극화·쉐취팡 문제 완화

  • 사교육 때리기 지속, 문구류 단속까지

베이징의 한 초등학교 교사들이 칠판에 개학을 알리는 글을 적고 있다. [사진=신화통신]


중국은 한국과 달리 9월에 새 학년이 시작된다.

2억명이 넘는 초·중·고등학교 학생들이 1일 일제히 등교를 시작했다.

매년 반복되는 학사 일정이지만 올해 학교 안팎에 흐르는 기류는 예년과 다르다.

중국 정부가 1979년 개혁·개방 노선을 채택한 이래 40여년 만에 전례 없는 고강도 교육개혁을 외치고 나선 탓이다.

사회주의 체제에 걸맞지 않는 교육 양극화, 과도한 사교육 부담, 그에 따른 출산율 저하 등이 개혁의 기치를 내걸게 된 배경이다.

개학 전날인 지난달 31일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 주재로 중국 공산당 중앙정치국 회의가 열렸다.

이번 회의에서는 중국 각지에서 진행된 중앙순시조의 교육 개혁 관련 감찰 활동 보고가 이뤄졌다.

회의는 "시진핑 동지를 핵심으로 하는 당 중앙은 교육 업무를 특히 중시한다"며 "교육 개혁 추진이 뚜렷한 성과를 거두고 있지만 (교육 영역의) 공통적이고 심층적인 문제들 역시 발견됐다"고 지적했다.

이어 "문제를 면밀히 파악해 책임 주체를 압축하고 일상적인 감독 체계를 개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근 쏟아지고 있는 교육 관련 규제는 시 주석이 내년 재집권을 위해 진두지휘 중인 민생 개선책의 일환이다.

중국 권부의 핵심인 중앙정치국 회의에서 개혁 의지를 명확히 한 만큼 이 흐름은 막을 수도, 되돌릴 수도 없다.

학생과 교사·학부모 모두 한편으로는 기대감을 안고, 또 한편으로는 초조한 마음으로 역대급 교육 규제가 시행되는 첫 학기를 맞이하고 있다.

◆시험·우등반 없애고 성적 공개 금지

지난달 30일 중국 교육부는 기자회견을 열고 이번 9월 학기부터 적용되는 새 방침을 공개했다.

초등학교의 경우 1·2학년은 지필시험이 없어졌고, 다른 학년은 중간고사 없이 기말고사만 치르도록 했다.

중학교는 중간고사를 시행할 수 있지만 교과 과정에 비해 난이도가 높은 문제는 출제할 수 없다.

초등학교 1학년에서 중학교 3학년까지의 의무교육 단계에서는 어떤 식으로도 우등반을 설치할 수 없다. 과목당 수업시간을 임의로 늘리거나 줄여선 안 되며, 방과 후 추가 수업도 엄격히 금지된다.

또 학부모에게 부담이 전가되지 않도록 하교 전 숙제를 마치도록 했다. 숙제 검사는 교사가 해야 한다.

시험 성적의 경우 순위를 매기거나 공개해서는 안 되며, 학부모에게만 따로 고지해야 한다. 성적에 따른 분반과 자리 배치 등도 허용되지 않는다.

이 같은 조치는 학생들의 학업 스트레스를 덜어주기 위해서다.

국무원 교육감독지도위원회 판공실은 기자회견에서 "조사 결과 67%의 초중생이 수면 부족에 시달리고 있다"며 "17%는 숙제량이 기준을 넘었고 22%는 운동량이 기준 미달이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교육부는 초등학교 3~6학년의 경우 1시간 이내에 마칠 수 있는 정도의 숙제만 내주고, 중학생은 1시간 반을 넘지 않도록 하라고 권고했다.

또 맞벌이를 하는 학부모를 위해 방과 후 최대 2시간까지 학교가 학생을 돌보는 제도를 도입했다.

학생의 하교시간과 학부모의 퇴근시간을 맞추기 위한 조치이자, 많은 학생들이 하교한 뒤 주요과목 사교육을 받으러 학원으로 향하는 걸 막기 위한 조치이기도 하다.
 

상하이 쉬후이구의 한 주민센터가 여름방학을 맞아 어린이 돌봄 프로그램을 진행 중이다. [사진=신화통신]
 

◆교원 순환제 강행, 곳곳서 아우성

지난달 25일 베이징 교육위원회는 이번 학기부터 교원 순환제를 시행한다고 발표했다.

2007년 이후 자취를 감췄던 제도가 14년 만에 부활한 것이다.

이 제도에 따르면 퇴직까지 5년 이상 남은 교장과 교감, 일반 교사가 한 학교에서 6년 이상 근무했다면 무조건 다른 학교로 옮겨야 한다.

단 중국판 수학능력시험인 가오카오(高考)에 대비해야 하는 고등학교의 경우 과도기를 두고 시행키로 했다.

순환 주기가 확정된 것은 아니다.

리이(李奕) 베이징 교육위원회 대변인은 "간부 교사의 교류는 학기·학년 등 기본적인 학사 일정에 따라 이뤄진다"면서도 "가장 좋은 건 아이들의 성장 주기에 맞추는 것"이라고 말했다.

예컨대 초등학교라면 저학년과 고학년으로 나눠 3년마다 담임을 교체할 수 있다는 얘기다. 기존에는 1학년 담임 교사가 6학년까지 같은 반 학생들을 지도하는 사례가 많았다.

이에 대해 베이징의 한 교사는 중국신문주간에 "초등학교는 괜찮을 것 같은데 중학교는 교사들의 순환 주기가 지나치게 짧을 경우 교육에 장애가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또 "새로 온 교장이라면 부임 첫해에는 많은 일을 할 수 없다"며 "1~2년마다 교체된다면 교사들을 파악하기도 어려울 것"이라고 덧붙였다.

베이징은 둥청구와 미윈구에서 교원 순환제를 시범 운영한 뒤 시 전역으로 확대 적용할 방침이다. 연말까지 6개 구에서 추가로 제도가 시행된다.

교사들은 대놓고 말은 못하지만 불만이 크다. 당장 출퇴근 시간이 늘어날 뿐더러 터를 잡은 지역을 벗어나 이사를 해야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순환제를 강행하는 이유는 교원 자원의 균등한 분배와 교사·학부모 간 유착 근절을 위해서다.

베이징 내에서도 강남 8학군에 비견되는 시청구, 하이뎬구, 그 외 지역 간의 교육 양극화가 심각하다.

우수한 교사가 밀집된 지역의 학력과 명문 학교 진학률이 높아지다 보니 사교육 붐이 일고 집값도 오른다.

교원 순환제 도입의 또 다른 목적이 학세권 주택을 일컫는 '쉐취팡(學區房)' 문제 완화인 이유다.

시 주석이 "쉐취팡 투기를 막으라"고 직접 언급할 정도로 문제가 심각하다.

관영 경제일보는 "교육과 부동산 간의 연결고리를 끊어 많은 지역의 쉐취팡 가격을 잡아야 한다"고 비판했다.

이에 따라 베이징뿐 아니라 상하이와 광저우, 충칭 등 다른 대도시도 순환제를 시작했거나 도입을 검토 중이다.

◆사교육 때리기에 완구형 문구 단속까지

학교 밖에서는 사교육 때리기가 한창이다. 대형 학원들이 속속 문을 닫고 있는 가운데 당국은 향후에도 제재 고삐를 늦추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중국 교육부 교육감독지도국의 후옌핀(胡延品) 1급 순시원은 기자회견에서 "홈페이지와 위챗 등에 사교육 고발란을 개설한 결과 현재까지 8000여건의 제보가 접수됐다"며 "규정 위반과 무허가 영업, 허위 선전, 초과 수강료 요구, 환급 거부 등에 대한 것"이라고 소개했다.

후 순시원은 "각 성에서 접수한 문제들을 토대로 공문을 만들어 배포할 것"이라며 "현지 시찰을 강화하고 적발 내용을 사회에 알리겠다"고 말했다.

심지어 문구류 단속까지 등장했다.

중국경제망은 "개학이 다가오면서 완구와 비슷한 문구를 만들어 팔거나 랜덤박스 방식으로 학생들을 꾀는 영업이 성행하고 있다"며 "가격이 터무니 없이 높고 품질도 낮다"고 고발했다.

이 매체는 전문가 발언을 인용해 "이 같은 문구들은 학생들의 사행심을 자극한다"며 "학업 집중도를 떨어뜨릴 수 있는 문구는 시장에서 퇴출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같은 저인망식 규제와 단속이 자녀의 신분 상승을 바라고 교육에 목숨을 건 중국 부모들의 열정을 이겨낼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다만 과도한 사교육비와 부동산 가격 부담에 지쳐 이참에 교육 평등과 양극화 해소가 이뤄지길 내심 바라는 학부모도 적지 않은 게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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