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경환의 베트남 ZOOM IN] (29) 내가 조선사람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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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경환 한국글로벌학교(KGS)이사장, 전 조선대교수
입력 2021-10-07 1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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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경환 하노이 한국글로벌학교(KGS) 이사장

[안경환 한국글로벌학교(KGS)이사장]

몇 년 전에 국립하노이인문사회과학대학교에서 한국학연구회의 초청을 받아 학술대회에 참석한 적이 있었다. 학술대회는 한국기관의 지원을 받아 개최되었고, 베트남 각 대학에서 한국학 연구자들이 대거 참석하였다. 현재 베트남에는 34개 대학에 한국어과 또는 한국문화학전공 등의 명칭으로 한국 관련 학과가 개설되어 있다.

필자는 학술대회에서 발표자 한 사람으로부터 난생처음 조선사람이라는 소리를 들었다. 그리고 대학에서 조선어 교육에 대한 논문들이 발표되어 뭔가 잘못되고 있음을 깨닫고, 베트남 발표자 누구도 이러한 문제를 의식하지 못하고 있어 이의를 제기했다. 나는 조선 사람이 아니고 한국 사람이고, 한국의 지원을 받아 진행되는 학술대회에서 한국어 교육이 아닌 조선어 교육을 논하는 것 자체를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했다.

당황한 주최 측에서 중재안을 내놓았다. 베트남은 남북한과 모두 외교 관계를 맺고 있고, 북한에서 유학하고 온 사람들이 초창기 한국학과 교육을 담당하고 있어서 필자의 이의 제기에 모두가 혼란스러워했다. 필자에게 되돌아온 질문은 자기들이 북한 사람을 만나면 '조선어'라고 하고, 한국 사람을 만나면 '한국어'라고 말해야 하는가? 그러니 이번 학술대회에서는 코리아어, 코리아학이라고 하자는 제안이었다. '왜 너희는 통일을 아직 못해서 우리에게 이런 고민을 하게 하는가'라는 질책으로 느껴졌다. 당혹스러웠지만 임시로 용어를 코리아어로 잠정 동의하고 학술대회를 마친 적이 있다.

베트남은 1945년 9월 2일 호찌민 주석이 프랑스로부터의 독립선언과 함께 베트남민주공화국을 선포하였다. 북한은 1950년 1월 31일 베트남과 수교하여 중국, 러시아에 이어 세계에서 셋째로 베트남을 국가로 인정하였고, 1950년 10월 25일에는 상주 대사관을 교환 개설하였다.

내년 2022년은 한국과 베트남이 외교관계를 정상화한 지 30주년이 된다. 한국에서는 1967년에 베트남학이 발아되었다. 한국에서의 베트남학 역사는 54년이 되었다.

베트남에서는 1992년 12월 22일 외교관계 정상화 다음 해인 1993년 국립하노이인문사회과학대학교 동양학부에 한국어전공이 개설되었고, 호찌민시에서는 호찌민시외국어정보대학교(HUFLIT)에서 비인가로 한국어교육을 시작하였다. 휜테꾸옥 총장은 한국어의 필요성을 깨닫고 1993년부터 한국어 교육을 시작하였고, 결국 1995년에 한국학 전공을 개설하였다.

베트남은 올해 2월 9일 한국어를 제1외국어로 편입시켜 초등학교 3학년부터 한국어를 가르칠 수 있도록 하는 획기적인 조치를 발표하였다. 이는 한·베 교류사에 큰 획을 긋는 사건이다. 제1외국어는 초등학교 3학년부터 가르친다. 그리고 한국어를 택하면 대학 졸업 때까지 다른 외국어를 공부하지 않아도 된다. 쉽게 말하면, 학교 교육에서 영어와 동등한 대우를 받는 것이다. 한국어가 제1외국어로 선정됨으로써 한국어가 영어, 러시아어, 중국어, 프랑스어, 일본어, 독일어와 함께 필수 과목의 반열에 오른 것이다. 현재 베트남에 재학 중인 초·중·고교·대학교 학생들의 숫자는 약 1830만명에 달한다. 이들 가운데 10%가 한국어를 선택한다 해도 약 183만명이 한국어를 필요로 하는 직접적인 수요자가 된다.

베트남에서 한국어가 제1외국어로 채택되면서 한국어 교사 양성, 한국어 교과서 편찬, 한국어 교육 효율화 방안 등 해결해야 할 문제가 많이 있다. 그 가운데 시급한 것이 베트남에서 통용되고 있는 한국어 용어의 통일과 표기법의 통일이다. 한국외교부, 주베트남한국대사관, 베트남외교부, KBS World에서 쓰는 용어가 각기 달라 한국의 정체성을 모호하게 하고 있어 한국어를 배우는 베트남 학생들에게 혼동을 주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한반도에 대한 베트남어 번역에 베트남 외교부는 '조선반도'로, 베트남 주재 한국대사관에서도 '조선반도', KBS World는 '한국반도'로 표기하고 있다. 판문점의 경우, 베트남 언론에서는 'Panmunjom', 베트남 주재 한국대사관과 KBS World에서는 판문점(板門店)의 베트남어식 한자표기인 '반몬디엠(Bàn Môn Điếm)'으로 표기하고 있다.

'남북한 관계'에 대해서는 베트남 언론과 전자 정부에서 '꽌헤 리엔 찌에우-Quan he Liên Triều'로 표현하고 있는데, 이를 한자로 그대로 바꾸면 '관계연조(關係聯朝)'로 '조선간의 관계'란 의미이다. 베트남 주재 한국대사관과 KBS World에서도 베트남과 똑같이 '꽌헤 리엔 찌에우-Quan he Liên Triều'로 표기하고 있다. 이는 북조선 입장에서 보면 입에 딱 맞는 표현이다. 이에 대해, 위키피디아에서는 'Quan hệ Bắc Triều Tiên-Hàn Quốc:북조선-한국관계'라고 오히려 정확하게 표현하고 있다.

'한민족'에 대해서도 베트남 외교부의 한국 개관에 '한(조선)민족'으로 쓰고 있으나, KBS World는 'Dân tộc liên Triều-전똑 리엔 찌에우'로 조선족이란 뜻으로 표현하고 있어, 중국에 있는 한민족인 조선족과 구분할 수 있는지 의심스럽다. 남북 핫라인도 베트남 언론에서 'đường dây nóng liên Triều-드엉 저이 농 리엔 찌에우'로 '조선 간 핫라인'이란 뜻으로 번역하여 사용하고 있다.

그리고 주 호찌민시 대한민국 총영사관도 “주 호치민 대한민국총영사관”으로 명칭이 되어 있다. 호찌민 주석의 이름을 따서 도시명이 작명되어 베트남 헌법에 따르면 호찌민시는 반드시 '타인포 호찌민-Thành phố Hồ Chí Minh:호찌민시'로 표기하도록 되어 있다. 따라서 '주 호치민 대한민국총영사관'을 '주 호찌민시 대한민국총영사관'으로 명칭을 바꾸는 것이 바람직하다.

베트남에서 한국어를 공부하거나 통·번역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이러한 단어를 번역할 때 외교부나 재외공관 홈페이지에서 사용하고 있는 공식용어나 명칭을 찾아보고 활용하고 있는 점을 감안한다면, 한국베트남학회나 전문가의 자문을 받아 올바르게 번역하여 사용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그래야 앞으로 한국 사람에게 조선사람이라고 하는 일이 생기지 않을 것이다. 또한 제1외국어로 한국어를 가르치고, 또한 한국어를 공부하는 베트남 학생들에게 올바른 한국어 교육의 길잡이가 될 것이다.

(참고: 탕롱대학교 이계선 교수 발표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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