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속자의 속사정] 재계, 조용한 딸들의 반란...'장자 승계' 공식 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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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유선 기자
입력 2022-06-04 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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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구지은 아워홈 대표, 오빠 구본성 전 부회장 퇴진 후 실적 고공행진

  • 정태영 부회장 여동생도 서울PMC 경영에 '돋보기' 검증 예고

  • 이경후 CJ ENM 경영리더, 남동생 이선호와 본격 승계 경쟁 중

국내 주요 기업들이 최근 잇달아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에 힘쓰면서 여성 임원의 숫자도 늘고 있다. 다만 오너 일가에 있어서만큼 장자(長子)·아들 중심 승계 및 경영체제를 고집하는 관례가 쉽사리 깨지지 않고 있는 상황. 이런 가운데 조용히 자신의 실력을 다지며 남매지간 경영권 승계 경쟁을 벌이고 있는 이들이 제법 눈에 띈다.
 
구지은 아워홈 대표, 오빠 밀어내고 경영 실력 입증
가장 주목받고 있는 이는 범(汎)LG가로 분류되는 아워홈의 구지은 대표이사 부회장(이하 구지은 대표)이다. 고(故) 구자학 아워홈 창업자 겸 회장의 막내딸인 구 대표는 스스로 경영 능력을 입증, 유독 재계에서 ‘장자 승계 원칙’을 고수해온 범LG가의 관례를 깬 대표적 인물로 꼽힌다.
 
당초 아워홈의 경영권은 구 전 회장의 장남인 구본성 전 부회장이 가지고 있었다. 2016년 범LG가의 장자 승계 원칙에 따라 대표이사에 오른 그는 무난히 후계 구도를 다지는 듯 보였다. 당시 경영수업을 받고 있던 구 대표도 회사를 떠났다.
 
하지만 구 전 부회장이 경영에 참여한 첫해 아워홈의 영업이익은 800억원대였지만, 2018년에는 600억원대로 떨어졌고 2020년에는 창사 후 첫 적자를 기록했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해 단체급식과 식자재 사업이 직격탄을 맞은 상황을 감안해도 그의 경영 능력은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많았다.
 

보복운전과 폭행 혐의로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출석하고 있는 구본성 아워홈 전 대표이사 부회장. [사진=유대길 기자, dbeorlf123@ajunews.com]

그의 경영권을 위태롭게 한 결정적인 사건은 회사 밖에서 벌어졌다. 구 전 부회장은 2020년 9월 자신의 차에 끼어들었다는 이유로 차량을 앞질러 급정거, 상대 차량을 파손한 것도 모자라 길가에 있던 상대 운전자를 차량으로 몰아붙여 위협했다. 결국 ‘보복운전 혐의’로 기소된 그는 지난해 6월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이에 그의 여동생 미현·명진씨와 구 대표 등 자매들은 힘을 모아 지난해 6월 이사회에서 구 전 부회장을 대표이사에서 해임시켰다. 구 전 부회장의 경영 참여 때 오빠 편을 들었던 장녀 미현씨까지 나머지 여동생들 편에 선 것이다. 아워홈 지분은 장남 구 전 부회장이 38.56%, 첫째딸 미현씨가 19.28%, 둘째딸 명진씨가 19.6%, 셋째딸 구 대표가 20.67%를 각각 보유하고 있다. 그동안 회사를 떠나 있던 구 대표는 오빠의 해임안이 통과되자 곧바로 대표이사로 화려하게 복귀했다.
 
이 와중에 구 전 부회장의 방만경영과 배임·횡령 논란까지 불거졌다. 2020년 실적이 부진한 상황에서도 구 전 부회장은 전년보다 70% 많은 299억원의 배당금을 가져간 것이다. 또 2020년 3월 주총에서 이사 보수한도가 연 60억원으로 정해졌는데도 구 전 부회장이 그해 8월까지 받아간 보수가 83억원에 이른다는 사실 등이 알려지며 횡령·배임 의혹도 제기됐다.

이에 경찰이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상 업무상 횡령·배임 혐의로 구 전 부회장 고소 건을 조사하기 시작하자, 그는 지난 2월 보유지분을 전량 매각하고 회사 경영에서 완전히 물러나겠다고 전격 발표했다. 다만 구 전 부회장은 회사 지분을 언제, 어떤 절차를 거쳐 처분할지는 명확히 밝히지 않고 있다. 재계 안팎에서는 구 전 부회장의 지분매각이 현 구지은 대표의 경영권을 흔들기 위한 복안이란 분석이 나온다. 구 전 부회장이 최근 이사회 재선임을 안건으로 아워홈 측에 임시 주주총회를 요청하면서 명분 없이 경영에 복귀하려고 한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구지은 아워홈 대표이사 부회장 [사진=아워홈]

하지만 재계에서는 구 대표의 경영 능력이 탁월해 ‘오빠의 귀환’은 불가능하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2004년 4남매 중 가장 먼저 아워홈에 입사한 구 대표는 구매물류사업부장, 외식사업부장, 글로벌유통사업부장 등을 두루 거쳤다. 이런 현장 경험을 바탕으로 급식사업 중심이던 아워홈의 사업구조를 외식사업 영역으로 다각화시켰다. 2004년 5000억원대였던 아워홈의 연결기준 매출은 빠르게 성장해 지난해 1조7408억원을 기록했다. 코로나19 직격탄을 맞은 2020년보다 매출이 7.1% 늘었고, 영업이익은 257억원으로 흑자 전환했다.
 
정태영 최대주주 서울PMC에 여동생 정은미씨 경영 참여 견제구
실제 경영에 참여하지 않고 있지만 외곽에서 장자 승계에 대한 견제구를 날리는 이도 있다. 정태영 현대카드 부회장이 최대주주이자 사내이사로 있는 서울PMC(전 종로학원)의 주주 정은미씨 이야기다. 정씨는 정 부회장의 여동생이다. 서울PMC는 종로학원이 학원 사업을 매각한 뒤 명칭을 바꾼 회사로 현재 부동산 임대업을 주로 하고 있다.
 
지난달 31일 법원에 따르면 대법원 제3부(주심 김재형 대법관)는 정은미씨가 서울PMC를 상대로 낸 회계장부와 서류의 열람 및 등사 청구 소송에서 정씨에게 패소 판결을 내린 원심을 뒤집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서울PMC의 지분 17%가량을 보유한 정씨는 정태영 부회장 등 경영진의 부적절한 자금 집행이나 법령·정관 위반 여부를 파악하고 책임을 추궁하겠다며 회계장부의 열람·등사를 요구했다. 그러나 오빠인 정 부회장 등이 이에 응하지 않자 정씨는 소송을 제기했다.
 

정태영 현대카드 부회장 [사진=연합뉴스]

1심과 2심은 정은미씨의 청구를 기각했다. “소수 주주의 열람·등사 청구 이유는 그 주장이 사실일지도 모른다는 합리적 의심이 들 정도로 기재돼야 하는데, 정씨가 기재한 청구 이유는 이런 합리적 의심이 들지 않는다”는 게 기각 이유였다.
 
정은미씨는 1심에서 패소하고, 2심 선고 직전인 2019년 8월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현대자동차그룹 계열사인 서울PMC에서 벌어지는 대주주의 갑질 경영에 대한 시정 요구’라는 제목의 청원글을 올리기도 했다.
 
정씨는 해당 글에서 “종로학원 설립자이신 저희 아버님이 저와 아들(정태영 부회장)에게 지분을 증여해주셨다”며 “그런데 아들이라는 이유로 다수의 지분을 증여받은 정 부회장은 위법과 편법으로 자신의 지분을 늘리고, 급기야 회사를 개인 회사처럼 운영하며 자신의 심복들을 회사의 임원으로 앉혀두고 17%가 넘는 지분을 가진 저에게는 회계장부조차 열람을 허용하지 않고 있다”라고 주장했다.
 
대법원은 정씨의 손을 들어줬다. 열람·등사 청구를 거부해야 할 이유가 있다면 그 이유는 회사가 입증해야 하며, 입증하지 못할 경우 청구를 거부해선 안 된다고 판단했다. 특히 “주주인 원고(정은미씨)는 열람·등사 청구에 이르게 된 경위와 목적 등을 상세하게 밝히고 있다”며 “청구를 받아들이지 않은 원심 판결은 상법 법리를 오해한 잘못이 있다”고 밝혔다. 이번 판결로 서울PMC의 경영에 정씨가 본격적으로 개입할 가능성이 커 보인다. 재계 일각에서는 아워홈처럼 ‘제2의 남매의 난’이 될 가능성도 있다는 관측이다.
 
CJ가(家) 이경후-이선호 남매, 최종 ‘경영 승계’ 향배 주목
현재까지는 별다른 다툼 없이 조용히 승계 경쟁을 벌이고 있는 남매도 있다. CJ그룹 이재현 회장의 장녀 이경후 CJ ENM 경영리더와 장남 이선호 CJ제일제당 경영리더가 바로 그들이다.
 
지난해 CJ그룹은 직급 체계 개편 방안을 발표, 올해부터 기존 상무대우부터 사장까지 6단계로 나뉘어 있던 임원 직급을 ‘경영리더’ 단일 직급으로 통합하기로 했다. 이에 이경후 CJ ENM 부사장대우는 경영리더로 직급 명칭이 변경됐다. 이선호 CJ제일제당 글로벌비즈니스담당 부장도 지난해 연말 인사에서 경영리더로 승진하며 임원 자리에 올랐다. 일각에서는 임원 명칭을 하나로 통일한 것을 두고, 누나보다 승진이 더딘 이선호 경영리더의 존재감을 부각하기 위한 복안이란 해석도 나왔다.
 
앞서 이선호 경영리더는 지난 2019년 9월 인천공항에서 변종 대마를 밀반입하다 현장에서 적발, 구속 기소돼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았다. 이로 인해 회사에서 정직 처분을 받아 후계 구도에서 밀려나는 듯 보였다. 하지만 해당 사건 1년 4개월 뒤인 지난해 1월 이선호 경영리더는 CJ제일제당 글로벌비즈니스담당 부장으로 복귀했고, 불과 1년여 만에 임원으로 승진했다. 재계에서는 이를 두고 CJ그룹의 장자 승계 작업이 본격화됐다는 분석이 나왔다.

 

이경후 CJ ENM 경영리더(왼쪽), 이선호 CJ제일제당 경영리더. [사진=CJ]

후계자로서 경영 능력은 누나인 이경후 경영리더가 좀 더 일찍 입증한 상태다. 지난 2017년 3월 CJ 미국지역본부 마케팅팀장 상무대우로 승진, 임원 자리에 오른 그는 같은 해 11월 CJ ENM 마케팅 및 브랜드 담당 상무로 발령받아 귀국하는 등 초고속 승진을 이어갔다. 이후 2020년 CJ ENM 부사장대우에 올라 브랜드전략실을 총괄하고 있다.
 
이선호 경영리더는 지난해 말 임원 승진을 기점으로 CJ제일제당 내 신설된 식품성장추진실 산하 식품전략기획1담당을 맡고 있다. 회사는 식품성장추진실을 거점으로 만두·김치·치킨·김·소스·가공밥 등 6대 글로벌 전략제품을 대형화한다는 전략이다. 또한 이 경영리더는 미주를 중심으로 글로벌사업 전략을 펼치는 한편 식물성 식품 개발, 스타트업 투자 등 미래 신성장사업을 맡고 있어 올해 본격적으로 경영 능력을 입증해야 하는 상황이다.
 
현재 두 사람은 지주사 CJ㈜의 지분율을 꾸준히 끌어올리며 경영 승계에 발판을 다지고 있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지난 1월 기준 이경후 경영리더는 1.19%에서 1.27%로, 이선호 경영리더가 2.75%에서 2.87%로 CJ㈜ 지분율을 늘린 상태다. 오는 2029년 신형 우선주가 보통주로 전환되면, 지주사 지분율은 이경후 4.3%, 이선호 5.87%로 각각 확대될 전망이다.
 
이런 가운데 CJ그룹은 헬스앤드뷰티(H&B) 스토어 분야 국내 1위 기업인 CJ올리브영의 올해 상장을 위해 기업공개(IPO)를 추진 중이다. 이경후 경영리더와 이선호 경영리더는 이 회사의 지분을 각각 4.26%, 11.09%를 보유하고 있다. 지난해 프리 IPO에서 전체 기업가치가 1조8400억원으로 평가된 CJ올리브영의 보통주는 주당 16만9560원에 책정됐다. 이를 감안할 때 남매가 보유한 지분 가치는 각각 780억원, 2000억원에 달한다.
 
CJ올리브영 상장 과정에서 두 사람이 보유 주식을 처분하면 지주사 지분을 더욱 확보할 수 있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앞서 두 사람은 지난해 3월 사모펀드(PEF) 운용사인 글랜우드프라이빗에쿼티(PE)의 CJ올리브영 투자 유치 당시 보유 주식 중 일부를 매각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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