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수아비 배심원들 ①] 국민참여재판 무용론...해법 고민하는 대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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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한지 기자
입력 2022-06-07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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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법원 '배심원 평결 존중 방안' 연구용역 입찰

  • 참여재판 배심원 평결 항소심 파기율 약 30%

  • "배심원 평결 존중하고, 항소심은 법리 위주로"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양육비가 해결된 게 720여 건, 신상이 공개된 뒤에 해결된 경우가 220여 건 등 총 1000여 건의 양육비 미지급 문제를 해결했다. 제가 한 행위로 많은 아이들이 양육비를 받게 됐다는 점에서 후회가 없다." - 배드파더스 운영자 구본창씨

이혼 후 양육비를 지급하지 않는 부모의 신상을 '배드파더스(Bad Fathers)' 사이트에 올린 혐의로 기소돼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구본창 대표가 지난해 10월 항소심에서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이는 국민참여재판 7명 배심원 전원의 무죄 평결을 뒤집은 판결이다.

배심원 평결이 뒤집힌 건 비단 구 대표 사건만이 아니다. 국민참여재판 약 30%는 항소심에서 뒤집히고 있다. 법조계에서는 국민의 사법 참여를 보장하기 위해 도입된 국민참여재판의 실효성에 의문을 던지고 있다.
 
배심원 평결 항소심 파기율 약 30%
6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은 지난달 30일 '사실인정에 관한 배심원 평결 및 이를 채택한 1심 판단의 존중 방안 연구' 연구용역 입찰을 공고했다. 이달 14일 접수를 마친 뒤 이달 말 협상대상자를 확정해 7월 계약을 체결할 계획이다. 

대법원의 문제의식은 특별한 사정이 없음에도 항소심이 1심의 만장일치 평의 결과와 그에 부합하는 1심 판결을 뒤집는 경우가 이어지고 있다는 데서 출발한다. 대법원은 "판결 법리를 재검토해 사실인정에 관한 배심원 평결 및 이를 채택한 1심 판단을 존중할 방안을 새롭게 연구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대법원 판례(대법원 2009도14065)에 따르면, 1심에서 배심원과 재판부의 판단이 일치돼 무죄가 난 경우라면 항소심 재판부는 명백한 반대 증거가 나오지 않는 한 이를 뒤집어서는 안 된다. 그러나 2심 재판부는 배심원 평결과 일치된 1심 판결 10건 중 3건은 뒤집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1심에서 배심원 평결과 재판부 판결이 일치된 비율은 93.5%이지만, 항소심 단계에서의 배심원 평결과 일치된 1심 판결 파기율이 29.5%에 달했다.

배심제를 오래 연구한 한 변호사는 "사실 1심에서 국민참여재판 평결이 나왔으면 항소심에서 명확한 반대 증거가 나오지 않는 이상 안 건드리는 게 맞다"며 "국민들의 의견을 수용해야 하는데 법관들은 진실을 더 잘 알고 능력도 더 있다는 생각이 깔려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활성화'와 멀어지는 국민참여재판
국민참여재판의 활성화는 우리 사법이 나아갈 방향성에 부합한다는 것이 대법원의 설명이다. 그러나 국민참여재판제도는 활성화와는 반대 흐름으로 나아가고 있다. 최근 5년간 국민참여재판 실시 건수가 꾸준히 감소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2016년 305건, 2017년 295건, 2018년 180건, 2019년 175건, 2020년 96건으로 급감했다. 2020년에 코로나19가 있었다는 점을 감안해도 2016년 이후 실시율은 지속적으로 감소했다.
 

[자료=대법원]

우리 법원이 법리 판단을 떠나 일반 국민들의 법감정과 법원칙 사이의 간극을 좁히자는 국민참여재판제도의 도입 취지를 간과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재경법원 판사는 "배심 재판의 최대 장점은 법관 독재를 배제하고 사법 재판의 민주적 정당성과 판결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담보할 수 있다는 점"이라며 "그런데 재판부가 다른 재판과 똑같이 진행하니까 무용론이 제기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고법 판사 출신 김유범 변호사(법무법인 화우)는 "국민참여재판의 취지가 국민의 뜻을 따르자는 것이기 때문에 평결에 대해 웬만하면 관여하지 않아야 한다"며 "배심원들이 법리에는 취약할 가능성이 높으니까 기본적으로 항소심에서는 법리 위주로 봐야 한다. 2심이 사실인정 문제를 보기 시작하면 답이 없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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