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R] 고령화 문제 해결책은 안락사뿐? 日 디스토피아적 전망 팽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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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주혜 기자
입력 2022-06-08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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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코로나 때문에 결혼 미뤘나…결혼도 출산도 의욕 없어

  • 아기 낳기 어려운 나라 만든 정부, 반성해야

지난 5월 프랑스에서 열린 제75회 칸 영화제에서 일본 영화 ‘플랜75’가 관객들의 주목을 받았다. 영화 내용은 이렇다. 일본 정부는 무료 프로그램을 통해 75세 이상인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죽도록 권장한다. 나이가 75세를 넘은 사람은 누구나 무료 안락사를 선택할 ‘기회’를 갖는 것이다. 정부는 안락사를 권하는 캠페인을 펼치고, 안락사에 동의한 노인에게는 소정의 돈을 지급한다. 단체 장례식 서비스도 무료로 제공한다.
 
AFP통신은 고령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인들에게 안락사를 권하는 ‘플랜75’는 “매우 현실적인 문제를 기반으로 한다”고 평했다. 플랜75 감독인 하야카와 치에는 AFP와 인터뷰하면서 영화 시나리오가 오늘날 일본 현실과 얼마나 가깝냐는 질문에 “10중 8”이라고 답하며 일본 젊은 층에 주목했다.
 
그는 “대부분 젊은이는 이미 인생의 끝이 어떻게 될 것인지를 걱정한다”며 “(젊은이들은) 노인을 부양하기 위해 열심히 일하지만 자기 차례가 오면 부양해줄 사람이 아무도 없을 것이란 생각에 답답해한다”고 덧붙였다.

고령화 문제 해결책을 안락사로 접근하는 이 영화의 근저에는 젊은 세대가 아이를 낳을 가능성이 없다는 일본 사회 전반의 팽배한 인식이 깔려 있다고 볼 수 있다.  
 
출생아 수 역대 최소···일본 정말 사라지나

일본 모습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일본이 저출산 비상사태를 선포해야 한다”고 최근 보도했다. 일본 후생노동성에 따르면 지난해 일본 출생아 수는 총 81만1604명으로 전년 대비 2만9231명 줄었다. 이는 관련 통계를 작성하기 시작한 1899년 이후 122년 만에 가장 적은 수준이며, 1차 베이비붐 시기인 1949년 출생아 수(269만6000명) 대비 30%에 불과하다.
 
특히 합계출산율은 2021년 기준으로 1.30으로 전년 대비 0.03%포인트 낮아졌다. 합계출산율이란 한 여자가 가임기간(15~49세)에 낳을 것으로 기대되는 평균 출생아 수다. 해당 수치는 2005년 역대 최저치(1.26)를 기록한 뒤 회복세를 보였으나 2019년에 하락세로 전환한 뒤 계속 악화하고 있다. 
 
저조한 출산율이 계속되면 일본은 사라질 수 있다. 국립사회보장·인구문제연구소(사인연)는 최근 충격적인 전망을 내놨다. 출산율 1.29가 유지되고 외국에서 인구 유입이 없다고 가정할 때 일본 총인구는 2340년에 100만명을 기록한 뒤 계속 밑돌다가 3300년께 일본 열도에는 아무도 살지 않게 된다는 것이다. 
코로나 때문에 결혼 미뤘다?
일각에서는 코로나19로 인해 결혼 시기가 미뤄지면서 출산율이 감소했다고 지적한다. 2021년 기준으로 혼인 건수는 50만1000여 건으로, 코로나19가 발생하기 직전인 2019년 대비 10만건 가까이 줄었다. 혼인 건수 증감은 출생아 수와 직결된다. 
 
그러나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코로나19가 결혼·출산에 마이너스 영향을 미친 것은 분명하다”면서도 “젊은 층이 결혼·출산을 꺼리는 경향은 코로나 전부터 확산하고 있었다”고 지적했다.
 
더구나 일부 나라에서는 코로나가 잠잠해지면서 출산율이 회복세를 보인다. 2021년 미국 출산율은 1.66으로, 전년 1.64에서 소폭 상승했다. 프랑스도 2020년 1.82에서 2021년 1.83으로 높아졌다.
 
싱크탱크 겸 경영컨설팅 회사인 일본 노무라종합연구소는 이들 나라의 강력한 저출산 대책이 출산율 회복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프랑스와 영국 등은 불임 치료 비용을 국가에서 전액 지원한다. 일본은 올해 4월부터 불임 치료에 보험을 적용하기 시작했지만 일과 가정의 양립을 고민하는 사람들이 많다. 게다가 불임 치료를 받기가 수월한 환경이 아니기 때문에 보험 적용 효과는 제한적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젊은 세대, 결혼도 출산도 의욕이 없다
후지나미 다쿠미 일본종합연구소 주임 연구원은 출산율 감소의 주요 원인은 “젊은 세대의 출산 의욕이 감퇴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과거에는 아이를 낳고 싶어도 육아 환경이 충분히 갖춰지지 않은 이유 등으로 인해 출산을 주저했다면 지금은 “아이를 낳고 싶다”는 의욕 자체가 완전히 꺾였다는 설명이다. 이는 어린이집을 늘리거나 아빠의 육아 휴직 장려 등을 골자로 한 기존 저출산 대책만으로는 출산율을 끌어올리는 효과가 크지 않다는 뜻이기도 하다.
 
출산 의욕이 사라진 요인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가장 큰 요인으로 꼽히는 것은 젊은 세대의 낮은 임금 수준이다. 현재 40대 후반 대졸 남성의 평균 실질 연봉은 10년 위 세대가 40대 후반이었을 때보다 약 150만엔(약 1400만원)이나 적다.
 
살림살이가 팍팍해지니 남자들 역시 결혼 상대방의 조건으로 여성의 경제력을 최우선으로 보기 시작했다. 사인연 조사에 따르면 결혼 상대방의 조건으로 중시하는 항목 중 경제력을 꼽은 비율은 1992년 27%에서 2015년 42%로 높아졌다.
 
후지나미 연구원은 “남녀 불문하고 젊은 층이 결혼 자체를 상상하는 것조차 어려워져 아이를 가지는 것을 체념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특히 비정규직에 결혼이나 출산은 먼 나라 얘기다. 닛케이아시아에 따르면 일본경제단체연합회가 3월 조사한 결과 첫 직장을 정규직으로 시작한 여성 가운데 63%가 배우자가 있고, 57%가 자녀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비정규직은 각각 34%, 33%로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 격차가 큰 것으로 집계됐다.
 
최근 정부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30~34세 여성의 노동 참여율은 2020년 79.6%로, 2015년 대비 5.5%포인트 증가했다. 육아휴직을 사용한 여성들이 적극 직장으로 복귀하고 있으나 비정규직이 많다. 일하는 여성 중 42.4%만이 정규직이다. 남성 근로자의 65.2%보다 훨씬 낮다. 무엇보다 비정규직은 정규직보다 수입이 적다.
 
아기 낳기 어려운 나라 만든 정부, 반성해야
가장 큰 문제는 아이를 낳기 어려운 나라로 만들어 버린 데 대한 반성이 정부에 희박하다는 점이라고 일본 언론들은 전했다. 기시다 정권은 내년 봄 어린이가정청을 출범시킬 계획이다. 각 부처에 흩어져 있는 어린이 관련 정책을 한 부처에 일원화하는 게 골자다.
 
그러나 닛케이아시아는 새 부처를 만드는 것만으로는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기에는 역부족이라고 지적했다. 저출산은 완전히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대책은 아이는 갖고 싶지만 육아 환경이 미흡해 출산을 주저하는 부부에 대한 지원이 중심이었다. 어린이집을 늘리거나 아빠의 육아 참여를 독려하거나 육아휴직 취득을 강조한 것이 전형적이다.
 
이들 지원 역시 중요하지만 출산율 저하의 가장 큰 근본 원인은 “자신의 경제 환경으로 인해 낳고 싶다는 의욕 자체가 사라진 것”이라며 “결혼과 출산을 쉽게 할 수 있도록 만드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닛케이아시아는 재차 강조했다. 이어 “정부와 재계는 젊은 층의 취업·수입 환경을 개선하는 데 심혈을 기울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 역시 효과 있는 대책을 새로 다시 짜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젊은 층의 경제 환경을 호전시키는 게 첫 번째 과제라는 것이다. 마쓰다 시게키 주쿄대 교수는 “정규직 중에도 임금이 부족한 사람이 많다”며 “젊은 층에 대한 경력 지원이 결혼과 출산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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