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건축 이대로 괜찮은가]공사중단 이어 조합 집행부 해임?...흑역사 남긴 둔촌주공 사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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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지연 기자
입력 2022-06-11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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둔촌주공 재건축 현장 모습. [사진=아주경제 DB]

'단군 이래 최대 재건축' 사업으로 불리는 서울 강동구 둔촌주공의 공사중단 사태가 발생한 지 50여일이 지났지만 좀처럼 해결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초기에는 분양가 산정 문제로 분양 시기가 차일피일 미뤄지더니 조합 내부 갈등으로 조합장이 교체되고, 새로운 조합과 시공단(현대건설·HDC현대산업개발·대우건설·롯데건설) 사이의 갈등이 격화되면서 현재 공사(공정률 52%)가 중단됐다.

서울시의 수차례 중재에도 불구하고 공사가 재개될 기미를 보이지 않자 공사 중단에 반발하는 조합원들은 급기야 현 조합 집행부 해임절차에 돌입했다.
 
전문가들은 둔촌주공 사태의 표면적 원인은 '공사비 증액' 갈등이지만 문제의 본질은 분양가상한제 규제, 조합의 주먹구구식 운영, 입찰과정의 각종 이권개입 등이라고 지적했다.
 
◇"참을 만큼 참았다"...조합 교체 약 2년 만에 새 조합 꾸리는 비대위

11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최근 둔촌주공 조합 정상화위원회(이하 정상화위)는 조합 집행부 해임 절차에 돌입했다. 정상화위는 공사중단에 반발하는 조합원들이 새로 꾸린 비상대책위원회 성격의 조직이다. 공사가 곧 재개될 거라는 조합 집행부의 설명과 달리 공사중단이 두 달 가까이 이어지면서 현 집행부를 더 이상 신뢰할 수 없다는 게 이들의 판단이다.
 
정상화위 측은 "서울시 중재 노력은 존중하지만 조합은 공사중단 후 지금까지도 불필요한 분쟁을 가중시키고, 조합원들에게 막대한 피해를 입히고 있다"면서 "현재 조합 집행부로는 공사 재개를 위한 협의·협상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해 공사 재개와 조합 파산 방지를 위해 집행부 해임절차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만약 정상화위가 조합 집행부 해임에 성공한다면 둔촌주공은 세 번째 조합장을 맞이하게 된다. 집행부를 해임하려면 전체 조합원 10분의1 이상의 해임 발의로 총회를 소집해야 한다. 총회에는 전체 조합원 과반수 이상이 참석해, 참석자 중 과반수가 안건에 찬성해야 한다. 현재 둔촌주공 조합원은 6123명(상가 포함)이다.
 
기존 조합을 해임하고 새 조합을 꾸려 다시 협상에 임하려면 시간도 문제지만 조합원들의 부담감도 크다. 둔촌주공은 분양가 이슈와 각종 비리 의혹으로 2020년 9월께 조합장이 한 차례 교체된 바 있다. 조합원들의 막대한 지지율로 탄생한 현 조합을 약 2년 만에 또 다른 조합으로 교체하기에는 심적, 물적 제약이 큰 상황이다. 
 
다만 시공단은 새 조합 추진 움직임을 반기는 분위기다. 시공단은 최근 정상화위와의 지속적인 소통, 서울시의 요청으로 공사 현장의 크레인 해체 작업 일정을 7월로 연기하겠다고 밝혔다. 현재 공사 현장에는 총 57대의 크레인이 설치돼 있다. 크레인은 해체와 재설치에만 6~9개월이 소요되는 중장비로, 공사중단 사태의 최후 보루다.
 
정상화위 관계자는 "집행부 교체와 별도로 '공사재개 및 조합파산방지를 위한 협의체' 구성을 시공단에 제안했고, 시공단이 이에 동의해 빠르게 협의를 완료하면 공사가 재개될 수 있다"면서 "갈등의 중심인 마감재 교체, 외관 특화 등 현 조합의 요구는 논의에서 제외하고, 고급화는 개별옵션을 통해 자율적으로 선택할 수 있게 해 조합원 분양계약과 일반분양을 최대한 빠르게 시행하겠다"고 말했다.
 
◇공사비 증액 문제로 시작된 갈등...'돌이킬 수 없는 강' 건넜나
 
둔촌주공 재건축 사업은 기존 5930가구를 철거하고 최고 35층·85개동·1만2032가구의 신축 아파트인 올림픽파크포레온을 짓는 사업이다. 총 공사비는 3조2300억원가량으로 설계비용까지 포함하면 공사비만 약 4조원에 달한다. 기존 조합원 수가 워낙 많고 공사비용이 크다 보니 조합원 사이의 의견 갈등, 이권개입, 부정부패 등의 의혹이 끊이질 않았다.  
 
조합과 시공단의 갈등을 불러온 1차적 원인은 5600억원가량의 공사비 증액계약이다. 2020년 6월 시공단과 전 조합 집행부가 공사비를 2조6708억원에서 3조2294억원으로 5600억원가량 늘리는 증액계약을 체결한 것을 새 조합 집행부가 인정할 수 없다고 반발하면서 시작됐다. 이에 시공단은 지난 4월 15일부터 사업장에서 모든 인력과 장비를 철수시켰다.
 
서울시는 중재안으로 변경계약에 따라 책정된 공사비에 대한 재검증을 한국부동산원에 의뢰해 그 결과를 증액계약에 반영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또 조합에는 공사 기간과 분양 지연으로 발생하게 될 금융비용 등에 따른 손실 등을 수용할 것을, 시공단에는 조합의 마감재 고급화 및 도급제 변경 요구를 수용하고 30일 내로 공사를 재개할 것을 권고했다.
 
이에 대해 조합은 사실상 수용을, 시공단을 거절을 택했다. 시공단은 조합이 법원에 제기한 공사도급변경 계약무효확인 소송과 공사계약변경 의결을 먼저 취소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에 대해 조합은 공사재개가 선행돼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가장 큰 문제는 시공단이 현 조합을 더 이상 신뢰할 수 없는 '업무 파트너'로 규정하고 있다는 점이다.

시공단 관계자는 "계약을 부정하는 계약무효확인소송을 제기해놓고, 계약대로 공사재개를 요구하는 내용증명을 발송하는 상식 이하의 행동을 보이는 조합을 더 이상 신뢰할 수 없다"면서 "오랜 기간 불신의 골이 너무 깊어져 성공적인 협업 파트너로서의 기능을 상실한 상태"라고 말했다.
 
◇제2의 둔촌주공 사태 막자...분상제, 공사비 개편 속도 빨라진다

전문가들은 이번 사태의 근본적 원인은 과도한 분양가상한제 규제, 조합의 전문성 부족, 재건축 입찰과정의 각종 이권개입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재건축은 비전문가인 아파트 입주민들이 시공사 선정부터 인허가, 분양 등 모든 절차를 맡아서 해야 하는데 자격요건을 갖추지 못한 이들이 수조원에 달하는 사업을 관리하다 보니 제2, 제3의 둔촌주공 사태가 발생할 요지가 크다는 설명이다. 
 
익명을 요구한 재건축 업계 관계자는 "재건축 추진을 위해선 입주민들이 시공사 이상의 지식과 재건축 관련 제도를 알아야 한다"면서 "둔촌주공 조합의 경우 사업비가 3조원이 넘는 초대형 프로젝트인데 이를 재건축에 대해 전문지식이 없는 선출직 조합장과 법적 자격이 없는 자문위원들이 총괄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지적했다.
 
조합원들의 무관심도 문제다. 둔촌주공 시공사업단의 한 관계자는 "갈등이 곪아터져 공사가 중단되고 뉴스에 나왔는데도 시공단이 마련한 현장설명회에 참여한 조합원들이 전체의 20~30% 수준이었다"면서 "발등에 불이 떨어졌는데도 정확한 문제 원인조차 파악하지 못하거나 방관하는 조합원들 모습을 보면서 사업규모가 큰 재건축 현장의 비애를 다시 한번 느꼈다"고 토로했다. 

공사가 장기간 지연되면 가장 큰 피해는 조합원 몫이다. 조합 비상대책위원회가 외부업체를 통해 피해 규모를 시뮬레이션한 결과 공사 중단 사태가 6개월 동안 지속될 경우 추정 손실액은 1조6000억원에 육박할 것으로 집계됐다. 조합원 1인당 추가로 부담해야 할 금액은 약 2억7000만원에 달한다.
 
주변 상인들도 힘들긴 마찬가지다. 둔촌주공은 재건축 전에도 5930가구 미니 신도시급 규모여서 강동구 둔촌동 일대 상권을 지탱했다. 재건축 사업이 시작되고 주민들이 떠난 자리는 공사 현장 근로자 4000여명이 대체했다. 그러나 공사가 중단되고 근로자가 철수하자 인근 식당들은 벌써 두 달 가까이 제대로 된 수입을 올리지 못하고 있다.
 
일반분양이 미뤄지고, 정부의 분양가상한제 개편 일정이 앞당겨지면서 저렴한 가격에 분양을 노리던 실수요자들도 울상이다. 업계에선 둔촌주공이 현행 분양가상한제로 일반분양할 경우 분양가는 3.3㎡(평)당 3400만~3500만원 선이지만 상한제를 적용받지 않는다고 가정하면 3.3㎡당 4000만~4500만원 선으로 훌쩍 오를 것으로 보고 있다. 전용 84㎡ 기준 분양가가 약 11억원에서 13억원 선으로 약 2억원 오르는 셈이다.
 
정부는 제2의 둔촌주공 사태를 막기 위해 분양가상한제를 개편하고 원자재 가격 인상분을 공사비에 제때 반영하도록 공사비 제도를 개선한다는 방침이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원자잿값과 토지비 등 분양가를 결정하는 요인들이 크게 오른 상황에서 분양가만 억제하면 이번 사태처럼 조합이 사업을 미루거나 극심한 갈등으로 서울 주택 공급이 늦어질 수밖에 없다"면서 "정부도 그런 점을 잘 알기 때문에 이번 '국토부-서울시 합동점검'을 통해 '당근과 채찍'을 동시에 주겠다는 시그널을 보낸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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