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유가 못 버틴 바이든, 빈살만 품고 젤렌스키 내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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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은숙 국제경제팀 팀장
입력 2022-06-13 1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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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유가가 미국 경제를 옥죄면서, 미국 외교정책에도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다음달 14~15일에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방문을 마치고 사우디아라비아를 찾을 예정이라고 미국 인터넷매체 악시오스가 12일(이하 현지시간) 보도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사우디를 방문해 바레인, 카타르, 아랍에미리트(UAE) 등의 중동 주요국 지도자들과도 만나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11일 월스트리트저널(WSJ)도 바이든 대통령의 사우디 방문 소식을 전했다. 매체는 바이든 대통령이 사우디 실권자인 무함마드 빈살만 왕세자와 만날 것이라고 보도했다. 대선 유세 당시 빈살만 왕세자를 강력히 비판해왔던 바이든 대통령이지만, 최근 공급 부족으로 유가가 급등하자 정치적 입장을 바꿨다는 평가가 나온다. 국제유가는 최근 배럴당 120달러를 넘어섰다. 미국 내 휘발유 가격도 갤런당 5달러를 돌파하면서 국민들의 경제적 부담이 크게 늘었다. 

이처럼 상황이 심각해지면서 일각에서는 미국이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입장에서도 변화를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가 전 세계 인플레이션을 밀어올리면서, 미국을 비롯한 서방 세계의 피로감이 커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빈살만 '왕따' 만들기는 없던 일? 미국, 사우디에 손 내미나 
원래 사우디는 친미 성향의 국가였다. 그러나 바이든 대통령이 사우디 반체제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의 암살 배후로 사우디 왕족을 지목하면서 양국의 관계는 크게 악화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대선 유세 당시 빈살만 왕세자를 국제적 '왕따'를 만들겠다고 공언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번 방문으로 바이든 대통령의 약속은 빛이 바랬다. 뉴스위크는 "우크라이나 전쟁이 바이든 대통령으로 하여금 사우디, 베네수엘라 같은 국가들에 어색한 (awkward) 약속을 건네도록 압박하고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전쟁으로 인한 인플레이션 때문에 바이든 대통령이 관계가 안 좋았던 국가들에도 마지못해 손을 내밀고 있다는 설명이다. 

뉴욕타임스(NYT)는 "다음 선거를 앞두고 있는 대통령들은 국내외 석유공급자들의 증산을 간청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고 12일 설명했다. 미국은 올해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있다. 빌 클린턴 전 대통령 집권 당시 에너지부 장관을 지냈던 빌 리처드슨은 NYT에 “불행히도 (바이든 대통령에게는) 현재 선택지 중에 좋은 것이 없다"면서 "사우디에 원유 생산량을 늘리라고 요구하는 것이 그나마 다른 대안보다는 덜 나쁠 것이다"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에너지 전문가들은 사우디의 증산조차도 빠르게 유가를 안정시키기에는 역부족이라고 보고 있다. 유럽 국가들이 러시아로부터 구매를 줄이면서 국제 원유 공급량은 훨씬 더 줄어들 수 있기 때문이다. 조지 W 부시 행정부에서 카타르 주재 미국 대사를 역임했던 체이스 운터마이어 역시 “대통령이 유가를 통제하기는 힘들다"라면서 "설사 국제유가가 다른 이유로 하락하더라도 바이든 대통령이 가격을 안정시키기 위해 노력했다는 것을 인정받지는 못할 것이다"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미국 스스로가 원유 생산을 늘려서 유가를 안정시켜야 한다는 지적도 있지만, 이 역시 쉽지는 않다. 환경운동가들과 많은 민주당원들이 (이 같은 정책은) 현 정부의 기후변화 정책에 역행한다고 반대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새로운 유정이 원유 생산을 시작하기까지는 몇 달이 걸리고, 파이프라인을 새로 건설하는 데도 몇 년이 소요되기 때문이다. 바이든 대통령의 사우디 방문이 언론에 알려진 뒤에도 국제유가가 즉시 하락하지 않은 것은 이 같은 이유 때문이라고 NYT는 지적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 밖에도 베네수엘라, 이란 등 장기간 미국과 대립하던 국가들과도 대화의 기회를 늘려 유가 안정에 기여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러나 매듭은 쉽게 풀리지 않고 있다고 NYT는 전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6월 8일(현지시간)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제9회 미주정상회의 개막식에서 연설하고 있다. [사진=AFP·연합뉴스]

 
젤렌스키 대통령에 대한 미묘한 입장 변화 
바이든 대통령은 에너지 대란에 도움이 될 만한 적국에는 대화의 손을 내밀고 있다. 반면 우크라이나에 대해서는 태도의 변화가 엿보인다. 바이든 대통령은 10일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러시아 침공에 대한 미국의 경고를 듣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모금 행사에서 기자들에게 (우크라이나에 대한) 러시아의 침공 가능성에 대해 "당시 많은 이들이 내가 상황을 과장하고 있다고 본 것을 나도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바이든 대통령은 "하지만 나는 데이터가 있었다"며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국경을 넘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었고 이는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고 지적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젤렌스키 대통령과 많은 사람들은 (이 같은 경고를) 듣고 싶어 하지 않았다"면서 "나는 그들이 왜 듣고 싶어 하지 않았는지 이해하기는 하지만, 결국 러시아는 침공했다"고 말했다. 실제 미국은 푸틴 대통령이 2월 24일 우크라이나에 대한 '특별 군사작전'을 발표하기 전부터 러시아 침공에 대한 경고를 여러 번 내보냈다. 

이 같은 바이든 대통령의 발언에 대해 우크라이나 측은 발끈하고 나섰다. 젤렌스키 대통령 측 대변인인 세르게이 니키포로프는 우크라이나 매체인 리가닷넷(LIGA.net)에 “젤렌스키가 침공 이전 바이든 대통령과 3~4차례 전화 통화를 했으며 두 정상은 러시아 침공 가능성에 대해 논의했다”고 전했다.

니키포로프 대변인은 또 “기억할지 모르겠지만 당시 젤렌스키 대통령은 긴장 완화와 러시아군 철수를 위해 서방국들이 선제적인 제재를 러시아에 가해줄 것을 미국 측에 요구했다”며 “이런 측면에서 우리는 미국 등 서방국가들(partners)이 오히려 우리 말을 들으려 하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다"고 반박했다. 

우크라이나 대통령실 보좌관 미하일 포돌야크는 "주요 국가들이 러시아 연방의 군국주의적 욕망을 잘 알고도 막지 못했으면서, 100일 넘게 훨씬 더 군사력이 강한 러시아와 붙어 전면전을 벌이고 있는 국가를 이제 와서 비난하는 게 무의미하다"고 비판했다고 러시아 독립언론인 인테르팍스는 보도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 2월 전쟁 발발 이후 우크라이나에 대한 전폭적 지원을 약속하면서, 러시아에 대한 강력한 제재를 이어갔다. 그러나 전쟁이 길어지고 인플레이션도 장기화하면서, 미국 내 바이든 행정부의 입지도 좁아지고 있다. 그 때문에 젤렌스키에 대한 바이든의 이례적 비판은 미국이 우크라이나에 전쟁 종료를 위한 양보를 요구하기 위한 것이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한편 우크라이나 동부에서 우크라이나군은 러시아군의 거센 공세로 수세에 몰렸다. 올렉시 레즈니코우 우크라이나 국방부 장관은 서방에 신속한 무기 지원을 호소하고 있다고 12일 영국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전했다. 레즈니코우 장관은 서방이 무기 지원을 약속했음에도 불구하고 신속한 전달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주장했다. 

레즈니코우 장관은 이번 인터뷰에서 “무기 지원이 지연되는 데 따른 비용은 우크라이나인의 목숨값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신속한 지원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세계가 잘 모르고 있거나, 또는 이해하더라도 피곤하게 생각하고 있다. 그냥 소수의 우크라이나인이 죽고 있다는 데 만족하는 것”이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최근 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 전선에서는 하루 100~200명의 우크라이나군이 사망하는 등 전투가 나날이 격렬해지고 있다. 러시아군은 무기 부족 등에 시달리고 있는 우크라이나군의 약점을 공략하면서 거센 공세를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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