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결 인사이드] 누적적자 없어도 정리해고 가능...'회사의 위기' 조건 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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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한지 기자
입력 2022-06-13 1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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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서초구 대법원 전경 [사진=유대길 기자 dbeorlf123@ajunews.com]

지속적 영업적자 등 심각한 경영위기 상태가 아니더라도 경영상의 필요성이 인정될 경우 인력 감축을 위한 근로자 정리해고를 할 수 있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정리해고 요건 중 하나인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에 대한 해석이 완화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대법원 3부(주심 김재형 대법관)는 지난 9일 강관 제조업체 넥스틸이 중앙노동위원회(중노위) 위원장을 상대로 청구한 부당해고 구제 재심판정 취소 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고 13일 밝혔다.
 
◆ 회사의 경영악화...회계법인 "인원 감축하라"
넥스틸은 2015년 4월 경영환경이 악화되자 회계법인에 경영진단을 의뢰했다. 회계법인은 경영악화를 해소하기 위해 생산인력 248명을 65명으로 축소해야 한다는 경영진단보고서를 내놨다. 이에 넥스틸은 구조조정을 단행하고 생산직 근로자 137명과 사무직 근로자 1명, 임원 6명이 회사를 그만뒀다.
 
이후 넥스틸은 또 '생산직 인력을 추가로 감축하라'는 경영진단보고서를 받고 2015년 9월 A씨 등 노조 임원 3명을 포함한 5명을 추가로 정리해고했다. A씨 등 근로자들은 중노위에 구제신청을 냈고, 중노위는 부당해고로 판단했다. 이에 넥스틸은 중노위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 '긴박한 경영상 필요성'이 인정되는가...1·2심 엇갈려
재판 쟁점은 넥스틸의 정리해고가 근로기준법에 따른 정리해고 요건 중 하나인 '긴박한 경영상 필요성'을 충족했는지 여부였다. 1심은 넥스틸의 인원 감축이 불가피한 상황이었다고 보고 회사의 손을 들어줬다.
 
그러나 2심은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성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보고 근로자 측의 손을 들어줬다. 2심 재판부는 "이 회사가 단체협약상에서 경영상 해고로 정하고 있는 '지속적인 적자 누적'은 없었다"며 "사무실 등의 부동산을 여전히 소유하고 있는 데다 대주주에게 현금배당한 점은 납득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 대법원 "급격한 영업 침체와 유동성 위기...정리해고 정당"
하지만 대법원은 근로자들의 손을 들어준 원심 판단을 파기하고 사건을 고법으로 돌려보냈다.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성이 있었다고 결론 내린 것이다. 이 같은 판단의 배경으로 △2015년 3월 말 국제 원유 가격의 하락과 미국 내 에너지 산업 침체로 넥스틸의 주력 상품인 유정관과 송유관에 대한 수요가 급감한 점 △미국의 반덤핑 관세로 인한 비용 상승효과 등으로 유정관 판매의 수익성이 크게 악화된 점 등을 꼽았다.
 
대법원은 "원고의 선적 기준 매출액, 매출총이익, 영업이익 등은 2014년도에 비해 급감했고, 향후에도 악화된 업황의 회복이 예상되지 않았다"며 "이러한 강관업체 전반의 위기 상황 속에서 원고는 급격한 영업의 침체와 유동성 위기에 직면하게 됐다"고 했다. 이어 "회사 차입금이 2014년 87%에서 2015년 224%로 급증했고, 근로자들도 정리해고의 필요성을 수긍하는 등 긴박한 경영상 필요성이 있다"고 판시했다.
 
대법원은 이어 "원고의 정리해고 당시 긴박한 경영상 필요성이 있었다는 사정에 대해서는 노사 간에 공감대가 있었다고 볼 수 있다"며 "단체협약에 따르면 경영상 이유에 의한 해고 사유로는 사업의 축소, 지속적인 적자누적 등을 들고 있는데, 이는 긴박한 경영상 필요성이 있는 사유를 예시한 것으로 보여 반드시 지속적인 적자누적 등이 있어야만 긴박한 경영상 필요성이 있는 것으로 볼 수는 없다"고 설명했다.
 
법조계에서는 이번 대법원 판결이 사실상 부도 위기 상황이 아닌 이상 정리해고를 인정하지 않는 등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 요건을 엄격하게 해석해왔던 것을 완화한 판결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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