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배구조 보고서] '3%룰' 사외이사도 100% 찬성표···재계 우려했지만 '찻잔 속 태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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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 기자
입력 2022-07-27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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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계는 최근 2~3년 동안 환경·사회·지배구조(ESG) 경영 트렌드를 강조하고 있다. 재계 20위권 안에서 ESG 관련 업무 조직을 신설하지 않은 기업집단은 사실상 없는 수준이다. 재계 안팎에서는 이 같은 변화를 환영하면서도 ESG 중 유독 지배구조 부문의 혁신이 미흡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최근 대기업들이 환경이나 사회 문제에 대한 관심과 투자 등을 늘려가고 있지만 여전히 지배구조 부문에서는 이전과 다를 바가 없다는 의미다. 아주경제가 대기업그룹의 지배구조 현황과 혁신 방향을 살펴봤다. <편집자주>

국내 대기업그룹 이사회에서 대주주를 견제하기 위해 도입된 3%룰이 큰 변화를 만들지 못하는 것으로 파악된다. 3%룰의 영향력을 우려하던 재계의 생각과 달리 사실상 '찻잔 속 태풍'에 그쳤다는 분석이 나온다.

◆3%룰로 사외이사 바뀐 한국앤컴퍼니, 지난해 이사회 찬성률·가결률 100%

26일 재계에 따르면 한국앤컴퍼니의 지난해 이사회 표결 내역을 분석한 결과 이사회 안건 찬성률과 그에 따른 가결률 모두 100%를 기록했다.

이는 한국앤컴퍼니보다 이사회 혁신에 관심을 기울이는 10대그룹 계열사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일이다. 실제 이사회 표결 내역을 공개한 10대그룹 계열사 151개사 중 131개사가 한국앤컴퍼니처럼 참석자 전원이 찬성표를 던진 결과 모든 안건이 하나도 남김없이 통과됐다.

지난해 단 한 번이라도 이사회 구성원 중 1명 이상이 반대표를 던지거나, 반대표가 많아 안건이 부결되는 경우가 발생한 10대그룹 계열사는 20개사에 불과했다.

그러나 한국앤컴퍼니가 최대주주와 경영권 분쟁을 벌이던 주요 주주가 추천한 사외이사가 구성원으로 포함돼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사회 투표 찬성률·안건 가결률 100%는 매우 특이한 사례로 볼 수 있다. 재계는 '3%룰'의 영향으로 처음으로 사외이사 선임에서 변화가 발생했다며 한국앤컴퍼니를 주목해왔기 때문이다.

지난해 3월 한국앤컴퍼니 주주총회에서 조양래 명예회장의 장남인 조현식 부회장(현 고문)과 차남인 조현범 사장(현 회장)의 경영권 분쟁이 불붙었다. 양측은 각자가 추천한 사외이사 겸 감사위원 후보자의 선임을 위해 표 대결을 벌였다.

그 결과 19.3% 지분을 가진 조 부회장이 42.9%의 지분을 보유한 조 사장에게 승리했다. 조 사장의 의결권이 3%로 제한되면서 여타 주주의 지지를 받은 조 부회장이 표 대결에서 승리했기 때문이다. 이는 지난해 상장 대기업 중에서 3%룰로 사외이사 선임 결과가 뒤바뀐 유일한 사례로 확인된다.
 

조현범 한국앤컴퍼니그룹 회장(왼쪽)과 조현식 한국앤컴퍼니그룹 고문. [사진=한국타이어앤테크놀로지]

◆최대주주 전횡 견제 노렸던 3%룰 도입취지 무색

지난 2020년 말 통과된 상법 개정안에 포함된 3%룰은 감사위원 1명 이상을 기존 이사와 분리해 선출하는 것이 핵심이다. 지금까지는 기업이 이사를 먼저 선임한 뒤 이사진 중 감사위원을 선출하는 절차를 거치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이에 자연히 감사위원도 이사 중 한 명으로 자연히 대주주의 영향력 아래 놓이게 되는 모습을 보였다.

개정안은 이를 방지하기 위해 대주주의 의결권을 제한했다. 사외이사를 겸임하는 감사위원을 선임할 때 최대주주 등의 의결권을 각각 3%씩으로 제한하고, 사외이사를 겸하지 않는 감사위원 선출 시에는 최대주주와 특수관계인 지분을 합쳐 3%로 제한하는 내용이 포함됐다.

당초 2020년 3%룰 도입이 논의될 때 거의 모든 기업은 이에 반대했다. 대다수 기업들은 3%룰로 인해 투기자본이 국내 기업에 침투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투기자본은 이사회에 핵심 인물을 심어놓고 자신들에게 일방적으로 유리한 의사결정을 하게 만들 수 있고, 이에 따라 중요 기술이 유출될 수 있다는 시각이었다.

그러나 지난해와 올해 2차례에 걸쳐 정기 주주총회를 마무리했으나 이 같은 투기자본의 공습을 받은 주요 기업은 단 한 곳도 없는 것으로 파악됐다. 실제 한국기업지배구조원과 한국상장회사협의회는 한국앤컴퍼니에 대해 지난해 정기 주주총회에서 3%룰의 영향을 받을 수 있었던 206개 기업 가운데 유일하게 대주주가 표 대결에 패한 사례라고 꼽았다.

◆3%룰 도입 과정서 이빨 뽑혀···대주주 꼼수에 취약

한국앤컴퍼니의 경우도 조 사장이 추천한 후보가 감사위원이 되지 못했으나 큰 변수가 없었다. 감사위원 선임 표결에서 패한 조 사장은 지난해 말 회장으로 승진해 한국앤컴퍼니그룹의 경영권을 최종 확보하는 데 성공했다. 감사위원 선임 표결에서 승리한 조 부회장은 같은 시기 고문으로 물러나야 했다. 3%룰로 선임된 사외이사도 이사회 표결 뿐 아니라 대주주를 견제한다는 기존 도입 취지를 이행하지 못한 셈이다.

이는 3%룰의 영향으로 선임된 사외이사도 연임 혹은 다른 기업으로의 이동에 신경을 쓸 수밖에 없는 상황과 연관이 깊다. 주요 주주의 추천으로 사외이사에 선임된 상황에서 홀로 독단적 행동을 반복한다면 연임하기 어려운 것은 물론 다른 기업 주요 주주들에게도 눈 밖에 나게 된다. 근무 시간이 짧으면서도 상당한 보수를 받는 사외이사로 재선임이 어려운 것이다.

이에 아예 소액주주의 추천으로 선임된 사외이사가 이사회에 진입해야 3%룰의 도입 취지를 살릴 수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하지만 이는 대주주의 꼼수로 대비할 수 있어 실현화되기 어렵다.

소액주주의 추천으로 사외이사가 선임되기 어려운 것은 국내에 도입된 3%룰이 '합산 3%룰'이 아니라 '개별 3%룰'이라는 점과 연관이 깊다. 당초 정부는 대주주와 특수관계인 의결권을 합산해 3%로 제한하기로 했으나, 재계 등의 반발로 각각 3%(개별 3%룰)로 법안을 수정했다. 이에 대주주가 3%룰을 회피할 방법이 많다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 사조그룹은 지난해 8월 임시 주주총회를 한 달 앞두고 3%룰을 완전히 무력화시켰다. 당시 일반주주들은 대주주인 주진우 사조그룹 회장이 전횡을 저질러왔다고 주장하며 감사위원 선임 표 대결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러나 주 회장은 지인 2명에게 각각 지분 3%씩 주식대차거래를 단행했다. 이는 주식대차거래를 하면 대여 받은 사람이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주 회장은 이 같은 방식으로 감사위원 선임 안건에서 행사할 수 있는 의결권 지분을 6% 늘려 소액주주들과의 표 대결에서 승리했다.

재계 관계자는 "3%룰의 영향력이 도입 당시 예상보다는 미미한 것이 사실"이라며 "지금 제도로는 도입 취지를 살리기가 어려울 것 같다"고 말했다.
 

[사진=한국타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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