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호균 칼럼] G2패권경쟁에 …한·미 반도체동맹 '돌격대' 되는 愚 피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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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균 명지대 경영정보학과 명예교수
입력 2022-08-08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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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지대 경영정보학과 명예교수

미·중 패권경쟁이 노골화되면서 한반도의 지정학적 가치에 더하여 경제적 가치가 동시에 돋보이고 있다. 미국의 ‘돌려막기’식 글로벌 군사패권경쟁에서는 한 발짝 비켜있는 것 같았던 한반도가 경제적 패권전쟁에서는 최전선으로 급부상하고 있다. 과거 미국 트럼프 행정부는 중국을 바이러스 발원지로 지목하면서 중국을 고립시키는 전략을 본격화하기 시작했다. 중국산 제품에 대해 25% 관세를 부과했다. 중국과 무역전쟁을 시작했지만 중국의 대미흑자는 오히려 늘어났고 인플레이션을 부추긴다는 비판에 바이든 정부는 관세 폐지를 중국과 협의하고 있다. 한국에 대한 일본의 반도체 소재 수출규제처럼 ‘자충수’로 귀결되고 있는 셈이다. 아울러 트럼프 행정부는 ‘미국우선주의’를 표방하면서 “미국에서 팔려면 미국에서 생산하라”는 요구를 거칠게 관철시켰다. 글로벌 기업들의 투자가 줄을 이었다. 이러한 정책은 미국 제조업의 경쟁력 향상을 위해 2010년 ‘제조업증강법’으로 시작된 오바마 정부의 제조업 부흥정책의 연속이라 할 수 있다. 오바마 정부의 제조업 중시는 1980년대부터 30년 동안 세계경제를 주도했던 금융주도 자본주의의 내재적 취약성에 대한 반성의 결과였다. 반성의 핵심은 제조업 없는 금융산업은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사실이다.

트럼프 정부에서 바이든 정부로의 정권교체에도 불구하고 제조업 중시전략은 오히려 강화되고 구체화되었다. 2021년 2월 바이든 대통령은 4대 핵심산업(반도체, 배터리, 에너지, 바이오)의 공급망을 점검한 결과 미국 첨단제조업의 취약성과 동시에 중국 경제가 급부상한 현실을 인식하게 되었다. 미·중 패권경쟁에서 한국은 반도체와 배터리를 동시에 생산하는 유일한 나라로서 대체 불가능한 전략국가로 자리 잡았다.

작금의 미·중 경제전쟁은 여러 특징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먼저 미국의 영향력이 예전 같지 않다는 점, 중국을 상대로 하는 미국의 패권전략에 대한 국제적 연대가 엉성하다는 점이 두드러진다. 둘째, 미·중 패권경쟁에서 미국은 경제적 이익을 요구하고 중국은 경제적 혜택을 베푸는 비대칭적 양상이 나타나고 있다. 논란도 적지 않지만 중국은 ‘일대일로’ 사업을 통해 아시아, 아프리카는 물론 유럽에서도 인프라 확충을 지원하면서 자신의 글로벌 공급망을 확대하고 있다. 반면에 미국은 과거처럼 자국 시장을 개방하여 동맹국들에게 경제성장의 기회를 제공하지 못하고 오히려 미국의 공급망 내재화를 위한 대미 투자를 요구하는 한편, 여러 가지 비용은 동맹국들이 알아서 전담하는 자기희생을 요구하고 있다.

셋째, 제재를 당하는 나라들이 과거의 경험을 바탕으로 대비해온 사실이 효력을 발휘하고 있다. 중국은 국내공급망을 보강했고 위안화의 국제화로 금융제재에 대비했다. 러시아도 달러 표시 보유외환의 비중을 11%로 낮추고 에너지 수출대금의 루블화 결제를 관철함으로써 서방의 금융제재 효력을 무디게 하고 있다. 미국의 반복적인 금융제재는 오히려 국제결제수단으로서 달러화를 기피하는 현상을 심화시켜 기축통화국으로서 미국의 지위를 흔드는 ‘부메랑’이 될 위험을 안고 있다. 넷째, 반도체동맹의 대오가 일치단결의 모습을 보일지 장담할 수 없다. 한국경제와 동반 상승하기보다 한국경제의 추락에 자국경제 재도약의 희망을 거는 일본이 한 배를 타고 있고, 대만은 ‘중국의 일부’라는 어정쩡한 지위로 인해 자신의 ‘몸집 부풀리기’ 전략에도 불구하고 ‘약한 고리’가 될 수 있다. 중국경제를 견제할 때 발생할 ‘비용과 편익’이 전반적으로 공정하게 분배될지에 대한 기대가 불확실하다.

다섯째, 다양한 동맹, 협의체 등을 구성하여 포위망을 구축하지만 그 기구 자체가 참여국들 내에서 민주적 절차에 따라 의회의 동의를 받아 구성되는 것이 아니다. 한국만 해도 ‘인도태평양경제프레임워크(IPEF)’, ‘칩4’에 참여하거나 군사동맹인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와 협력하고 우크라이나에 대한 무기 지원처럼 사실상 참전하는 것이 국회의 동의를 필요로 하는 것은 아닌지에 대한 논의조차 없다. 더욱이 북한 핵무기 개발을 지원했고 한국보다 일본에 우호적인 우크라이나를 위한 무기 지원이 명분이 있는지에 대한 논의도 없다. 미국의 조급함에 한국이 동조해야 하는지 의문이다. 여섯째, 원자재·에너지 수출국을 상대로 한 경제제재는 중간재를 생산하는 나라보다 효과적이지 못하다. 2010년 일본에 대한 중국의 희토류 수출규제는 즉각적인 효과를 보였다. 반면에 유럽의 러시아 에너지 수입규제는 유럽에 미치는 ‘제 살 베기’가 매우 심각하다.

반도체동맹에서 한국은 ‘한·미동맹의 확장’이라는 미국의 프레임에 갇혀 ‘돌격대’가 되어 국익을 소홀히 하는 우는 피해야 할 것이다. 중국의 반도체 굴기는 기술이 관건이므로 성패의 문제라기보다 시간의 문제일 가능성이 높다. ‘안미경중(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의 중도(中道)를 폐기하는 것은 경제적 리스크를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높일 수 있다. 미국의 제조업 부흥처럼 사회발전에서는 언제나 연속과 단절의 변증법이 작동한다. 전임 정부의 모든 것을 뒤집으려다 자신의 것이 뒤집힐 수 있다. “탈중국” 같은 감당할 수 없는 말을 앞세우는 것은 하책 중의 하책이다. 한국은 미국의 반도체 공급망 내재화에 최대한 협력하면서 반도체동맹에 참여하되 최대 반도체 생산국으로서 자율성의 공간을 최대한 확보하는 노력도 필수적이다.

미국의 경제제재에 대응하는 중국의 가장 강력한 카드로 항상 언급되는 수단이 희토류 공급 차단이다. 자연자원의 독점은 기술독점보다 효과가 즉각적이면서 장기적일 수 있다. 바이든 정부는 희토류의 미국 내 공급망 구축을 우선 과제 중 하나로 설정했다. 옐런 재무장관은 “베이징의 희토류 공급 중단에 대비하기 위해 미국은 희토류와 태양광 패널 등 중국산 핵심 제품에 대한 ‘과도한 의존’을 끝내고 싶다”고 말했다. 한국도 경제안보의 관점에서 무엇보다도 희토류 등 원자재 공급의 내재화와 다변화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 중국보다 부존량이 많은 것으로 알려진 북한 희토류를 개발하는 방안을 ‘개성공단 사업의 확장’이라는 새로운 틀을 만들어 검토할 필요가 있다. 지금 미국이 당면한 전략적 난제가 중국 견제라면 북한의 경제적 개방을 지원하는 전술적 유연성도 검토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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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러시아에 대한 압박을 높이기 위해 미국의 압력이 갈수록 막중해지는 국면에서 대통령의 권력이 여당 내 권력투쟁에 어른거리고 여당 원내대표 등이 권력 ‘사유화’ 논란에 휩싸이는 것은 대한민국과 국민에게는 커다란 불행이 아닐 수 없다. 모든 정치인의 가장 중요한 모토는 “할 줄 아는 일, 하고 싶은 일보다 해야 할 일”을 하는 것이어야 한다.
 

필자 주요 이력
▷서울대 경제학과 ▷독일 브레멘대 경제학 박사 ▷명지대 경영정보학과 교수 ▷경실련 경제정의연구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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