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잃은 한농대] 3년 만에 자퇴생 6배↑...농·어업 취업은 절반 '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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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석준 기자
입력 2022-08-09 1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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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코로나 여파로 자퇴생 늘고 농·어업 취업자 줄어들어

  • 현장 실습 사망사고 등 커리큘럼 관리 허술 지적

  • 총장 부재 장기화 조짐 우려...농식품부 "공모 중"

지난 1월 7일 조재호 농촌진흥청장(당시 한국농수산대학교 총장)이 졸업생 어장에 방문한 모습 [사진=한국농수산대학교]

농·어업 인재 양성을 위해 설립된 한국농수산대(한농대)가 수렁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다. 장학금, 기숙사비 등 학업에 들어가는 비용 모두 국가 부담에도 불구하고 중도에 학업을 포기하는 학생이 늘면서 존폐기로에 설 수 있다는 위기감마저 감돌고 있다.

9일 한농대에 따르면 2020년 1학기부터 2021년 1학기 시작 전까지 1년 동안 재학생 36명이 자퇴했다. 이는 3년 전보다 6배, 2년 전보다는 2배 늘어난 수치다.

한농대는 1997년 3월 한국농업전문학교로 개교한 이후 2007년 ‘한국농업대학 설치법’에 따라 한국농업대학으로 바뀌었다. 이후 2009년 10월 ‘한국농수산대학 설치법’으로 한국농수산대학으로 개명하고 지난해 4월 국회를 통과한 '한국농수산대학교 설치법' 개정안을 통해 현재 이름을 갖게 됐다.

설립 목적은 농어촌 발전을 선도하고 농수산산업을 이끌어나갈 인재를 양성하기 위함이며 국내 유일의 농·수산업 특성화 3년제 국립대학이다. 지난해 4월 기준 총 학생 수는 1670명이며 2020년까지는 해마다 550명씩, 2021년부터는 570명씩 신입생을 모집 중이다.

모든 재학생은 입학부터 졸업까지 입학금, 수업료, 기숙사비 등 교육에 필요한 모든 비용을 국가로부터 지원받는다. 1학년은 전공학과 관련 커리큘럼을 거친 뒤 2학년이 되면 농·수산업 선진국이나 국내로 장기현장실습을 다녀온다. 마지막 1년 동안에는 졸업 후 창업이나 영농설계 능력을 키우고 졸업논문을 작성한다.

졸업생은 졸업 후 6년간 의무적으로 농·수산업 분야에 종사해야 한다. 이를 어긴 졸업자는 3년간 본인에게 투입된 모든 교육비를 상환해야 한다. 2019년 한농대의 학생 1인당 교육비는 약 1935만원, 2020년에는 2150만원을 기록했다.

한농대는 해마다 한국 최초의 달 궤도선 ‘다누리’에 투입된 예산(1년간 약 338억원)과 맞먹는 교육비(2020년 기준 약 360억원)를 투입하고 있지만 대학 설립 목적인 농·수산업 인재 양성 성과는 주춤하고 있다.

2018년 한농대 졸업자 중 농림어업종사자로 진출한 비율은 30%(459명 중 141명) 수준에 그쳤다. 이후 2019년에는 농림어업종사자 비율이 50%(474명 중 239명)까지 올랐으나 2020년 곧바로 26%(550명 중 144명) 수준으로 하락했다.

한농대 관계자는 "취업 준비 등 개인사정이나 코로나19로 인한 집안 노동력 부족 등 경제 사정을 이유로 자퇴하는 경우가 있었다"며 "적성 불일치로 진로를 변경한 사례도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코로나 이슈로 농업회사법인이나 영농조합법인 관련 일자리가 감축된 여파로 취업자 수가 줄어들었다”며 “졸업 후 자금 부족 등 경제적 사유로 취업을 유예하는 경우도 있다”고 설명했다.
 

6월 2일 한국농수산대학교에서 열린 교명 변경 기념식 모습 [사진=한국농수산대학교]

몇 년간 정체된 한농대의 커리큘럼도 문제점으로 꼽힌다. 농림축산식품부 등에 따르면 지난 6월 한농대 화훼학과 학생이 실습 중 기계에 끼여 숨진 사고가 발생하자 학교의 실습 커리큘럼 관리가 비판을 받은 바 있다.

당시, 사망한 학생은 산업재해보상보험에 가입하지 않았다. 관련 법에 따르면 상시근로자가 5명 미만인 농가는 보험 의무가입 대상에서 제외되므로 해당 농가가 실습장으로 지정돼도 학생은 산재보험 보장을 받지 못하는 실정이다.

현재 한농대 재학생 490명은 연계된 실습농장 320곳으로 실습을 나간다. 이에 비해 농장을 관리하는 학교 전담인력은 2명에 그쳐 현장실습 안전과 노동권 보호 등에 대한 관리에 한계를 드러낸다. 다른 한농대 관계자는 “실습 전 사고예방 조치 실시협약, 현장교수·실습생 소집교육, 화상 점검·교육(매월), 지도교수의 주기적인 현장점검을 실시 중이나 사고예방을 위한 실효성 확보에는 미흡했다”고 말했다.

이어 “(산재보험) 적용 제외 사업장이라 하더라도 임의 가입을 유도하여 사고 발생 시 보장범위를 확대하도록 하겠다”며 “안전관리 가이드·매뉴얼 정비·제작, 안전전문가를 활용한 위험요소 관리, 현장교수·실습생 전문안전교육 이수 의무화, 현지점검 강화(주기단축 등) 등을 통해 안전사고예방을 강화하겠다”고 덧붙였다.

사고 이후 한농대는 320개 실습장에 대한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함과 동시에 학생, 전문가 등의 의견을 수렴해 안전사고 재발방지대책을 마련 중이다. 하지만 이번 사고 대책이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라는 지적도 나온다. 한농대의 실습환경에 대한 비판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기 때문이다.

한농대는 2017년 실습생들이 한여름 에어컨이 없는 방에서 생활하며 농장주(현장 교수)의 폭언과 노동 착취를 겪었다는 지적을 국회 감사에서 받은 바 있다. 당시 한농대는 실습기간, 실습장 지정요건 강화, 현장 교수 역량 강화교육 시행, 인권상인권상담창구 등 재발 방지책을 마련했다.

올해 3월에도 실습교과목의 학습 목표, 주5일 40시간 원칙 미준수 실습장 존재 등 장기현장실습 제도의 문제점을 스스로 인지하고 관련 대책을 발표했으나 결국, 3개월 만에 사망 사고가 발생했다.

일각에서는 한농대가 개혁이 필요한 타이밍이지만 총장 부재가 리스크로 남아 동력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최근 한농대 총장직은 조재호 11대 총장이 지난 5월 12일 농촌진흥청장으로 선임된 이후 공석 기간이 길어지고 있다. 앞서 한농대의 최대 공석 기간은 허태웅 10대 총장이 퇴임한 이후 조 청장이 오기까지 약 4개월이다.

소관 부처인 농식품부는 한농대 총장 선정을 인사혁신처에 맡기고 뒷짐만 지고 있다. 한농대 총장 임명 과정은 인사혁신처가 개방형 직위(책임운영기관) 공개 모집을 통해 후보를 선정하면 농식품부 장관이 임명하는 방식이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교육 자율성 보장을 위해 학교 경영은 한농대가 전적으로 관리한다"며 “한차례 총장직을 공모했지만 적임자가 나오지 않아 재공모를 진행 중인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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