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휴면카드, 급증할 수밖에 없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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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영훈 기자
입력 2022-08-20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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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아주경제 DB]

얼마 전 이사를 했다. 모처럼 만의 이사다 보니 신경 쓸 것들이 매우 많았다. 집을 옮기는 과정에서 부족한 자금을 대출받아야 했고 정수기, 비데, 공기청정기 등 생활필수품들에 대한 추가 구매도 필요했다. 이 비용을 모두 더하니 고정지출이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커졌다. 어쩔 수 없이 렌털 품목을 줄이려는 찰나에 상담사는 하나의 해결책을 제시했다.
 
답은 바로 ‘신용카드 발급’이었다. 신용카드를 발급받으면 우대금리가 적용돼 대출이자 부담을 줄일 수 있었고, 렌털 품목에 대한 비용 부담도 절반가량이 줄어들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이 중 대다수는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이미 지난 1년 사이 두 장의 신규 신용카드를 발급받았기 때문이다. 예금 상품에 가입할 때 한 장, 스마트폰을 신규 개통할 때 한 장이었다. 이때도 역시 높은 비용적 지원이 수반됐다. 이미 내 지갑 속 신용카드는 수용 가능한 적정 수준을 한참 넘어선 상태였다. 그럼에도 결과적으로 1~2장의 카드를 추가 발급받을 수밖에 없었다.
 
이후 오래전 발급받았던 신용카드는 자연스럽게 서랍 속으로 직행하게 됐다. 신규 카드의 실적 조건을 채워야 하니 어찌 보면 당연하다. 이렇게 쌓인 1년 이상 사용하지 않은 ‘휴면카드’만 2~3장쯤 된다. 나 역시도 최근 업계에 불고 있는 휴면카드 급증세에 일조하고 있는 셈이다.
 
국내 총 휴면카드 규모는 지난 2분기 말 기준으로 1400만장을 넘어섰다. 지난 2015년 800만장과 비교하면, 7년 새 600만장이나 늘었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현상을 그다지 긍정적으로 보지 않는다. 미사용 카드의 경우 분실 가능성이 크고, 금융 사고가 일어날 여지도 있기 때문이다. 정확한 금융 관련 통계를 산출하는 데도 부정적이다.
 
하지만 카드사들의 입장은 좀 다르다. 잠자는 카드가 차라리 계약을 종료하는 것보다는 낫다고 본다. 근본적인 원인은 카드사들의 고질적 문제인 ‘신용판매 점유율(MS)’에 대한 집착이다. 카드사는 과거부터 유난히 신판 MS에 예민한 모습을 보여왔다. 이를 바탕으로 업계 순위를 결정짓는 경우도 잦았다. 신판 MS를 늘리려면 개인 회원 확대는 필수다. 이러한 측면에서, 휴면카드 회원이라도 일단 확보해 놓는 게 효율적이다. 이들의 재이용을 유도하는 게, 회원을 재유치하는 것보단 쉽다.
 
문제는 이러한 흐름이 불필요한 마케팅 비용만 증가시킨다는 점이다. 회원 유치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이점 대비 비용 부담이 이미 적정 수준을 뛰어넘었다. 카드사의 전체 수익 중 신판 비중이 꾸준히 줄고 있는 추세와도 맞지 않는다. 물론 이 회원들은 대출, 데이터, 할부금융 등 다양한 신사업의 토대가 된다. 하지만 타사의 공격적인 영업으로 기존 고객을 잃는다면 결국 또 같은 비용을 들여 다른 회원을 끌어들여야 한다. 그렇다고 전체 소비 금액이 증가하는 것도 아니다. 결국 똑같은 시장 안에서 업체별로 불필요한 비용만 지출하는 출혈 경쟁이 가중되는 셈이다.
 
카드업계의 올 하반기 전망은 그다지 밝지 않다. 내년도 마찬가지다. 이럴 때일수록 휴면카드만 늘리는 불필요한 ‘고객 유치’보단, 신사업 역량 강화에 집중하는 게 바람직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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