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언의 베트남인(人)]김정인 세인 아이앤디(SEIN I&D)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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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노이(베트남)=김태언 특파원
입력 2022-09-02 1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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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초창기 대우의 과감한 투자는 베트남 진출의 교두보 역할"

  • "기술중심의 한국기업이 진출해 베트남 시장 선도해야"

  • "세계적 수준 올라선 하노이 한국국제학교에 큰 자부심 느껴"

  • "대규모 스마트시티 사업 주관해 한인사회와 성과 나눌 것"

김정인 세인 아이앤디(SEIN I&D) 회장[사진=아주경제DB]


김정인 세인 아이앤디(SEIN I&D) 회장은 베트남 한인사회 대표적인 원로 중 한 명이다. 그가 베트남과 인연을 맺은 지도 벌써 23년째. 김 회장의 경험 속엔 베트남 한인사회 발전의 역사와 현지 진출 기업들의 흥망성쇠가 모두 담겼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는 초창기 베트남 진출 한국 기업의 선봉장이던 대우그룹의 법인장으로 베트남에 입성했다. 이후 현지 핵심단체로 불리는 하노이한인회, 하노이상공인연합회(코참), 베트남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하노이한국국제학교 등 주요 단체의 수장을 두루 맡아왔다. 한인사회 인사 중 이처럼 주요 단체장의 보직을 모두 맡은 인물은 김 회장이 유일할 것이다.

최근에도 그는 한인회 자문위원으로서 제13대 한인회선거관리위원장을 맡는 등 한인사회 원로로서 다양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흔히들 하노이 한인사회가 끈끈하고 결속력이 좋은 이유로 교민사회 원로들이 든든한 버팀목이 되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이는 바로 김정인 회장과 같은 핵심 인사들이 중심을 잡고 교민사회에 조언과 격려를 아끼지 않으며 지원을 하고 있는 덕이다.

요즘 김 회장은 본인 회사인 세인 아이앤디를 통해 하노이 스마트시티 개발에 대한 열정을 내비치고 있다. 앞서 하노이시 정부는 향후 하노이시 발전을 견인할 5대 스마트 도시를 선정하고 마스터플랜을 발표했다. 김 회장은 이 중 가장 규모가 큰 쑤언마이(Xuan Mai) 신도시를 맡아 베트남 굴지의 대기업과 제휴해 한·베 복합문화도시로 개발할 계획을 갖고 있다. 

본지는 지난 25일 김 회장을 만나 베트남의 초기 진출 경험, 각 단체장 시절의 에피소드, 하노이 스마트시티 진행 상황, 향후 개인포부 등 다양한 경험과 의견을 듣는 시간을 가졌다. 다음은 김 회장과의 일문일답. 
 
 
본인에 대한 간략한 소개를 한다면.
베트남은 대우자동차 법인장으로 99년에 처음 왔다. 무엇보다 본인은 한때 수출 한국의 주도적 역할을 했던 대우맨이라고 말씀드리고 싶다. 77년도에 대우에 입사해 2004년에 퇴직했다. 32년간 대우에서만 근무했다. 당시 상황을 보자면 대우는 자동차, 전자, 건설, 통신, 은행, 섬유 등 다방면으로 베트남에 진출했다. 그룹 차원에서 보자면 베트남에 약 9억 달러를 투자했다. 90년대 당시로서는 상당한 투자금액이다. 김우중 회장이 당시 베트남에 수해가 크게 났는데, 400만 달러를 지원했고 베트남 정부가 크게 고마움을 표시한 것이 기억에 남는다. 이러한 대우의 과감한 진출 전략과 현지화가 많은 한국기업들의 초창기 베트남 진출의 교두보를 마련했다고 말씀드리고 싶다. 

본인은 자동차 부문 법인장으로 자동차 공장을 최초로 설립했고 하노이 시내버스 사업을 추진했다. 지금 보시는 하노이 대중버스교통망이 이에 대한 결과물이다. 또한 법인장 시절, 교민사회에 대한 지원을 위해 한인회 5~6대 한인회장을 맡았다. 동시에 같은 기간 한국국제학교 설립을 위한 초대 이사장도 맡았다. 이후에는 베트남 한인상공인연합회장을 역임했으며, 민주평화통일자문위원회 베트남 지회장 등을 맡았다.
 
대우자동차의 초창기 진출은 어떠했나.
대우는 이미 1992년 수교 이전인 86년부터 베트남에 진출했다. 당시에는 ㈜대우가 가장 먼저 진출했다. 이후 각 계열사가 들어왔고 수교 이후인 90년대 중반부터 대우그룹 계열사들이 본격적으로 들어왔다. 앞서 언급했듯이 본인은 자동차 법인장으로 근무를 시작했다. 보통 동남아는 일본의 앞마당이라고 한다. 당시에도 마찬가지로 베트남엔 도요타 등 일본자동차 기업들이 이미 진출해 있었다. 대우의 당시 주력 모델은 마티즈였다. 그 당시에는 현대와 기아차가 안 들어온 상황이었고 한국 브랜드는 대우가 유일했다. 

대우그룹의 파격적인 투자가 이어지면서 대우자동차 공장을 빠르게 설립할 수 있었다. 이후 임직원이 합심해 일본 브랜드를 제치고 처음으로 마티즈가 판매량 1위를 했다. 승용차 부문에서 기술력이 앞섰던 일본차들을 제치고 한국차가 1위를 한 쾌거다. 이때 약 3년간 1위를 해왔던 것으로 기억한다. 또 당시 베트남에 자동차 산업이 태동하면서 현재의 베트남자동차공업협회(VAMA)가 처음 만들어졌다. 이때 아무래도 일본기업의 진출 수가 많아 회장직은 일본에서 했다. 하지만 본인은 한국기업 수장으로서 부회장을 10년간 했다. 이러한 자동차공업에서 대우자동차의 역할은 초창기 한국 자동차의 초석을 다져왔을 뿐만 아니라 전반적인 한국의 이미지를 제고하는 역할을 했다고 생각한다.  
 
법인장을 하면서 한인회장과 한국학교이사장도 맡았다. 이 시기에 대해 말씀해달라.
하노이한인회장은 2004년부터 2007년까지 2년간 두 번을 연임했다. 특히 당시에는 한국학교 건립 문제가 있었다. 이전까지는 교민이 불과 3~4000명 수준이었지만 불과 수년 사이에 계속해서 교민이 불어났다. 당시 가장 큰 문제점은 주재원들이 가족을 두고 단신으로 부임하는 것이었다. 대기업 또는 공무원 주재원의 경우에는 그래도 국제학교에 보낼 수 있었지만, 중소기업들은 자녀들을 보낼 마땅한 한국학교가 없었다. 무엇보다 한국 학생들이 한국의 문화와 사상을 배울 기회가 충분치 않은 것은 문제라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본격적인 한국학교 설립을 위한 공청회는 2005년부터 시작됐다. 먼저 대안학교로 해서 주재원 아내들이 가르치는 방식으로 사과나무 학교라는 것을 열었다. 그러다가 2006년도에 미딩의 한 초등학교에 1개 층을 빌려서 56명으로 최초의 한국국제학교를 열었다. 이후 성금을 모으기 시작해서 교민사회에서 400만 달러를 모았고 한국 정부에서 480만 달러를 공여받았다. 결국 본국정부와 현지 교민성금이 합친 880만 달러로 지금의 한국국제학교 부지를 매입하고 건물을 신축할 수 있었다. 이 당시 많은 한인 원로들이 참 많은 노력을 했던 것 같다. 이제 하노이한국학교는 각국의 한인학교 중에서도 가장 모범적인 사례가 됐다. 매년 전 세계 국제학교 평가에서 최우수권이다. 또 한국 교육부에서 교사들이 누구나 오고 싶어 하는 부임지가 됐다. 
 
하노이 한인상공인연합회(코참) 회장 시절은 어떠했나.
코참 회장 때 기억에 남는 시기는 베트남과 중국의 남사군도(남중국해) 분쟁이다. 이 당시 베트남과 중국의 관계가 악화되자 수만명의 성난 시위대가 많은 중국사업장을 공격했다. 이때 일부 베트남인이 일부 한국공장을 중국공장으로 착각하고 공격을 했다. 하노이 코참은 당시 상황을 즉각 파악하고 각 회원사들에게 주변에 한국공장이라는 것을 적극적으로 홍보하라고 했다. 이에 많은 한국공장들이 일치단결해 공장 앞에 태극기를 걸었고 초기에는 피해를 입었지만, 이후에는 피해가 없었다.  

또 지금은 베트남 최대 연례포럼 행사로 거듭난 베트남비즈니스포럼(VBF)을 발족한 것이다. 당시에는 이렇다 할 상공인연합회의 포럼이 없었다. 이에 유럽상공인연합회, 미국상공인연합회 등과 모여 대 베트남정부와 소통기구인 VBF를 최초로 만들었다. 이제는 VBF는 연2회 정례적으로 개최되고 베트남 총리가 직접 참석한다.

 

김정인 세인 아이앤디(SEIN I&D) 회장 [사진=아주경제DB]

수교 30주년을 맞아 한국과 베트남의 새로운 관계 설정이 요구되고 있다. 그간의 경험에 비추어 의견을 피력한다면.
베트남은 이제 아세안을 넘어 아시아의 맹주다. 2030년 중진국 중 고소득 국가 도약을 노리고 있고 2040년에는 국민소득 4만 달러로 선진국 자리를 노리고 있다. 베트남은 애국심과 조직력이 강하다. 또 높은 교육열과 신분상승 욕구가 강한 국민성을 가지고 있다. 모두 베트남이 발전하게 하는 원동력이다. 특히 한국과는 산업분야에서 상호보완적인 관계에 놓여있고 또 정치적으로는 중국을 견제할 수 있는 상호보완적인 동맹국도 될 수 있다고 본다. 이에 따라 우리도 베트남의 변화하는 사회구조에 초점을 다시 맞춰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동안 베트남에 대한 우리의 해외투자는 70%가 제조업에 집중돼왔다. 하지만 이제는 디지털경제다. 

베트남은 2040 마스터플랜을 통해 경공업 중심국에서 벗어나 하이테크 국가로 나아가고자 하는 비전을 발표했다. 특히 베트남 정부는 향후 GDP의 상당 부분을 디지털경제에서 창출한다는 목표다. 이러한 분위기에 해외투자 기업도 하이테크 기업으로 선별해서 도입하고 있다. 따라서 한국이 강한 IT분야 산업을 베트남에 진출시키고 새로운 베트남 진출 로드맵을 다시 써나가야 한다. 디지털경제와 관련한 기술기업들이 집중적으로 나와서 이를 선도해야 한다. 그래야 베트남에서 향후 10년 먹거리가 더 생긴다. 베트남의 내부 변화를 잘 읽고 남들보다 두 발자국 앞서 기회를 선점해야 한다고 제언하고 싶다.
 
현재 운영 중인 세인아이앤디(SEIN I&D)의 역점 추진사업은 무엇인가.
세인아이앤디는 베트남 굴지의 대기업들과 연계하여 스마트시티, 산업공단 주상복합단지 등 신규사업들을 개발 중이다. 특히 하노이 5대 위성도시 중 하나인 쑤언마이(Xuan Mai) 지역을 스마트도시로 발전시키고자 노력 중이다. 

하노이 스마트시티 계획은 지난 5월 하노이시 당서기를 통해 공식화됐다. 이 계획안에 따르면 하노이 도심인구의 100만명 이상이 이주할 계획이다. 특히 쑤안마이 지역은 4300ha 규모로 새로운 하노이 위성도시 중 가장 규모가 크고 한국이 주도적으로 참여하는 유일한 스마트 신도시다. 현재 쑤언마이는 2000분의 1의 마스터 플랜이 나왔고 구체적으로 구획을 나누고 건축개념이 들어간 500분의 1의 계획이 포함된 사업허가권이 진행 중이다. 에피소드를 전하자면 원래 쑤언마이 지역은 호찌민이 통일 이후 새로운 수도로 정했던 곳이라고 한다. 그만큼 개발하기에 자리가 좋은 곳이라는 얘기다. 또 현재 베트남에 제조업이 많이 진출한 것 같지만 여전히 공단이 부족하다. 진출기업들이 오면 막상 입주할 공단을 찾기 힘들다. 그래서 쑤언마이와는 별도로 공단 개발도 지속적으로 추진하려고 한다. 
 
마지막으로 베트남에서 향후 개인적인 포부와 목표가 있다면.
어떻게 보면 본인은 베트남에서 가장 많은 복을 받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대우 세계경영 깃발로 베트남에 처음 들어와 법인장, 한인회, 코참, 한국학교, 민주평통 등 다양한 역할을 역임해왔다. 이를 통해 한인사회를 위해 나름 봉사하고 헌신하면서 기반을 만드는 데 일조해왔다고 자부한다. 이런 기회를 얻을 수 있게 해준 우리 교민사회에도 감사함을 잊지 않고 있다. 이제 고희를 바라보는 나이에 큰 욕심이 없다. 마지막으로 희망이 있다면 현재 진행하고 있는 스마트시티 사업이 결실을 맺어 성과가 생긴다면 그 몫을 교민사회와 함께 나누고 싶다는 바람이다. 덧붙여 길은 놓여있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 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본인은 그동안 베트남이라는 미지의 길을 개척해 왔다. 이제 남긴 발자국을 더듬어 가며 교민사회에 남긴 나의 세월이 하노이 교민 역사에 한 발자국으로 남기를 소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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