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씨네 리뷰] 취향 따라, 호오 갈릴 '늑대사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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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송희 기자
입력 2022-09-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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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적이네요. 이 조명, 온도, 습도···." 한 예능 프로그램의 출연자가 남긴 말이다. 장소, 날씨, 몸 상태 등 하나하나가 모여 '분위기'를 만든다는 의미다. 영화도 마찬가지. 그날의 기분, 나의 경험이 영화의 '평가 기준'이 되기도 한다. 이처럼 '최씨네 리뷰'는 필자의 경험과 시각을 녹여 관객들에게 영화를 소개하는 코너다. 조금 더 편안하고 일상적으로 담아내고자 한다. <편집자 주>
 

영화 '늑대사냥' 스틸컷 [사진=TCO㈜더콘텐츠온]

'호러 영화'를 즐기는 팬들 사이에서도 갈리는 취향이 있다. 바로 초자연적인 사건이나 악령·악마 등을 소재로 하는 오컬트 무비와 연쇄 살인범 등이 등장하는 슬래서 무비에 관한 취향이다.

개인적인 '호러 영화'의 취향으로는 '슬래셔 무비'보다는 '오컬트 무비'를 선호하는 편이다. 슬래셔 무비, 특히 고어물(Gore, 선혈이 낭자한 공포 장르로 혐오감·반사회성 등이 강조된 공포의 하위 장르)은 피할 수 있으면 피하고 싶은 게 솔직한 마음이다.

하지만 영화 보는 게 일이니, 취향이 아니라고 도망 다니거나 피할 수만은 없다. 특히 영화 '늑대사냥'처럼 시사회 전부터 '최고 수위'로 입소문을 타는 작품은 도망칠 수 없으니 마음의 준비를 하는 수밖에 없다. '늑대사냥' 측은 시사회 직전 "높은 폭력 수위의 소재와 장면으로 청소년관람불가 등급을 받았다. 기자님들께서는 시사 신청 결정에 참고 부탁한다"고 알려오기도 했었다. 이례적인 안내였고 도망가고 싶은 마음이 8할쯤은 됐다. 하지만 어쩌겠나. 피할 수 없으면 즐겨야지. 마음을 단단히 먹고 시사회를 찾았다.
 

영화 '늑대사냥' 스틸컷 [사진=TCO㈜더콘텐츠온]

한국은 동남아시아로 도피한 인터폴 수배자들을 이송하기 위해 화물선을 이용하기로 한다. 베테랑 형사들과 극악무도한 수배자들은 각각 다른 속내를 품고 움직이는 교도소 '프론티어 타이탄'에 오른다.

한편 '종두'(서인국 분)와 일당들은 '프론티어 타이탄'을 탈출할 계획을 세운다. 한국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도일'(장동윤 분)은 '종두'와 대립하지만, 그의 기세를 꺾을 수는 없다. '종두'는 거침없이 형사들을 제압하고 '프론티어 타이탄'을 장악하지만, 화물선 깊숙한 곳에서 제3의 인물이 깨어나며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된다.

"높은 폭력 수위의 소재와 장면으로 청소년관람불가 등급을 받았다"는 제작진의 말은 사실이었다. 국내 영화에서는 만나보기 힘든 정도의 잔혹함과 폭력적인 표현으로 범죄·스릴러·액션 장르보다는 슬래셔 무비·고어물에 가까워 보였다. 나름대로 '마음의 준비'를 하고 갔지만 견디기 힘든 건 사실이었다.

김홍선 감독은 2017년 필리핀 한국 간 범죄자 송환과 1940년대 초반 일본 731부대의 인체실험을 하나의 이야기로 엮어냈다. '종두'가 '프론티어 타이탄'을 장악해나가는 과정과 '인체실험'으로 인간병기가 된 '알파'가 맞닥뜨릴 때 이야기는 다른 방향으로 흐르고 영화의 장르까지 반전시킨다. 힘이 센 이야기들이 전속력으로 질주해 어느 순간 충돌하는 모양새다. "두 사건을 엮는다면 역동적인 이야기가 될 것"이라고 여겼다는 김홍선 감독의 예상은 적중했다. 강한 이야기의 충돌이 새로운 에너지를 만들어낸 건 사실이지만 이음새가 매끄럽거나 탄탄한 건 아니다.
 

영화 '늑대사냥' 스틸컷 [사진=TCO㈜더콘텐츠온]

영화는 여러 방면에서 클리셰를 깨부수고 관객의 짐작을 뒤엎는다.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흐르는 건 '늑대사냥'의 장점이기도 하다. 보통의 영화였다면 막강한 악인 하나가 등장인물들을 압박하겠지만 '늑대사냥'은 '프론티어 타이탄호'라는 한정적인 공간 안에서 여러 명의 악인을 등장시켜 한시도 마음을 놓을 수 없게 만든다. 언제 어디에서 어떤 이가 등장하더라도 안심할 수 없다.

'프론티어 타이탄호'는 사실적인 공간 묘사로 관객들을 더욱 압박한다. 제작진은 선박 세트가 아니라 리얼함을 강조하기 위해 실제 여객선 한 대와 벌크선 한 대를 구해 세트장과 연결하여 동질화하는 작업을 진행했다. 김홍선 감독은 상선과 관련된 다큐멘터리와 자료들을 보면서 선박을 이미지화하는 작업을 진행했고 제작진은 영화의 콘셉트에 딱 맞는 선박을 찾기 위해 수 개월간 전국을 수소문한 끝에 '프론티어 타이탄호'를 찾아냈다. 좁고 한정적인 공간 안에서 액션이 펼쳐지기 때문에 제작진은 '트론티어 타이탄호' 내부에 더욱 집중했다는 후문이다.

개성 강한 캐릭터들의 향연도 볼거리 중 하나다. 탈출을 계획하는 일급 살인 인터폴 수배자 '종두'부터 한국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범죄자 '도일', 중앙 해양 특수구조 팀장 '대웅'(성동일 분), 형사팀장 '석우'(박호산 분), 여성 강력 범죄자 호송 담당 형사 '다연'(정소민 분), '종두'의 오른팔 '건배'(고창석 분), 존속살인 수배자 '명주'(장영남 분) 등 강렬한 캐릭터들이 빚어내는 호흡과 충돌이 흥미롭다. 개성 강한 캐릭터들이 서로의 기세에 밀리지 않고 제 몫을 해낼 수 있었던 건 배우들의 탄탄한 연기력 덕. 연기 구멍 없는 배우 라인업 덕에 다소 과장된 캐릭터일지라도 관객들을 설득할 수 있었다. 특히 '종두' 역의 서인국은 필모그래피 중 가장 강렬한 캐릭터를 소화, '종두'라는 인물을 살벌하게 그려냈다. 영화 중반부 분위기 반전의 카드로 제 몫을 톡톡히 해냈다.
 

영화 '늑대사냥' 스틸컷 [사진=TCO㈜더콘텐츠온]

슬래셔 무비·고어물의 마니아들에게는 반가운 작품일지도 모르겠다. 매끄럽지는 않더라도 롤러코스터처럼 질주하는 힘이 세다. 범죄·스릴러·서스펜스를 기대했던 관객이라면 당혹스러울 만한 작품일 수도 있다. 장르적 취향이 분명한 작품처럼 읽힌다. 

김 감독은 '늑대사냥'이 3부작 중 2편에 해당한다고 말했다. 애초 시리즈물로 기획되었기 때문일까? '늑대사냥'의 결말이 석연치 않다. 마무리라고 보기 어려운 찜찜한 가능성을 열어둔 채다. 김 감독은 '늑대사냥'의 프리퀄(작중 시간대의 이전 이야기)의 시나리오는 완성되었고 시퀄(작중 시간대 이후 이야기)의 기획도 마무리되었다고 설명했다. 

'늑대사냥'은 제47회 토론토국제영화제에 미드나잇 매드니스 부문에 공식 초청받아 월드 프리미어로 상영했다. 제18회 미국 판타스틱 페스트 호러 경쟁 부문과 시체스 국제판타스틱영화제, 산세바스티안 호러판타지영화제에도 공식 초청받았다. 21일 개봉. 관람등급은 청소년관람불가이며 러닝타임은 121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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