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유선의 시시비비] 대통령이 낸 언어영역 듣기평가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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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유선 기자
입력 2022-10-01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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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국민이 다 함께 대학수학능력시험 언어영역 듣기평가를 치르는 느낌이다. 출제자는 대한민국 대통령. 그런데 정답은 밝혀지지 않았다. 출제자는 정작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다. 그저 “진상은 확실하게 밝혀져야 한다”고 했을 뿐이다.

출제자가 침묵하니, 여야의 날 선 ‘대리 공방전’만 치열하다. 결국 국회는 발언 당시 대통령과 동행한 박진 외교부 장관의 해임건의안을 속전속결로 통과시켰다. 물론 여당 없이 거대 야당이 단독으로 표결 처리를 했다. 당연히 정국은 급랭 분위기다.

당장 이달 4일 시작하는 국정감사장에서 여야의 피 튀기는 공방전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 가장 국회가 국회답게 일하는 시즌이 바로 국감인데, 대통령의 발언 여진으로 국감마저 무위에 그칠 공산이 커졌다.
 

도어스테핑에서 발언하고 있는 윤석열 대통령. [사진=연합뉴스]

또 다른 논쟁거리는 ‘외교 참사’ 여부다. 대통령실은 이번 발언이 공식석상이 아닌 자리에서 한 ‘사적 발언’이라고 강조한다. 하지만 야당은 국격을 떨어트린 외교 참사라고 맹비난하고 있다. 계속되는 민주당의 비판에 대해 국민의힘은 “영국, 미국은 조문도 잘돼서 감사하고 문제없다고 하는데 민주당만 문제 있다 하니, 억지로 대한민국을 자해하는 참사가 아닌가”라고 되받아쳤다.

국어사전에는 ‘참사’를 ‘비참하고 끔찍한 일’로 설명한다. 영어의 disaster에 해당한다. 그렇다면 이번 일을 사적 발언 ‘사건’이라고 대치해볼까. 사건의 사전적 풀이는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거나 관심을 끌 만한 일’이다. 영어의 event 또는 accident에 해당한다. 이번 대통령의 사적 발언은 과연 참사인가, 사건인가. 여야의 엇갈린 주장에 국민의 피로감은 가중될 뿐이다.

수능에서도 정답이 두 개이거나, 아예 맞는 답이 없는 등 출제 오류가 있으면 한국교육과정평가원장이 모든 것을 책임지고 사퇴한다. 대통령의 사적 발언이 모든 정치적 이슈를 집어삼키고 있다. 이 정도면 모든 응시자의 답을 정답 처리해주든가, 아니면 문제의 오류를 시인하고 사과하는 게 깔끔하다.

대통령의 발언을 최초 보도했다는 이유만으로 MBC가 여권의 총공세를 받는 것도 촌극이다. 안타까운 것은 이번 발언 영상을 온 국민이 언제 어디서든 무한 재생해 볼 수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정답의 진위는 계속 엇갈릴 수밖에 없다. 누구는 ‘바이든’으로 들린다고 하고, 누구는 대통령실의 해명대로 ‘날리면’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XX’와 ‘쪽팔려서’라는 단어에 대한 이견은 아예 없다. 정확히 들리기 때문이다.

누구나 욕을 할 수 있고, 비속어도 남발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주인공이 하필이면 취임 100일을 조금 넘긴 윤 대통령이라는 것에 국민의 부끄러움은 계속된다. 언제까지 온 국민이 대통령의 발음을 정확히 맞히기 위해 재생 플레이 버튼을 눌러야 하나. 이제 모든 국민이 바라는 것은 대통령의 명쾌한 ‘정답 설명’, 단지 그것뿐이다.
 

석유선 정치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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