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스페셜] '시진핑 1인천하' 중국 5년의 빛과 그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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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배인선 특파원
입력 2022-10-06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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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27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신시대를 향해 나아가자'는 주제로 열린 시진핑 시대 집권 10년 성과 전시회를 둘러보고 있다. [사진=신화통신]

지난달 27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찾은 베이징 전람관. 현재 이곳에선 '신시대를 향해 나아가자(奋进新时代)'는 주제로 시진핑의 집권 10년 성과를 전시 중이다. 

이 자리에서 그는 "오랫동안 해결하지 못했던 난제를 극복하고 장기적으로 중요한 대업을 완수했다", "정치·경제·이데올로기·자연 등 방면의 시련을 견뎌내 당·국가사업은 역사적 성과를 이뤘다”,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을 실현하기 위한 제도적 보증, 굳건한 물질적 기초, 주동적인 정신적 에너지를 제공했다" 등의 표현으로 자화자찬했다. 

2017년 집권 2기를 시작한 시진핑은 미·중 무역갈등,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양안(兩岸, 중국 대륙과 대만) 갈등,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경기 둔화 등 다방면에서 여러 가지 압박에 맞닥뜨렸다. 이러한 위기감 속에서 그는 내부적으로 인민의 단결을 외치며 리더십을 공고히 함으로써 중국 공산당 20차 전국대표대회(당대회)에서 3연임이 확실시되고 있다. 

16일 열리는 중국 20차 당대회를 앞두고 시진핑 집권 2기 성적표를 정치·외교·경제·사회 민생 등 방면에서 되돌아본다.
 
'인민 영수'로 毛와 동급 반열에···장기집권 정당화
“부패와의 전쟁에서 압도적 승리를 거뒀다.”

시진핑 주석은 2018년 12월 당중앙정치국 회의에서 부패와의 전쟁에서 승리를 선포했다. 집권 1기 ‘부패에는 성역이 없다’는 구호 아래 중국 최고 지도부인 정치국 상무위원을 역임한 저우융캉을 비롯해 후진타오 전 국가주석 비서실장인 링지화, 차기 지도자 물망에 올랐던 쑨정차이 등 '부패 호랑이'가 줄줄이 낙마했다. 반부패는 종엄치당(從嚴治黨·엄격한 당 관리)이 목적이기도 했지만, 정적 제거의 수단이기도 했다. 이를 계기로 시 주석의 당내 지위는 한층 공고해졌다.

2017년 19차 당대회에선 당헌에 마르크스·레닌주의, 마오쩌둥 사상, 덩샤오핑 이론, 3개 대표론(장쩌민), 과학적 발전관(후진타오)에 이어 ‘시진핑 신시대 중국 특색 사회주의 사상’을 지도이념에 포함시켰다. 자신의 이름을 붙인 사상을 당헌에 삽입했다는 것은 마오쩌둥, 덩샤오핑과 동급 반열에 올랐음을 의미했다. 

특히 지난해 열린 19기 중앙위원회 6차 전체회의(19기6중전회)는 시 주석의 장기 집권을 기정 사실화하는 무대였다. 이 자리에서 그는 세 번째 역사결의를 채택하며 중국 공산당 역사를 삼등분해 각각 마오와 덩, 시진핑의 시대로 규정했다. 아울러 19차 6중전회 공보엔 “시진핑의 당 중앙 핵심, 전당(全黨)의 핵심적 지위와 시진핑 사상의 지도적 지위를 확립한다(양개확립)”는 내용도 담았다. 자신의 당내 정치적 위상을 더 확고히 한 셈이다.

이때부터 중국 내에선 시진핑을 '인민 영수'로 추앙하는 등 사실상 '무관의 제왕(無冕之王)' 지위에 올리려는 분위기가 일었다. ‘인민 영수’는 엄밀히 따지면 과거 마오쩌둥만 누렸던 지위다. 당·국가의 공식 직책 없이도 당과 국가 사무에 최후 결정권을 가짐을 의미한다. 이번 20차 당대회에서 3연임에 성공한 시진핑은 당헌(당장) 개정을 통해 당내 위상과 권위를 한층 더 공고히 할 것으로 예상된다.
 
'東昇西降' 외친 대국굴기···미·중 디커플링 위기 초래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왼쪽)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사진=신화통신]

시진핑의 장기 집권을 가능하게 한 배경에는 미·중 갈등이 자리잡고 있다. 미국과의 경쟁이 본격화하는 상황에서 강력한 리더십의 필요성을 내세워 장기 집권을 정당화하는 것이다. “현재 미·중 관계는 1972년 데탕트(긴장 완화) 이래 ‘최악’(니콜라스 번스 주중 미국 대사)”이라고 일컬을 정도로 심각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19차 당대회 직후인 2017년 말, 재외 공관장과 만난 시진핑은 ‘중국특색 사회주의 신시대 외교’를 언급하며 “우리는 지금 백년만의 대변화 국면에 직면했다”고 말했다. 

중국 공산당 중앙당교 기관지인 학습시보에 따르면 백년만의 대변화 국면이란 ‘과학기술, 산업혁명으로 전 세계 역학구도가 변화해 세계경제 중심축이 서에서 동으로 이동하는 것’을 의미한다. 중국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는 심지어 이를 ‘동양(중국)은 떠오르고, 서양(미국)은 쇠퇴한다’는 뜻의 '동승서강(東昇西降)'으로 표현하며 거스를 수 없는 대세라고 했다.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은 백년만의 대변화 국면을 만든 중요한 원인으로, 이는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의 중요한 기회라는 게 시 주석의 생각이다. 

중국의 굴기는 당연히 미국의 경계심을 불러일으켰다. 당장 2017년 말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중국을 미국의 ‘최대 전략적 경쟁자’로 보고 이듬해 중국과 무역 전쟁을 벌였다. 경제무역은 물론, 과학기술, 코로나19 방역책임론, 홍콩 국가보안법, 신장 인권, 대만 문제 등을 둘러싸고 미·중은 사사건건 부딪쳤다. 

뒤이어 조 바이든 행정부는 동맹국과 손잡고 더욱 촘촘하게 중국 제재에 나섰다. 5G, 반도체, 전기차 등 핵심기술이 관련된 산업·공급망 방면에서 중국을 완전히 배제시켜 중국의 숨통을 조여왔다. 

중국도 미·중 디커플링(탈동조화)이라는 최악의 시나리오까지 염두에 두며 자력갱생과 개혁개방으로 맞섰다. 2020년 19기 5중전회에서 중국 지도부가 미·중 패권 경쟁에 대응하기 위해 내수 강화와 기술 자립 전략을 중심으로 하는 쌍순환(雙循環) 발전 전략을 내세운 배경이다. 

미국에 맞서 러시아와의 관계를 공고히 하며 경제 에너지 등 방면에서 협력도 강화했다. “중·러 협력엔 상한선이 없다”는 말로 양국은 최고의 밀월 관계를 과시했다. 홍콩 명보에 따르면 시진핑이 취임 후 10년간 가장 많이 방문한 국가는 러시아다. 10년간 8차례 방문했고,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과 38차례 회동했다. 하지만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중국의 대러 외교도 딜레마에 빠졌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왼쪽)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사진=신화통신]

'중국夢'의 필수조건···일국양제식 통일 구상 제창
"완전한 통일 실현이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의 필연적 요구다.” 올해 중국이 22년 만에 발간한 대만백서에 나온 내용이다.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이라는 '중국몽(中國夢)' 실현을 위해 대만 통일은 필수라는 의미가 담겼다. 시진핑 주석이 3연임에 성공한 후 조국통일에 속도를 낼 것으로 예상되는 배경이다. 

게다가 친독립 성향의 차이잉원 대만 총통 집권 후 대만해협을 둘러싼 미·중 갈등이 격화하며 중국의 조국통일 의지는 더욱 강해졌다. 특히 지난 8월 낸시 펠로시 미국 하원의장이 중국의 반대를 무릅쓰고 대만을 방문한 게 결정타였다. 이후 중국은 군용기와 함정을 수시로 보내 대만해협 중간선을 무력화시키는 등 군사적 대응 수위를 높이고 대만해협 실효적 통제도 강화해 나가는 중이다.

현재 중국이 제창하는 것은 대만과의 일국양제(一國兩制, 한 국가 두 체제)식 평화통일이다. 20차 당대회 보고서에도 시진핑의 일국양제를 통한 대만 통일 구상이 담길 계획이다.  

일국양제는 1997년 홍콩에 먼저 적용하긴 했지만, 사실은 덩샤오핑이 대만을 통일하기 위해 내놓은 구상이었다. 그러나 2년 전 중국이 홍콩의 국가보안법 통과를 강행해 사실상 홍콩의 자치권을 침해해 일국양제가 무의미해졌다고 보는 대만은 중국의 일국양제 통일 방침을 거부하고 있어서, 앞으로도 양안 갈등이 앞으로 계속 이어질 것이란 전망이다. 
 
'제로코로나' 習의 치적이냐, 경제위기 원흉이냐

4월 상하이에서 주민들이 코로나 검사를 받고 있다. [사진=신화통신]

2019년 말 중국 후베이성 우한에서 처음 발생한 코로나19 바이러스는 중국을 혼란에 빠뜨렸다. 초기 대응에 미흡해 우한 도시 봉쇄라는 사상 초유의 조치를 취했지만, 코로나19는 결국 전 세계 팬데믹(대유행)으로 번졌다. 

코로나 책임론을 놓고 미국과 갈등도 격해졌다. 코로나 발병국이라는 오명을 벗는 게 시진핑에겐 최대 도전 과제였다.

둥타이칭링(動態淸零, 다이내믹 제로코로나)이라는 엄격한 방역 정책을 시행해 국경을 사실상 폐쇄하고, 전 국민이 단결해 방역에 힘썼다. ‘세계의 공장’ 답게 의료물자를 생산해 전 세계 각국에도 수출함으로써 중국은 오히려 코로나 팬데믹을 자국의 글로벌 영향력 확대 기회로 삼았다. 

덕분에 코로나 발발 9개월 만에 중국은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코로나와의 전쟁 승리를 선포하고 종식 수순을 밟았다. 제로코로나는 시진핑의 최대 치적이자, 사회주의 체제 우월성을 증명하는 상징으로까지 자리잡았다. 

오늘날 전파력이 강한 오미크론 확산세 속 전 세계가 ‘위드코로나’로 전환하는 반면, 중국이 여전히 제로코로나를 고집할 수밖에 없는 배경이다.

제로코로나 정책의 대가도 혹독했다. 확진자가 조금만 발생해도 툭하면 도시 전체를 봉쇄하는 방역 정책으로 경제는 위기에 빠졌다. 

올 봄 ‘중국 경제 심장부’인 상하이 도시 전체를 두 달 간 봉쇄한 것은 중국은 물론 전 세계에 충격이 됐다. 중국은 올해 성장률 목표로 세운 ‘5.5% 안팎’ 달성도 사실상 포기한 상태다. 안팎으로 논란이 되고 있는 제로코로나가 20차 당대회를 계기로 서서히 완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아졌다. 
 
공동부유인가, 공동빈곤인가
2021년 5월, 중국 '부자동네' 저장성은 ‘공동부유(共同富裕) 시범구'로 지정돼 중국 소득재분배 개혁의 시험장이 됐다. 중국 공산당은 2035년까지 저장성에서 공동부유를 실현한다는 목표를 세워 저장성 주민 1인당 지역 국내총생산(GDP)과 도농 주민 소득이 선진국 수준까지 도달하도록 만들고, 최종적으로는 중국 전역에서 공동부유를 달성하겠다고 외쳤다.  

공동부유는 시진핑의 통치구상으로 불리는 신시대 중국특색 사회주의 사상을 구현한 대표적인 사례다. “공동부유는 사회주의의 본질적 요구이자, 중국식 현대화의 중요한 특징", "공산당의 중요한 사명”, “공산당 통치 기반과 관계된 중요한 정치적 문제”라는 게 시 주석의 생각이다.

공동부유는 본래 공산주의 통치의 기초로, 중국 혁명지도자 마오쩌둥이 처음 제창했다. 하지만 1978년 개혁개방 이래 덩샤오핑이 사실상 경제 성장을 위해 '선부론(先富論, 능력이 되는 사람부터 부자가 돼라)'을 중요하게 여기며  공동부유는 '말뿐인 구호'에 그쳤다.

그런데 공동부유가 부활한 것은 오늘날 중국 사회에서 빈부격차 등과 같은 사회 양극화 문제가 그만큼 심각하다는 방증이다. 특히 지난해 코로나19 여파로 영세기업이 도산하고 청년층 실업난도 가속화하며 사회 불만 목소리도 커졌다.

하지만 공동부유 명목으로 중국 정부의 민영기업 때리기 움직임도 거세졌다. 그간 중국 경제 성장 동력이었던 알리바바 등 빅테크에 거액의 벌금을 물리는 등 ‘빅테크 수난시대’란 말이 나왔다. '공동부유가 아닌 공동빈곤이다'라는 우려 목소리가 나오게 된 배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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