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유통 골리앗 대 식품 골리앗 싸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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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라다 기자
입력 2022-12-02 1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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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반 제품 [사진=CJ제일제당]

다윗과 골리앗 싸움의 승자는 다윗이다. 약자가 자신보다 강한 상대를 이겼을 때 자주 쓰는 비유다. 그렇다면 골리앗과 골리앗이 싸우면 누가 이길까. '이커머스 강자'인 쿠팡과 식품업계 강자'인 CJ제일제당이 현재 벌이고 있는 '갑질 공방' 이야기다. 

업계에선 누가 다윗인지를 둘러싼 논쟁이 한창이다. 통상 유통업체는 '갑(甲)', 식품업체는 '을(乙)'로 평가된다. 식품업체가 유통업체에 제품을 납품하는 구조인 데다 유통업체가 판매 공간을 제공한다는 인식이 밑바탕에 깔려 있다. 발주 중단 권한도 유통사가 갖고 있다. 그러나 이번 쿠팡과 CJ제일제당 간 갈등은 마진율을 놓고 벌이는 기싸움이란 평가가 우세하다. 골리앗과 골리앗의 싸움이란 시각이다. 

둘의 갈등이 표면적으로 드러난 것은 쿠팡이 최근 CJ제일제당의 비비고 만두, 김치, 햇반 등의 발주를 중단하면서다. 현재 보유하는 재고가 모두 소진되면 더 이상 쿠팡에서 CJ제일제당 햇반 등을 구매할 수 없게 된다. 

유통업계에선 이번 사태를 상당히 이례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유통회사와 식품회사는 매년 마진율 협상을 진행한다. 마진율은 수익과 직결되기 때문에 협상 분위기가 험악해지게 마련이다. 그렇다고 계약 종료 전에 유통사가 일방적으로 발주를 중단한 사례는 극히 드물다.

발주 중단 원인을 놓고도 쿠팡과 CJ제일제당의 입장이 극명히 갈린다. 그야말로 '진실게임' 양상이다. CJ제일제당은 쿠팡이 무리한 마진율 인상을 요구했고 이를 거부하자 일방적으로 상품 발주를 중단했다는 입장이다. 지난해에도 비슷한 마진율을 요구했고 협상 끝에 비율을 조정했는데, 올해는 쿠팡이 강경한 입장을 취해 협상이 결렬됐다는 주장이다. 

반면 쿠팡은 CJ제일제당이 오히려 갑질을 했다고 맞서고 있다. 연초부터 CJ 측이 수차례 공급가 인상을 요구해 이를 수용해왔으나, 계약 당시 약속한 물량의 50~60%만 공급해 판매에 차질을 빚었다는 지적이다. 올해 CJ제일제당의 평균 제품 공급가는 지난해에 비해 15% 상승했고 백설 콩기름의 경우 지난해에만 140% 인상해줬다는 것이 쿠팡 측의 설명이다. 

업계에선 두 강자의 싸움을 승자는 없고, 패자만 있는 전쟁으로 정의하고 있다. 실제 CJ제일제당의 햇반은 국내 즉석밥 시장에서 70% 가까운 점유율을 유지하고 있는 메가브랜드다. 특히 CJ제일제당은 식품업계 1위 업체로, 비비고 만두, 비비고 김치 등 다수의 히트상품을 보유하고 있다. 쿠팡 역시 이커머스 시장 내 점유율(작년 기준)이 13%로, 네이버쇼핑(17%)에 이어 2위 반열에 오른 업체다. 

매출로도 두 기업의 시장 내 독보적인 지위를 확인할 수 있다. CJ제일제당의 지난해 매출액은 26조원을 넘어섰다. 쿠팡 역시 작년 22조4036억원의 매출고를 올리며 이커머스 강자임을 다시 한번 증명했다. 

쿠팡은 전통적인 유통강자의 지위도 크게 위협하고 있다. 실제로 쿠팡의 매출은 유통 공룡인 롯데쇼핑의 지난 한 해 매출(15조5736억원)을 능가한다. 오픈마켓 강자인 지마켓을 인수해 온·오프라인 강자로 변신 중인 이마트의 연결기준 작년 매출(24조9327억원)과도 맞먹는다.

독보적인 입지를 다진 업체라도 사태가 장기화한다면 양쪽 모두 손해를 볼 수밖에 없다는 것이 업계의 공통된 견해다. 쿠팡은 고객 선호도가 높은 햇반, 비비고 제품을 로켓에 태우지 못해 판매율, 매출 측면에서 손해가 예상되고, CJ제일제당은 쿠팡 충성고객을 잃을 처지에 놓였다. 쿠팡의 유료 회원 수는 900만명 안팎으로 추정된다. 

두 골리앗의 싸움으로 인한 피해는 고스란히 소비자 몫이다. 여론도 싸늘하다. 협상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하기 위한 힘겨루기 싸움에 소비자를 희생양 삼고 있다는 인식이 많다. 고객 신뢰를 저버린 기업은 생존 자체를 위협받는다. 자칫 '돈'만 쫓다가 B2C(기업과 소비자 간 거래) 기업을 떠받치는 충성고객마저 잃을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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