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희롱에 무방비 가사노동자] 피해 당해도 책임주체 불명확..안전매뉴얼 제작 시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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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소희 수습기자
입력 2023-01-19 1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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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희롱 규제 공백 입법으로 풀어야"

[사진=게티이미지뱅크]

가사·돌봄 노동자들이 성희롱을 겪어도 다른 직업군에 비해 구제 수단이 마땅치 않은 것으로 파악됐다. 전문가들은 피해 지원 사각지대 보완을 입법 과제로 지적했다.
 
19일 법조계와 노동계 등에 따르면 현행법은 ‘사업장’에서 일어난 성희롱에 대해 ‘사업주’가 책임을 지도록 규정하고 있어 가정에서 일하는 가사·돌봄 노동자는 책임 주체가 불명확하다.
 
특히 밀폐된 가정에서 혼자 일을 하는 가사·돌봄 노동자 특성상 성희롱을 비롯한 안전 문제에 무방비 상태로 노출되기 쉽다. 코로나 시국 이후 이용자가 가정에 머무는 기간이 늘어나면서 가사·돌봄 노동자들이 느끼는 불안감은 더 커졌다.

한국가사노동자협회 관계자는 “여성 이용자로 알고 가도 이용자의 시아버지 등 남성과 함께 있는 상황이 늘었다”며 “대부분 가사 노동자는 50대 이상 고령자들이라 사건이 발생해도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모른다”고 설명했다.
 
가사·돌봄 노동자들은 '산업재해 예방 사례조사'를 통해 일하는 동안 남성 고객이 속옷만 입고 다닐 때 성적 수치심을 느꼈다고 호소했다. 조현지 노무사(노무법인 가경)는 “사회 평균적 관점에서 봤을 때 당연히 성적 수치심을 느낄 만한 사안”이라며 “다만 가사 노동자가 성희롱 보호 대상인지 확인해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조 노무사가 이처럼 말한 이유는 가사노동자는 사업장이 고정되지 않은 특수성 때문에 '직장 내 성희롱'에 대한 책임 주체가 명확하지 않기 때문이다.

‘양성평등기본법’과 ‘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법’은 '직장 내 성희롱'이 발생하면 사업주가 피해자를 보호하고 재발 방지 대책을 세우도록 규정하고 있다. 피해자는 회사에서 제대로 된 조치를 받지 못했을 때 해당 법을 위반한 혐의로 노동청에 형사고소를 할 수 있다. 그런데 각각 공공기관과 민간 사업장을 전제로 해서 고정된 사업장이 아닌 가정에서 근무하는 가사·돌봄 노동자에 대해서는 책임 주체가 명확하지 않다.

'직장 내'라는 단서를 떼고 형사·민사 소송으로 책임을 묻기도 어렵다. 형법 제298조(강제추행)에서 성추행까지는 규정하고 있지만 성희롱에 대한 형법 규정은 따로 없다. 성희롱 행위가 형법상 명예훼손과 모욕죄에 해당할 때에 한해서 법적 책임을 물을 수 있다. 민사상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할 수도 있지만 이은의 변호사는 "소송 비용과 배상 금액을 고려했을 때 선뜻 소송에 나서기는 쉽지 않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가사·돌봄 노동자처럼 사업장이 명확하지 않은 노동자에 대한 성희롱 피해 구제는 입법으로 해결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가사·돌봄 서비스 제공 업체나 노동계가 상담 창구를 마련해 공백을 메우고 있으나 구체적인 매뉴얼이 없어 여의치 않은 실정이다.
 
가사근로자법을 대표 발의했던 이수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입법 필요성에 공감한다며 “이제껏 다뤄지지 않았던 안전 문제에 대한 대응 방안 연구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정부가 가사노동자 안전 매뉴얼을 제작·보급하는 한편 가사노동자지원센터가 하루빨리 만들어져서 불안에 노출되기 쉬운 분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입법이 이뤄지는 동안 피해자 구제 공백을 메을 수 있는 정부 지원 필요성도 제기됐다. 차인순 국회 의정연구원 겸임교수는 "가사근로자법에 안전 문제가 들어가 있기는 하지만 서비스 제공 기관이 피해가 발생했을 때 즉각 개입·조치 의무나 관리자 교육 등 구체적인 규정은 미비해 아쉬웠다"면서 "가사 노동자 관련 협회에 소송을 지원할 수 있도록 법률 지원 예산을 배정하는 등 선제적 장치도 마련하면서 법 개정도 함께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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