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소비자들은 제2의 '티코'를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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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우 기자
입력 2023-01-22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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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출시한 대우자동차 ‘티코’는 국내 경차의 출발점이자 국내 완성차 산업에 굵직한 획을 그은 모델이다. 당시 걸프전 후폭풍에 유가가 무섭게 오르면서 정부는 간접 해결책으로 국민차 개발 프로젝트를 추진했다. 차체 크기와 배기량이 작은 고효율 경차를 개발해 에너지 절감과 국내 자동차 산업의 진흥까지 꾀하겠다는 계산이었다.

그러나 완성차 제조사들은 경차 수익성이 크게 떨어진다는 이유로 국민차 프로젝트 참여에 손을 저었다. 정부가 요구한 200만원대의 가격책정을 맞춘다면 아무리 많이 팔아도 밑지는 장사가 될 것이란 우려가 나왔다. 그렇게 정부의 국민차 프로젝트는 흐지부지 끝날 모양새였지만 대우차를 이끌던 김우중 대우그룹 회장이 막판에 참여를 결정하게 된다. 당시 현대자동차, 기아자동차와 함께 1위 경쟁을 벌이던 대우차에 국내 경차 시장의 개척은 그의 불꽃같던 기업가정신과 맞아떨어지는 면이 있었을 것이다. 

우려 반 기대 반의 심정으로 시장에 첫 등장한 티코는 엔진배기량 796㏄에 길이 3340㎜, 무게 640㎏의 깜찍한 자태로 세간의 이목을 사로잡았다. 가격을 290만원으로 잡다 보니 편의사양이 거의 없는 속칭 ‘깡통’ 모델에 가까웠다. 경차를 처음 본 소비자들은 티코를 타고 가다 타이어에 껌딱지가 붙으면 전복사고가 일어날 것이란 우스갯소리로 의심의 눈초리를 보냈다.

그럼에도 리터당 연비 24.1㎞의 가공할 효율성은 기존의 우려를 빠른 속도로 잠재웠다. 직접 차를 구매한 소비자들은 생각보다 괜찮은 차라며 자발적인 입소문을 내기까지 했다. 결국 티코는 출시 첫해 3만대 판매라는 기염을 토하며 시장 흥행에 성공했다. 1991년 내수 시장이 110만대 수준이었던지라 3만대 판매는 베스트셀링카를 장식하기에 충분한 수치다.

출시 첫해부터 화려한 데뷔전을 치른 티코는 경쟁 차종이 없다 보니 독주 흐름을 구가했다. 광고 카피였던 ‘아껴야 잘 살죠’는 폭발적 호응을 얻으며 티코를 명실상부 국민차 반열까지 끌어올렸다. 티코의 질주를 지켜보던 현대차는 1997년 ‘아토스’를 출시했지만 티코의 아성을 깨기까지 적잖은 수고가 필요했다.

30년 전 티코의 행적은 지금 시대에도 깊은 통찰을 가져다 준다. 티코와 같은 제2의 국민차가 올해 출현한다면 어떠한 반응이 나올까. 혹독한 경기침체를 예고한 시기에서 분명 소비자들의 환호성이 터져나올 것이다. 

그러나 국내 자동차 시장에서는 이제 1000만원대를 넘어 기본 2000만원대 모델이 공식화될 정도로 가격 하향은 찾아보기 힘들다. 지난 2021년 출시된 현대차의 경SUV ‘캐스퍼’가 정부의 광주형 일자리 프로젝트와 맞물리면서 제2의 티코가 될 것으로 기대를 모았으나 뚜껑을 열어보니 풀옵션에 2000만원 이상 드는 고급 경차였다.

세계적인 경영 컨설턴트 전문가이자 경영 석학인 워렌 베니스는 사랑받는 기업들의 특징을 두고 ’기업의 목적과 이윤 추구 사이의 균형을 잘 선택하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이러한 분석처럼 국내 완성차 제조사들이 지금 시기에 국민 정서를 십분 반영하는 국민차를 출시한다면 어떨까.

물론 기업에게 수익 창출이란 본분을 저버리라 강요할 수 없는 법이다. 그러나 기업들이 사회적 책임을 다하겠다며 ESG(환경‧사회‧지배구조)에 몰두하는 것도 좋지만 소비자들이 원하는 제품을 적시에 출시한다면 ESG보다 더 큰 파급력을 가져올 것이다. 

정부도 배기량 기준의 자동차세부터 개별소비세까지 합리적이지 못한 조세 정책을 더는 붙들지 말아야 한다. 보이지 않는 족쇄를 풀어 제조사들의 제품 경쟁력을 높여줘야 할 시기다. 특히 지금은 제2의 국민차 프로젝트와 같이 국민적 공감대를 얻을 수 있는 도전적 과제를 제시할 필요가 있다. 역대 정부마다 시대적 흐름을 반영한 정책은 반드시 꽃을 피웠다. 그것이 우연의 산물이 아니었음을 복기할 필요가 있다.    
 

김상우 산업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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