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터리 여권'에 무심한 기업들 EU 무역장벽 페널티 초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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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란 기자
입력 2023-03-21 0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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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배터리 공급망·재활용 정보 디지털화

  • 유럽 배터리 70% 점유 韓기업 직격탄

  • 과징금 폭탄 우려에도 정부는 팔짱

유럽연합(EU)이 지난 16일(현지시간) 핵심원자재법(CRMA) 초안을 공개했다. 2030년까지 원자재에 대한 제3국 의존도를 65% 미만으로 낮춘다는 게 골자지만 기업에 부담이 되는 내용은 또 있다. 바로 공급망 감사와 광물 재활용 의무안이다. 

20일 업계에 따르면 배터리 공급망·재활용 정보 등을 디지털화한 '배터리 여권'이 CRMA의 강력한 감시 수단으로 유력시된다. 유럽 배터리 시장에서 70% 이상을 차지하는 한국은 배터리 여권에 적극 대응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배터리 여권을 갖추지 못하면 대(對)EU 수출이나 현지 사업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또 EU의 환경 규제 위반에 따른 과징금 규모는 수조원 규모로 예상된다.

CRMA 발표와 별개로 EU는 지난해 12월 '배터리 신규제'를 통해 2026년 배터리 여권을 의무화할 것을 예고했다. 이와 관련해 EU는 5월 최종안을 내놓을 예정이다.

이미 배터리 여권이 강력한 규제 수단으로 떠올랐지만 한국 기업과 정부 대응은 미온적이다.

배터리 여권은 글로벌 배터리 동맹(GBA)이 2020년 말 세계경제포럼에서 처음 제안했다. GBA의 배터리 여권에는 광물 업체명, 제조 과정 중 탄소 배출량, 아동 노동 여부, 재활용 유무 등이 적혀 있어 이들이 EU 규제에 어긋나면 판매가 불가능하다. 

향후 EU가 GBA의 플랫폼을 차용할 것으로 알려져 GBA가 업계 대세가 될 전망이다. 그러나 200개 넘는 회원사 중 우리 기업은 LG화학, LG에너지솔루션, SK이노베이션뿐이다. 현대자동차도 이름을 올리지 않았다. 테슬라를 비롯해 BMW, 폭스바겐, 볼보, 르노 등 글로벌 완성차 업체가 GBA와 활발히 협업하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한국 정부 대응도 아쉽다. 일찌감치 중국과 일본은 정부 주도로 배터리 여권을 갖췄다. 한발 늦은 한국은 지난해 11월 민관 협력 '배터리 얼라이언스'를 출범하고 올 초 한국배터리산업협회는 법제화를 위한 연구 용역을 발주했다. 그러나 수개월이 지난 현재 정부와 기업 간 상견례도 이뤄지지 않는 등 관련 사업이 속도를 내고 못하고 있다. 

한국의 EU 법인은 EU 기업으로 분류되기 때문에 실질적인 제재 대상이 될 확률이 높다.  LG에너지솔루션은 폴란드, SK온과 삼성SDI는 헝가리에 각각 공장을 운영하고 있다. 

EU의 노동·환경 등 공급망 감사에 따른 과징금은 기업 매출액에 비례한다. 매출 수조원을 올리는 배터리 3사로서는 이런 페널티에 기업 명운이 달렸다고 볼 수 있다. 지난해 LG에너지솔루션의 유럽 매출은 9조6544억원, 삼성SDI는 8조4566억원이었다. SK온은 2021년 한 해 헝가리 법인 매출만 6607억원이었다. 

여기에 협력사가 규정을 어겨도 기업에 손해배상 청구가 가능해 국내 대기업과 동반 진출한 중소기업들에 대한 관리도 필요한 상황이다.

박정규 한양대학교 미래자동차 겸임교수는 "테슬라는 독일 환경·노동법으로 인해 공장 신증설이 늦어졌고, 프랑스 토탈은 인권 문제로 수조원 규모의 사업을 철회한 적이 있다"며 "우리 기업도 배터리 여권 등에 대비하지 않으면 과징금 폭탄을 물게 돼 사업 경쟁력이 약해질 수 있다"고 말했다. 
 

글로벌 배터리 얼라이언스가 제시한 배터리 여권 가상도. 이 여권에는 배터리 원료부터 생산 공정에 대한 정보가 담겨 있다. [사진=글로벌 배터리 얼라이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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