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가타 요시히로의 한일 풍경] 尹-기시다 회담이 남긴 과제 …역사는 망각되면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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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가타 요시히로 후쿠오카대학 인문학부 동아시아지역언어학과 준교수
입력 2023-03-23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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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가타 요시히로 후쿠오카대학 인문학부 동아시아지역언어학과 준교수]




3월 16~17일 윤석열 대통령은 1998년 10월에 한·일 양국이 발표한 '21세기 새로운 한·일 파트너십 공동선언', 즉 ‘김대중-오부치 공동선언’의 정신을 발전적으로 계승하겠다며 일본을 방문해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본 총리와 정상회담을 했다. “한국의 책임 있는 정치인으로서 한·일 청년세대의 미래를 위해 용기를 가지고 최선을 다하겠다”는 결의를 가지고 한·일 관계 개선에 나선 것이다.
이번 한·일 정상회담에 대해 일본에서는 어떻게 보도되고 있을까. 한국 내 보도와는 반대로 매우 긍정적이다. 한국 측은 결과적으로 많은 양보를 한 셈이고, 일본 측은 기존 입장을 고수한 대응이었으니 당연하다고 할 수밖에 없다. 한국에서도 보도됐듯이 일본에서는 두 정상이 어디서 무엇을 먹었는지, '2차'로 간 식당 메뉴가 왜 오므라이스인지, 영부인이 무엇을 했는지 등 회담 내용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정보에 이목이 집중됐고, 한국 정부에 대한 극히 호의적인 보도가 많았다. 어쨌든 일본에서 한·일 회담은 ‘밝고 좋은 소식’으로 전해졌다. 실제로 일본 여론은 정상회담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한다는 의견이 65%로 과반을 차지했고, 기시다 내각 지지율도 다소 상승했다(요미우리신문 여론조사).
그러나 강제노동 문제에 대한 설명이나 논의는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강제노동 문제는 일본에서 “이미 해결된 문제”이며 외교 과제로 거론되는 것 자체가 한국 측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라는 인식이 지배적이다. 이번 회담 또한 한국 측이 원인을 제공해 악화됐던 한·일 관계가 회복되는 좋은 징조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2018년 대법원 판결 이후 한·일 간 현안이 되어 온 강제노동 문제는 이미 한·일 양국 사회에서 정상회담에 대한 평가 혹은 한·일 외교관계 논의의 배경 밖으로 밀려나고 있다.
 
3월 21일 윤석열 대통령은 한·일 정상회담과 관련해 국무회의에서 대통령 취임 이후부터 이 문제에 대해 계속 고민해 왔다며 악화된 한·일 관계 개선을 위해 “손을 놓고 마냥 지켜볼 수는 없었다”는 심정을 밝혔다. “때로는 이견이 생기더라도 한·일 양국은 자주 만나 소통하면서 문제를 해결하고 협력 방안을 찾아 나가야 한다”고 한·일 관계 개선에 나선 입장을 설명한 것이다. 정식 한·일 정상회담 성사는 11년 3개월 만이라고 하니 그동안 이웃 나라로서 비정상적이기도 했던 한·일 사이에 대화가 재개된 것은 참으로 환영할 일이기는 하다.
한·일 정상회담에서는 양국 정상 간 셔틀외교 재개에 대한 합의가 이루어져 향후 안보, 경제, 문화 등 다양한 분야에서 긴밀한 의사 소통이 이뤄지게 될 것으로 보인다. 또한 안전보장 분야에서 전략적 연계를 추진할 필요성과 한·미·일 협력을 추진해 나갈 것임을 확인했다. 일본 정부의 반도체 관련 수출 규제 조치 해제도 결정됐고, 한국 정부도 WTO 제소를 취하하기로 했다. 그 후 GSOMIA 정상화도 결정되었고, 5월에 일본 히로시마에서 열리는 G7 정상회의에 주최국인 일본이 한국을 초청할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한·일 기업들은 미래지향적 한·일 협력과 교류를 위한 '한·일 미래동반자협정 기금'을 창립하겠다고 밝혀 양국 관계 개선을 뒷받침하게 되었다.
윤석열 대통령이 “한·일 관계 정상화는 결국 우리 국민에게 새로운 자긍심을 불러일으킬 것이며, 우리 국민과 기업들에 커다란 혜택으로 보답할 것”이라며 “무엇보다 미래 청년세대에게 큰 희망과 기회가 될 것이 분명하다”고 했다. 한·일 관계 개선에 대한 윤석열 대통령의 결의와 자신감이 엿보인다. 하지만 뭔가 부족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한국 내 보도에서도 강제노동 문제의 역사와 피해자들의 존엄, 권리가 한·일 관계의 그늘에 가려졌기 때문이다.
 
이번 한·일 정상회담은 한국 정부가 '제3자 변제'라는 ‘해결 방안’을 제시함에 따라 성사됐다. 그러나 피해 당사자들이 이를 납득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과연 진정으로 문제 해결을 이끄는 것이라고 할 수 있는가. 가해 측인 일본 기업에서는 아무런 대응도 약속한 바가 없고, 일본 정부 역시 “과거 입장을 전체적으로 계승한다”고만 할 뿐 식민 지배에 관한 사죄나 반성의 말을 피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의 방안을 지지하던 사람들 중에는 일본 정부의 '성의 있는 대응'을 기대했던 전문가들도 있었는데 이들은 분명 크게 실망했을 것이다.
한국 정부 산하 재단의 제3자 변제라는 방법은 피해자들이 오랜 싸움 끝에 인정받은 가해 기업에 요구할 수 있는 사과나 위자료의 가능성을 부정하는 것이나 다름없는 방안이다. 일부 피해자들의 뜻이 외면됐다. 올해 1월 나는 이 칼럼에서 강제노동 문제를 졸속으로 해결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했다. 예상했던 대로 한국 내에서는 한·일 정상회담 결과를 두고 윤석열 대통령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가 잇따르고 있다. “한국은 아무것도 얻을 것이 없었던 것 아닌가?” “일본이 말한 대로 따르기만 한 것 아닌가?” 심지어 두 정상 간 간담 중 기시다 총리가 2015년 위안부 합의 이행 촉구, 즉 더 이상 일본에 그 책임을 묻는 일이 없도록 요구했다고 한다. 독도(일본 정부 표현으로는 '다케시마') 영유권에 대해서도 모종의 언급이 있었던 것으로 일본 언론이 보도하여 보다 심각한 문제가 될 수 있다며 한국에서는 연일 화제가 되고 있다.
다만 무엇보다 문제는 피해자들이 이 '해결 방안'을 원하지 않았다는 것이고, 그들이 요구한 것은 돈이 아니라 가해 기업의 사과이며, 자신들의 존엄성 회복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이루지 못한 채 한·일 정상회담 성과가 논의되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 여론과 언론 대부분은 어느새 '피해자인 우리가'라는 주어를 가지고 진짜 피해자의 문제가 아니라 한·일 관계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 해법 시비가 아니라 정상회담이 여야 공방에 이용되고 있는 것처럼 보여 위화감을 느낀다. 진짜 당사자는 강제노동 피해자들이고, 그 문제 해결에 책임을 다해야 하는 것은 한국 정부가 아니라 가해 기업이자 일본 측이다.
 
미래지향적 한·일 관계를 위해 역사가 잊히고 있다. 과연 김대중-오부치 공동선언에서 말한 '미래지향'이란 과거를 잊기 위한 미래지향이었을까. 실제로 김대중-오부치 공동선언은 “양국이 과거의 불행한 역사를 극복하고 화해와 선린우호협력에 입각한 미래지향적인 관계를 발전시키기 위해 서로 노력하는 것이 시대적 요청”이라고 하면서 “양국 국민, 특히 젊은 세대가 역사에 대한 인식을 심화시키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과 “이를 위해 많은 관심과 노력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즉, 과거를 기억하고 교훈으로 삼아 미래를 지향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번 한·일 정상회담을 진정 의미 있게 만들려면 피해자들이 원하는 구제가 실행돼야 하고, 이것은 일본의 가해 기업만이 완수할 수 있는 책임일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그 역사가 교훈으로 기억되어야 한다. 윤석열 대통령은 “과거는 직시하고 기억해야 한다. 그러나 과거에 발목이 잡혀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과거를 직시하지 않는다면 미래는 없다. 일본 정부는 식민지 지배가 불법이었음을 여전히 인정하지 않고 있지만 2010년 간 나오토(菅直人) 총리 담화에서는 식민지 지배로 인해 많은 손해와 고통을 끼친 것을 인정하고 사과와 반성의 뜻을 표명했다. 그렇다면 적어도 일본 정부는 그 역사를 후세에 물려줘야 하고, 그것은 일본 정부가 완수해야 할 책임이다. '미래지향'이라는 미명 아래 역사가 망각되면 절대 안 될 것이다.


오가타 요시히로(緒方義広) 주요 이력
▷후쿠오카대학 인문학부 동아시아지역언어학과 준교수 ▷연세대 정치학박사  ▷전 홍익대 조교수 ▷전 주한 일본대사관 전문조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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