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 초유 대표 공석...재계 12위 KT그룹 멈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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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일용 기자
입력 2023-03-27 1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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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윤경림 KT 대표 내정자 사퇴...4월부터 대표 공석

  • 대표대행 체제로 전환, 새 대표 뽑아야 할 이사회도 마비 우려

  • 대주주·정부·여당과 관계 개선도 시급, 대표 물색과 이사회 재구성 동시 진행 가능성 커

[사진=아주경제DB]

KT 차기 대표(CEO)가 세 번 확정됐다가 모두 백지화됐다. 우려했던 KT 경영 공백 시나리오가 현실화하고 있다.

27일 KT에 따르면 윤경림 KT 차기 대표 내정자가 사퇴 의사를 KT 이사회에 전달했다. 차기 대표 선임을 위한 정기 주주총회를 불과 4일 앞두고 나온 결정이다. 윤 내정자는 "주요 이해관계자들 기대 수준을 넘어서는 지배구조 개선을 통해 새로운 CEO가 선출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고 판단했다"고 사퇴 이유를 밝혔다.

윤 내정자가 사퇴함에 따라 KT는 당장 4월부터 대표 없이 운영될 위기에 처했다. 선장 없는 배가 돼 표류하게 된 셈이다. 후보자 물색과 주총 등 절차에 짧아도 두세 달 걸리는 점을 고려하면 새로 선임되는 KT 대표는 일러도 올 하반기는 돼야 관련 업무에 착수할 수 있을 전망이다. 이에 따라 대표의 의사 결정이 필요한 △신사업 조직 개편 △상무급 이상 임원 인사 △계열사 투자 유치와 상장 추진 등 KT 핵심 경영 활동은 상반기 내내 '올스톱'되는 상황을 피할 수 없게 됐다.

◆4월 이후 대표대행 체제로 운영···이사회 정상화 어려워

KT 경영 안정화를 위한 시나리오는 크게 두 가지다. 먼저 상법에 따라 신규 대표가 선임되기 전까지 전임 대표였던 구현모 KT 대표가 임시 대표를 수행하는 방안이 있다. 다만 이와 관련해 경영 공백의 단초가 구 대표 연임이 두 번 무산된 것에 있는 만큼 KT를 이끌 리더십이 더는 남아 있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따라서 KT 정관에 따라 사장급 임원이 대표대행을 맡아 차기 대표를 선출할 때까지 KT를 임시로 이끌 가능성이 크다. 실제로 과거 이석채 전 KT 회장이 검찰 수사로 중도사퇴했을 때 표현명 당시 KT 텔레콤&컨버전스 부문 사장이 임시대표를 맡아 KT를 운영한 바 있다.

업계에선 KT그룹 경영 전반을 관리하는 박종욱 경영기획부문장이 대표대행을 맡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본다. 다만 사내이사가 아닌 대표대행은 법원 승인이 필요한데 박 사장은 구 대표와 함께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벌금형을 받은 탓에 법원이 대표대행 신청을 거부할 우려도 있다. 이때는 직제상 관련 문제에서 자유로운 신수정 KT 엔터프라이즈부문장이 대표대행을 맡아 KT를 임시로 이끌 것으로 전망된다.

또 다른 문제는 대표 공백을 채우고 회사를 다잡아야 할 KT 이사회도 사내이사 부재와 주요 주주의 사외이사 연임 반대라는 내우외환에 처한 점이다.

윤 내정자는 KT를 함께 이끌 사내이사로 서창석 KT 네트워크부문장(부사장), 송경민 KT SAT 대표(사장)를 선임하고 주총에 안건으로 올렸으나 윤 내정자 사퇴로 사내이사 2명을 신규 선임하는 것은 없던 일이 됐다. 기존 사내이사였던 구 대표와 윤 내정자는 오는 31일 임기가 끝난다.

8인으로 구성된 사외이사진은 기존 사외이사였던 이강철, 벤자민 홍 이사가 연초 사퇴한 데 이어 신규 사외이사로 내정된 임승태 법무법인 화우 고문도 이사 자리를 받아들이지 않기로 했다.

강충구·여은정·표현명 KT 사외이사 재선임이 이번 주총에 안건으로 올라가지만 통과 여부는 불분명하다. KT 1·2대 주주인 국민연금·현대자동차뿐 아니라 글로벌 의결권 자문기관인 ISS도 주주 이익을 위해 행동하지 않은 것을 이유로 사외이사 3명에 대해 연임을 반대할 것을 권고했기 때문이다.

최악에는 KT 이사회가 4월 이후 김대유·유희열·김용헌 사외이사 3명만으로 운영될 수도 있다. 사외이사 3명만으로 차기 대표 선임이라는 이사회 본연의 기능을 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업계에선 이사회 대신 KT 대주주 뜻에 따라 새로 꾸려지는 KT 대표 인선자문단을 중심으로 차기 대표 물색에 나설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고 있다.
 

[사진=아주경제DB]

◆국민연금·정부·여당 등 이해관계자와 얽힌 매듭 풀어야···지배구조 개선도 숙제

KT는 차기 대표 물색과 이사회 개편이라는 중요한 작업을 상반기 중에 완수해야 하는 부담을 지게 됐다. 윤 내정자가 사퇴와 함께 '주요 이해관계자들 기대 수준'과 '지배구조 개선'을 언급한 것은 이를 염두에 두고 한 발언으로 해석된다.

기대 수준을 충족해야 할 핵심 이해관계자로는 구 대표 연임과 윤 내정자 선임을 줄곧 반대해온 KT 1대 주주 국민연금이 꼽힌다. 국민연금은 이사회 투명성 문제를 언급하며 주총에서 반대표를 예고했고 이는 세 번에 걸친 KT 차기 대표 백지화의 결정적인 원인으로 작용했다. 

'이권 카르텔'이라고 비판하며 KT 차기 대표뿐 아니라 KT 이사회 구성 자체를 문제 삼은 정부·여당 등 이해관계자와도 얽힌 문제를 풀어야 한다. KT는 민영화된 지 21년이 넘었지만 줄곧 여당 측 선거 승리 전리품으로 정권의 낙하산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일례로 지난 2월 차기 KT 후보 공개모집에 여당 측 인사로 분류되는 인물들이 대거 지원했지만 야당 측 인사는 한 명도 응하지 않았다. 과방위 여당 의원들은 윤 내정자가 차기 대표로 선출되기도 전에 기자회견을 열고 "구 대표의 아바타"라며 사퇴할 것을 압박하기도 했다.

KT 이사회 개편과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지배구조 개선 문제도 숙제로 주어졌다. 윤 내정자는 국내 의결권 자문기관과 여당이 지적해온 '이사회 참호 구축' 문제를 해결하고자 대표로 선임되면 사외이사 후보 추천에 관여하지 않겠다고 공시하고, '지배구조개선 TF'를 구성해 이사회 구성 권한을 KT 대표 대신 주주들에게 돌려주겠다는 계획을 밝혔으나 정부·여당 뜻을 꺾기엔 역부족이었다. 다만 ISS와 글래스루이스가 윤 내정자에 대해 찬성할 것을 권고한 배경에는 이러한 이사회 선진화에 대한 노력이 큰 비중을 차지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신사업이 멈추고 회사가 흔들리자 KT 직원들 사이에서도 불만 섞인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KT 직원 1만6000여 명이 가입한 다수 노조인 KT 노조는 이사회 사퇴와 조합원들이 참여하는 비상대책기구 구성을 주장하고 있다. 30일로 예정됐던 대의원회의도 하루 앞당겨 진행하고 경영 공백에 따른 향후 노조 대응 방안을 결정할 계획이다. 소수 노조인 KT 새노조는 KT 이사회가 대표 견제 측면에선 매우 부족했지만 정치권 낙하산이 와야 할 이유는 전혀 아니라며 대표와 이사회가 정권 뜻에 따라 구성되면 KT는 주주와 고객들에게 외면당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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