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업기밀 내놓으라는 美 반도체법···삼성·SK '당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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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지 기자
입력 2023-03-29 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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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업계, 정부간 추가 협상 등 "지켜보자"···독소조항에 보조금 포기할 수도

국내 반도체 기업들이 진퇴양난에 빠졌다. 미국 정부가 보조금을 지원해준다며 독소조항에 더해 이번에는 영업기밀 수준의 정보를 신청 절차로 요구하면서다. 보조금을 받아도 향후 오히려 미국 정부의 ‘재갈 물리기’식 통제에 휘둘릴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28일 업계에 따르면 미국 상무부는 27일(현지시간) 반도체법(칩스법) 지원금을 신청하기 위한 구체적인 보조금 신청 절차를 안내했다. 보조금을 받길 원하는 기업은 예상 현금흐름 등 수익성 지표 산출 방식을 검증할 수 있는 엑셀 파일 형태로 제출해야 한다.
 
상무부가 제시한 금융 모델은 보조금을 받고자 하는 생산시설의 예상 현금흐름과 이익 등 대차대조표가 포함됐다. 또 반도체 공장의 웨이퍼 종류별 생산능력, 가동률, 예상 웨이퍼 수율(결함이 없는 합격품의 비율), 생산 첫해 판매 가격 등을 내야 한다.
 
문제는 신청을 위한 대부분 정보가 사실상 영업기밀에 해당한다는 데 있다. 업계는 적정한 보조금 지원 규모의 판단을 명목으로 미국 정부가 이 정보를 내라는 건 무리한 요구라고 판단하고 있다. 자칫 해당 내용이 미국 반도체 기업에 흘러 들어가면 우리 기업에는 경영상 큰 타격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특히 수율은 반도체 기업의 기술력을 짐작할 수 있는 대표적인 지표로 꼽힌다. 나노미터(1나노미터=10억분의 1m) 등 미세 공정으로 일컬어지는 첨예한 반도체 기술 경쟁에서 수율이 노출되면 현재 연구개발(R&D) 단계 등을 파악할 가능성이 높다.
 
또 반도체 기본 재료가 되는 웨이퍼의 종류별 생산능력도 포함돼 8인치, 12인치 등 반도체 크기별 구체적인 사업 전략까지도 알 수 있게 된다. 최근 경기침체에 따라 시장이 다운사이클에 들어서며 이 같은 영업기밀의 유출은 더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분석이다.
 
모든 신청 내용을 엑셀 파일로 제출하도록 한 점도 유의미하다는 시각이다. 이를 통해 단순 수치뿐만 아니라 기업마다 산출 방식을 미국 정부가 상세히 알 수 있게 된다. 또 여기에 더해 다른 지역에서 받는 지원금이나 대출까지 상세히 기재하라고 명시해놨다.
 
기업들은 일단 정부 간 추가 협상에 따른 조건 완화를 기다려보겠다는 입장이다. 한국과 미국 정부는 현재 반도체 관련 물밑 협상을 이어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반도체법의 초과이익 환수 등 독소조항에 더해 이번 신청 내용까지 고려하면 삼성전자, SK하이닉스가 실제 지원금을 신청 안 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다만 미국이 대중 반도체 견제를 심화하는 흐름 속에서 지원금을 신청하지 않는 것 또한 기업에는 부담이다. 자칫 미국의 반도체 정책 기조에 반하는 모습으로 비칠 수 있어서다. 또 대규모 자금이 필요한 반도체 산업 특성상 보조금은 필수 요소인 만큼 쉽게 포기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삼성전자의 경우 현재 미국 텍사스주 테일러시에 170억 달러를 들여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공장을 짓고 있다. 그런데 원자재 가격 상승으로 당초 예상 비용보다 약 10조원 더 많은 250억 달러 이상이 들어갈 것이란 전망이 나왔다.
 
업계 관계자는 “캐파(생산능력) 같은 경우 이미 시장에서 어느 정도 유추가 가능한 상황이지만, 수율은 문제가 다르다”며 “문서에 수율을 직접 언급하는 건 굉장히 부담스러운 일이기 때문에 일단 앞으로 상황을 지켜봐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삼성전자 미국 텍사스주 오스틴 파운드리 공장 [사진=삼성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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