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낭기의 관점]여당 국회의원의 법무부 장관 겸직, 이대로 좋은가

김낭기 논설고문입력 : 2021-03-30 09:42

[사진=연합뉴스]



박범계 법무부 장관은 “나는 장관으로 일하고 있지만 기본적으로 국회의원”이라며 “더불어민주당 당론으로 의견이 모이면 당연히 따를 것”이라고 했다. 지난 2월 24일 대전보호관찰소를 방문한 자리에서였다. 정의와 법치를 수호해야 하는 법무부 수장이 사적인 자리도 아니고 공적인 자리에서 정파성을 강조한 것이다. 박 장관 발언은 ‘정치인 법무부 장관’의 적절성 문제를 생각하게 한다.

언제부터인가 우리 정치에서는 집권당 소속 국회의원이 장관을 겸직하는 것이 당연한 관행인 듯 굳어졌다. 문재인 정부 들어서 의원 겸직 장관이 특히 많아졌다. 문 대통령 임기 4년 동안 이미 17명이나 된다. 임기 5년 내내 노무현 정부 10명, 이명박 정부 11명, 박근혜 정부 10명보다 훨씬 많다. 문재인 정부에서는 지금도 장관 18명 가운데 박범계 법무부 장관 등 6명이 의원 겸직 장관이다. 장관 3명 중 1명꼴이다. 앞으로 몇 명이 더 나올지 모른다.

집권당 소속 국회의원이 장관을 겸직하면 좋은 점도 있을 것이다. 장관들이 대통령과 집권당의 국정 철학을 잘 이해하고 서로 소통도 원활하게 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국정 수행의 효율성이 높아질 수도 있다. 특히 외교, 국방, 경제, 보건, 환경, 교육 등 대통령의 국정 철학에 따라 정책 방향이 달라질 수 있는 분야가 그럴 것이다.

법치 다루는 법무부, 장관 정치적 중립성 필수

그러나 법무부는 다르다. 법무부는 말 그대로 법을 집행하는 곳이다. 법 집행의 생명은 공정과 정의다. 법무부를 영어로 ‘Minister of Justice’라고 한다. ‘정의부(正義部)’라는 말이다. 그만큼 법무부 업무가 정의와 직결돼 있음을 뜻한다. 공정하고 정의로운 법 집행은 대통령의 국정 철학에 따라서 달라질 수도 없고 달라져서도 안 된다. 하물며 집권당 이익을 우선하는 정파성에 따라 법 집행이 달려져서는 더욱 안 될 일이다.

공정하고 정의로운 법 집행을 하기 위한 전제 조건은 정치적 중립성이다. 법무부가 ‘정의부’로서의 역할을 다하려면 무엇보다도 정치적 중립성을 존중하고 지켜야 하는 것이다. 그러자면 법무부 장관부터 정치적 중립성을 지킬 수 있는 인물이 돼야 한다. 집권당 소속 국회의원이 법무부 장관을 겸직하는 것은 처음부터 정치적 중립성과는 담을 쌓는 일이다.

이 정부 들어 임명된 ‘정치인 법부무 장관’들이 일으킨 정치 편향 논란만 봐도 그렇다. 박범계 장관은 취임하자마자 조남관 검찰총장 대행에게 수사 지휘권을 발동했다. 한명숙 전 국무총리의 불법 정치자금 사건 재판과 관련한  검사의 위증 교사 의혹 사건에 대해서다. 감사가 한 전 총리에게 불리한 증언을 하도록 증인들을 교사했다는 사건이다.

검찰총장 권한 대행인 조남관 대검차장은 이 사건을 재조사한 결과 검사가 위증을 교사했다는 증거가 없다며 지난 2월 무혐의 결론을 내렸다. 그런데 박 장관이 "처리 과정의 공정성에 의문이 든다”면서 대검 부장회의에서 다시 논의하라고 지휘한 것이다. 대검 부장 7명과 전국 고검장 6명, 조남관 권한대행 등 모두 14명이 밤샘 회의 끝에 10몀의 찬성으로 무혐의가 맞다고 다시 결론냈다.

그러나 박 장관은 대검 결론을 수용하겠다는 명확한 의사는 밝히지 않았다. 대신 법무부와 대검 감찰부가 대검의 무혐의 결론이 절차적 정의에 따른 합리적 결정이었는지 합동으로 감찰하라고 지시했다. 그러면서 ‘합동 감찰이 흐지부지하게 용두사미로 대충 끝나지는 않을 것"이라고 했다.

한 전 총리는 한번에 3억원씩 세 차례에 걸쳐 9억원을 받은 혐의로 기소돼 대법원에서 유죄 판결을 받았다. 유죄 판결의 결정적 근거는 한 전 총리가 받았다는 1억원짜리 수표였다. 위증 교사 의혹 사건에 나오는 증인들의 증언은 유죄의 증거로 채택되지도 않았다. 그 증언이 유죄 판결과 관련이 없었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검사가 유죄 증거로 채택되지도 않을 증인들에게 허위 증언을 하라고 교사할 이유가 있었을까 하는 의문도 든다.

어떻든 위증 교사 의혹이 제기됐으니 진위를 조사할 수는 있다. 그러나 대검에서 두 차례나 무혐의 결론을 내렸다면 이를 뒤집을 만한 다른 증거가 나오지 않는 이상 수용할 만도 하다. 그게 자연스러운 일 처리일 것이다. 그런데도 박 장관은 감찰을 지시하며 사건을 계속 끌고 가고 있다.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도 한명숙 전 총리 사건 관련, 측근을 비호하기 위한 감찰 방해 및 수사 방해 이유 등으로 윤석열 검찰총장에게 직무 정지 명령을 내리고 징계 청구까지 했다. 검찰총장 직무정지 명령은 사상 처음이었다. 한명숙 사건은 채널A기자 사건과 함께 작년 내내 나라를 뒤흔들었다.

정치인 추미애·박범계, '법보다 정치 우선' 논란

검찰의 잘못된 수사 관행은 당연히 바로잡아야 한다. 그러나 정말로 그러려면 일반 형사 사건 수사에서 두루 벌어져온 잘못들을 정밀 조사해서 그 실태를 파악한 뒤 필요한 대책을 세워야 한다. 위증 교사가 문제라면 다른 형사 사건에서는 그런 문제가 없었는지, 있었다면 왜 벌어졌는지 조사해야 한다.

그런데 추미애, 박범계 전·현직 장관은 유독 한 전 총리 사건에 대해서만 그렇게 집요하게 문제를 삼는다. 한 전 총리 사건과 관련해서만 그토록 집요하게 나오는 것은 형평성에도 맞지 않을뿐더러 진정성도 의심받게 한다. 정말로 잘못된 수사 관행을 바로잡으려는 사법 행정적 목적이 아니라 뭔가 정치적 목적이 아닌지 의심하게 한다. 한 전 총리 유죄 판결을 가져온 검찰 수사에 흠집을 내고 그럼으로써 한 전 총리가 억울하게 당했다는 것을 부각시키려는 목적 말이다. 

이런 의심은 현 집권세력과 한 전 총리의 정치적 관계를 되새겨 보면 더욱 짙어진다. 한 전 총리는 민주화 운동권인 진보 진영에서 위상이 높다. 정통 운동권이자 시민 단체 그룹 대모이다. 노무현 정부에서 총리를 지낸 친노 핵심에 민주당 적자다. 문재인 대통령은 노무현재단 이사장 시절인 2011년 어떤 인터뷰에서 스스로를 '한빠 (한명숙 열렬 지지자)'라고 했다. 2017년 8월 한 전 총리가 2년 형기를 마치고 의정부 교도소에서 나올 때는 이해찬·문희상·우원식·홍영표·유은혜·전해철·김경수 등 현 정부 핵심 실세들이 총출동해 한 전 총리를 맞았다.

여권은 작년 8월에는 일제히 한명숙 9억원 사건 재조사를 촉구하고 나섰다. 그때부터 ‘한명숙 무죄론’이 끊이지 않고 나왔다. 그러더니 마침내 위증 교사 의혹 사건까지 불거졌다. 한 전 총리가 형기 2년을 마치고 출소까지 한 마당에 검사에게 위증 교사를 받았다는 사람들이 갑자기 나타나 법무부와 대검에 진상 조사를 요구하고 나선 것이다.

추미애, 박범계 전·현직 장관은 민주당 국회의원이다. 민주당과 그 주변 세력이 한 전 총리 사건에 대해 갖고 있는 분노와 원한, 한 전 총리 명예를 바로 세워줘야 한다는 정치적 부담감과 책임 의식 등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런 분위기에 호응하려니 한 전 총리 사건을 그토록 집요하게 문제삼는 것은 아닐까? 이게 사실이라면 그 이유는 이 두 사람이 집권 세력 분위기에 동조하고 나아가 얽매일 수밖에 없는 ‘정치인 법무부 장관’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니 '법보다 정치를 우선한다'는 논란이 생길 수밖에 없다. 이런 게 바로 정치인 법무부장관이 갖는 전형적인 폐해일 것이다.

현 집권세력은 조국 전 장관 가족 비리 사건, 청와대의 울산시장 선거 개입 의혹 사건 수사 등으로 검찰과 번번이 충돌했다. 집권세력은 검찰을 눈엣가시로 여겼다. 집권세력의 이런 분위기 역시 추미애, 박범계 전·현직 장관에게 영향를 미쳤을 가능성이 크다. 이 역시 정치인 법무부 장관이 갖는 문제라고 할 수 있다.

다른 장관은 몰라도 법무부장관은 비정치인이라야

1987년 민주화 이후 역대 법무부 장관 32명 중 국회의원을 겸직한 장관은 다섯 명뿐이다. 김영삼 정부의 박희태, 김대중 정부의 박상천, 노무현 정부의 천정배, 문재인 정부의 추미애·박범계 장관이다. 이 가운데 박희태 장관은 장관 임명 일주일 만에 가정사 문제로 사임해 장관직을 수행할 기회가 없었다. 박상천 장관은 정치인이지만 법률가 정신에 투철했다. 김대중 대통령에게도 직언을 서슴지 않는 강직한 성품이었다. 그래서 법무부 장관 재직 중 정치적 논란을 일으키지 않았다.

그러나 천정배 장관은 우리 역사상 처음으로 검찰총장에게 수사 지휘권을 행사해 논란을 일으켰다.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를 받는 강정구 동국대 교수를 불구속 하라고 지휘한 것이다. 이번에 추미애, 박범계 장관도 수사 지휘권을 행사했다. 우리 역사에 몇 번 되지 않는 수사 지휘권 행사가 모두 정치인 장관에 의해 이루어졌다. 지휘권을 발동한 사건도 채널A 기자 강요 미수 의혹 사건, 윤석열 전 총장 일가 의혹 사건, 한명숙 관련 위증 교사 의혹 사건 등 모두 정치성이 강한 사건이었다. 보통 사람이 억울하게 피해를 본 사건이라든지, 다수 국민들에게 큰 손해를 끼친 사건 같은 ‘민생 사건’이 아니었다.

법무부 장관의 검찰총장 지휘권 행사는 그 제도의 취지 상 아주 예외적으로 행사돼야 한다. 검찰 조치를 그냥 두면 사회 정의를 치명적으로 침해할 우려가 있을 때이다. 그러지 않고 장관이 툭하면 수사 지휘권을 행사한다면, 그것도 정치적 사건에 대해 그런다면, 정부 조직 상 법무부와 검찰을 분리하고, 검찰을 준사법 기관으로 만들 이유가 없다.

미국 바이든 정부의 초대 법무부 장관인 메릭 갈런드 장관은 지난 3월 11일 취임사에서 “(여당인) 민주당원을 위한 규칙과 (야당인) 공화당원을 위한 규칙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라며 “권력을 가진 자든 못 가진 자든, 부자이든 빈자이든 같은 경우는 똑같이 다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는 법무부가 공평한 정의를 추구하고 법에 의한 지배를 고수한다는 점을 말과 행동으로 미국민에게 보여줄 것”이라고 했다. 이 말은 한국의 법무부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법무부가 가야 할 길은 미국이나 한국이나 똑같다. 그 길로 가기 위한 첫걸음은 다른 장관은 몰라도 최소한 법무부 장관만은 집권당 국회의원이 겸직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컴패션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네티즌 의견 0
0 / 300

실시간 급상승

9.9초 더보기

아주 글로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