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돋보기] 살인으로 이어지는 스토킹 범죄... '스토킹 처벌법' 한계 지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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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석준 기자
입력 2021-04-05 1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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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온라인에서 알게 된 주소로 스토킹 시작···일가족 살해로 이어져

  • 매년 늘어나는 스토킹 피해자, 사법처리로 이어진 경우는 10% 불과

  • 22년 만에 '스토킹 처벌법' 마련됐지만···피해자 보호 문제 지적 받아

지난 23일 서울시 노원구에서 스토킹 범죄로 인해 세 모녀가 살해되는 안타까운 사건이 일어났다. 이 사건은 ‘스토킹 처벌법’이 국회에서 통과되기 하루 전에 일어난 일이라 안타까움을 더했다. 스토킹 범죄를 엄중히 다스릴 수 있는 법안이 뒤늦게 마련됐지만, 스토킹 행위에 대한 정의와 피해자 보호 등 여전히 풀어야 할 숙제가 많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매년 증가하는 스토킹 범죄···폭행·살해 중범죄로 이어져

서울 노원구 아파트에서 세 모녀를 살인한 혐의를 받는 피의자 A씨가 4일 오후 도봉구 서울북부지법에서 열리는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경찰에 따르면 지난달 23일 서울시 노원구 중계동 한 아파트에 침입한 A씨가 세 모녀를 살해했다. A씨는 범행 후 경찰에 체포된 25일까지 피해자 집에 머무르면서 식사와 음주를 하고 자해까지 시도하는 등 엽기적인 행각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서울북부지법은 살인 혐의를 받는 A씨에 대해 “도망칠 염려 및 증거를 인멸할 염려가 있다”며 4일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A씨는 세 모녀 중 큰딸 B씨와 온라인 게임을 통해 연락한 적이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B씨가 연락을 받지 않고 만남을 거부하자 B씨가 실수로 공개한 집 주소를 토대로 B씨를 스토킹했다.

경찰이 확보한 B씨의 메신저 대화 기록에 따르면 B씨는 지난 1월 말 지인에게 "집 갈 때마다 돌아서 간다. 1층서 스윽 다가오는 검은 패딩", "나중에 (A씨에게) 소리 질렀다. 나한테 대체 왜 그러냐고"라며 지인들에게 스토킹 범죄에 대한 두려움을 호소했다.

B씨 같은 스토킹 피해자는 매년 늘어나고 있다. 지난해 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스토킹 범죄는 2015년 363건에서 2019년 583건으로 증가했다.

하지만 지난해 스토킹 관련 112 신고 4515건 중 사법처리로 이어진 경우는 10.18%(488건)에 불과했다.

스토킹 범죄가 날이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지만 관련 법안 마련은 지지부진했다. 스토킹 관련 법안은 1999년 15대 국회에서 김병태 의원이 처음 발의한 이래 지난 20대 국회까지 빠짐없이 발의됐지만 임기 만료 등을 이유로 모두 폐기되거나 철회됐다. 정춘숙 국회 여성가족위원장은 "스토킹 범죄는 성폭력, 폭행, 살인 등의 전조현상으로 불릴 만큼 심각한 범죄임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경범죄로 취급돼 처벌이 미미했다"고 지적했다.

심지어 노원 세 모녀 사건처럼 스토킹 범죄가 중범죄로 이어지는 것을 막지 못하는 사건도 일어났다. 지난해 5월 경남 창원에서 한 식당 주인이 전날 말다툼한 손님 C씨에게 살해당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피해자는 말다툼 끝에 C씨를 업무 방해로 경찰에 신고했고, 별다른 조치 없이 풀려난 C씨는 다음날 주인이 거주하는 아파트를 찾아가 살인을 저질렀다.

경찰이 피해자 휴대폰을 디지털 포렌식으로 복원한 결과 C씨가 지난 3개월 동안 100통이 넘는 전화와 문자를 피해자에게 보낸 기록이 발견됐다. 알고 보니 C씨는 피해자를 10여년 동안 무분별하게 스토킹하며 집착 증상을 보였다. 지난달 대법원은 C씨를 살인죄로 징역 20년 형을 최종 확정했다.
 
22년 만에 마련된 '스토킹 처벌법'···아직 갈 길 멀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지난달 24일 21대 국회는 현행법률상 '10만원 이하 벌금'으로 경범죄 수준의 처벌만 하던 스토킹 범죄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는 ‘스토킹 처벌법'(스토킹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법률 제정안)'을 통과시켰다.

제정안에 따르면 스토킹 범죄를 저지른 사람은 이제 3년 이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한다. 흉기 또는 그 밖의 위험한 물건을 휴대하거나 이용해 스토킹 범죄를 저지를 경우에는 5년 이하 징역이나 5000만원 이하 벌금으로 형량이 가중된다. 이 법은 오는 9월부터 시행될 전망이다.

스토킹 처벌법은 스토킹 행위를 상대방 의사에 반해 정당한 이유 없이 상대방에게 불안감이나 공포심을 일으키는 것으로 정의한다. 법안에 명시된 스토킹 행위는 △접근하거나 따라다니고 진로를 막아서는 행위 △주거‧학교‧직장 등 일상적으로 생활하는 장소 또는 그 부근에서 기다리거나 지켜보는 행위 △우편‧전화‧정보통신망 등을 이용해 물건‧글‧말‧영상 등을 전달하는 행위 등이다.

스토킹 범죄 관련 신고를 받은 경찰은 스토킹 행위자를 신고자로부터 100m 밖으로 떨어뜨리는 긴급조치를 한 후 판사의 사후 승인을 받을 수 있다. 이에 지난 1일 경찰청은 "스토킹 범죄 현장 대응 강화지침을 보완하고 경찰서 내 '스토킹 전담조사관'을 지정하거나 배치해 스토킹 사건 현장 대응을 강화할 것"이라고 밝혔다.

22년 만에 스토킹 범죄를 막기 위한 법안이 마련됐지만, 일각에선 아직 관련 규정이 부족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시민단체 한국여성의전화는 스토킹 처벌법을 두고 "스토킹 범죄의 본질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피해자 의사에 따라 발생하는 범죄는 없고 단 한 번의 행위만으로도 피해자는 공포나 불안을 느낄 수 있다"고 지적했다.

또한 "반의사불벌 조항이 존속되고 피해자보호명령과 일상회복을 위한 지원제도 등이 마련되지 않아 현재 법안으로는 피해자 보호와 인권 보장의 실효성을 담보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장윤미 변호사(법무법인 윈앤윈)는 "이전까지는 스토킹이 폭행이나 상해죄로 이어지면 원래 있는 법으로 규율할 수 있었지만, 피해자에게 계속 전화하거나 집 주변을 염탐하는 장면이 CCTV에 담겨도 규제할 방법이 없었다. 이번 법안이 빨리 통과돼서 다행이다. 하지만 추상적이고 포괄적인 개념이 있는 부분은 앞으로 규율하는 과정에서 짚어야 할 문제다"라고 말했다.
 

[사진=아주경제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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