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디지털 시대의 산타와 테러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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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민철 기자
입력 2021-12-25 2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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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일 '내 트리를 꾸며줘(Color My Tree)'라는 웹사이트가 등장했다. 가입한 사람들에게 디지털 크리스마스 트리를 하나씩 만들어 주고, 다른 사람에게서 받은 크리스마스 축하 메시지를 트리에 걸린 선물이나 장식처럼 보여 주는 무료 서비스다. 지인, 친구, 동료들로부터 전달된 메시지를 한 데 모아 읽어 볼 수 있다는 점에서 '롤링페이퍼'와 흡사하다. 일반적인 롤링페이퍼는 주인에게 곧바로 공개되는데, 이 서비스는 '기다림'을 추가했다. 트리의 주인들은 나무에 걸린 지인들의 메시지를 내내 궁금해 하다가, 크리스마스인 오늘(25일)이 돼야만 열어 볼 수 있다.

'내 트리를 꾸며줘'는 등장하자마자 많은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개장 이틀째에 가입자수 20만명, 최대 동시접속자수 10만명을 넘겼다. 이후 개발팀은 "어쩌면 많아야 1000명의 유저를 기대한 자그마한 서비스가 여러분의 성원에 최대 동시접속자 20만, 208만개의 트리(가입자가 받은 메시지가 나무 하나당 걸 수 있는 10개를 넘기면 새 나무가 생김), 그리고 2900만개의 메시지가 오고가는 서비스로 성장했다"고 밝혔다. 서버 비용도 개장 48시간 만에 490만원, 지난 24일 기준 870만원을 넘겼다. 개발팀은 서비스 초기 일시적으로 후원을 받았다가, 23일부터 트리를 보여 주는 웹페이지에 배너 광고를 붙였다.

코로나19 확산세로 위축된 분위기 속에 지인들과 소소한 따뜻함을 나눌 수 있는 이 서비스의 뒤에는 자신들을 '산타파이브'라고 소개한 정보기술(IT) 분야 종사자들이 있었다. 산타파이브 공식 소개 웹페이지에 따르면, 본업이 따로 있는 다섯 사람(개발자 세 명, 디자이너 두 명)이 내 트리를 꾸며줘라는 서비스를 기획하고 개발했다. 내 트리를 꾸며줘 서비스의 개발과 운영 최적화를 돕기 위한 두 명의 개발자도 '루돌프'도 이 팀에 참여했다. 이 팀의 대외 소통창구가 있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트위터에서는 다른 IT 분야 종사자들의 응원과 후원도 이어지고 있다.

이 얘기엔 훈훈함과 거리가 먼 사건도 얽혔다. 내 트리를 꾸며줘를 노린 서비스거부(DoS) 공격이 발생했고, 이에 대한 논의가 서비스 초기부터 온라인 채팅서비스 '디스코드'에서 진행되고 있었다는 점이 지난 22일께 드러났다. 한 공격자는 개발자들의 소스코드 공유 사이트인 '깃허브'에 'terror_tree'라는 이름의 공격용 코드를 올려 놓고 실제로 이를 사용해 서비스상의 특정한 트리에 10만건 이상의 메시지를 단시간에 전송해 봤다고 밝혔다. 다른 공격자는 "프록시 몇 개 가지고 1초당 2000번 정도 플루드(서버의 자원고갈을 유발하는 공격 행위)를 넣으면 (서버 비용이) 억대가 가능할 수도(있겠다)"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공개된 대화 내용에서 자신이 공격을 수행했다고 언급한 이들은 3명 이상으로 보인다. 다른 대화 참가자들이 이들의 행태가 형법상 범죄로 분류되는 '사이버테러'에 해당한다는 사실을 지적했고, 이와 관련된 대화는 범죄 모의에 해당한다는 우려와 경고를 표하면서 대화는 중단됐다. 이들이 서비스의 자원을 고갈시킬 당시 이 행위를 범죄로 인식했을지는 알 수 없지만, 시기상 이들의 공격 행위는 산타파이브 팀이 대규모 트래픽을 견디지 못한 서비스의 운영 장애를 해결하는 데 진을 빼고 있을 때와 맞물려 있다. 대화 내용과 참여자들의 행위가 외부에 알려져 공분을 사자, 이들은 디스코드 대화와 트위터 계정을 지우고 숨었다.

수많은 IT업계 종사자들의 노력과 재능을 바탕으로, 기술은 사람들을 돕고 따뜻함을 나누는 데에 기꺼이 활용된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디지털 의존도가 높아진 사회에서 더욱 더 막강해진 소프트웨어(SW)와 인공지능(AI) 기술의 힘을 공인하고 있다. 이 디지털 기술은 누군가의 기분부터 삶의 질까지 모든 것을 달라지게 만들 수 있다. 그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도구와 지식은 도처에 널려 있고, 이들을 활용하기 위한 문턱은 과거에 비해 훨씬 낮아졌다. 디스코드에서 내 트리 꾸미기에 DoS 공격을 시행한 이들은 얼마간 그런 능력을 습득했지만, 옳게 쓸 방법을 고민하진 않은 듯하다. 기술을 다루는 윤리에는 무감각했다는 얘기다.

디지털 세계에서 IT 분야 지식을 가진 이들은 다른 사람들보다 같은 노력으로 더 많은 이로움을 만들 수도, 더 쉽게 큰 해를 끼칠 수도 있다. 그래서 IT 분야에서는 점점 더 윤리적 가치가 강조되고 있다. 대표적인 국제학회인 미국컴퓨터학회(ACM)는 1992년 만든 'ACM 컴퓨팅 전문가 윤리 강령(Code of ethics)'을 26년 만인 지난 2018년 6월 처음으로 개정해 발표했다. '일반적인 윤리 원칙' 범주에 묶인 조항들 가운데 앞부분에 나오는 내용이 '모든 사람들이 컴퓨팅의 이해관계자임을 인정하면서 사회와 인간 복지에 기여해야 한다'와 '해로움을 지양해야 한다'는 강령이다.

내 트리를 꾸며줘는 생업에 바쁜 이들의 '사이드 프로젝트(side project)'였다. 사이드 프로젝트는 소규모, 비공식, 개인적인 성격으로 기획·개발된 서비스를 의미하고, 일반적으로 수익을 내거나 특정한 성과지표에 도달하는 것보다는 실험이나 가치를 추구하는 방향으로 진행된다. 실제로 산타파이브는 내 트리를 꾸며줘를 자신들의 지인과 그 지인의 지인들 정도가 즐길 수 있는 규모의 서비스를 예상했을 듯하다. 이들에게 크리스마스 선물을 주기 위한 산타가 되겠다고 자처한 이들이 이제 최소 수십만명의 크리스마스를 함께한 서비스를 운영하게 된 것이다. 윤리 강령에서처럼 '사회와 인간 복지에 기여'한 교과서적인 사례가 될 듯하다.

실제로는 그리 대단치 않은 능력을 뽐내 커뮤니티에서 인정받기 위해 공개된 스크립트와 코드를 이용하는 이들을 '스크립트 키디(script kiddie)'라고 부르곤 하는데, 이들이 치는 비윤리적인 '사고'들 또한 길이 회자된다. 지난 2005년 1월 28일 미국에서 당시 19세의 컴퓨터 범죄자 제프리 리 파슨에 대한 징역형이 선고됐다. 재판부는 그를 방관한 부모 때문에 심리적 문제를 갖고 있었다는 점에서 선처한 결과, 징역 1년6개월과 사회봉사 10개월을 부여받았다. 그는 2003년 윈도PC와 윈도 업데이트 웹사이트를 공격하는 '블래스터(Blaster)' 웜의 변종을 제작·유포해 4만8000대의 컴퓨터를 마비시킨 혐의로 최대 10년형에 처할 뻔했다.
 

임민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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