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중구 서울고용노동청 외벽 모니터의 고령자 계속 고용장려금 광고. [사진=연합뉴스]

대법원의 '임금피크제' 판결에 따라 금융권에도 불똥이 튀었다. 금융사 노동조합 측이 이번 판결을 계기로 임금피크제 폐지 혹은 전면 개편을 요구하고 나설 조짐이 속속 나타나고 있다. 

7일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금융노조)에 따르면, 금융노조는 지부별로 임금피크제와 관련해 현황 파악에 나섰다. 사측도 법원이 제시한 유·무효 기준을 놓고 검토 중이다. 금융권에선 임금피크제 도입으로 줄어든 임금을 돌려달라는 금융권 근로자들의 소송이 이어질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대법원이 지난달 26일 한국전자기술연구원 근로자가 제기한 임금피크제 무효 소송에서 정년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일정 연령 이상 근로자의 임금을 정년 전까지 일정 기간 삭감하는 형태의 임금피크제의 효력에 관한 판단 기준을 최초로 제시한 데 따른 후폭풍이다. 이는 정년유지형 임금피크제에 관한 것으로 대법원은 해당 사건의 임금피크제는 연령을 이유로 임금 분야에서 근로자를 차별하는 것으로 그 차별에 합리적인 이유가 없다고 판시했다.
 
금융권 임금피크제 도입 20년 
임금피크제는 일정 연령을 기준으로 임금·근로시간·근로일수 조정 등을 통해 임금을 감액하는 대신 고용을 보장하는 제도다. 연공(여러 해 근무한 공로)성이 강한 한국의 임금체계 하에서 중장년 근로자의 고용 불안을 줄이고 청년의 일자리 기회를 늘리기 위해 도입됐다. 정년 변경 없이 임금피크제를 도입한 경우에는 정년유지형이라 불리며, 임금피크제 도입 시점을 기준으로 노사가 정년 연장에 수반된 조치로서 임금피크제를 도입한 경우에는 정년연장형이다. 대다수 사업체는 정년연장형을 도입해 운용하고 있다.

지난해 사업체 노동력부가조사에 따르면, 국내 164만3000여개 사업체 중 정년제를 운용하는 사업체는 34만7000여개로, 이 중 22.0%(7만6507개)가 임금피크제를 도입했다. 7만6507개 사업체 중 87.3%(6만6790개)는 정년 60세를 의무화하는 내용으로 고령자고용법이 개정된 2013년 5월 이후 임금피크제를 시행했다.

금융권에서는 2003년 7월 신용보증기금을 시작으로 2005년 KDB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 우리은행, KB국민은행, 하나은행, IBK기업은행 등이 잇따라 임금피크제를 도입했다. 대부분 만 55세를 대상으로 하고 있으며 정년을 만 60세까지 늘린 뒤 매년 임금을 순차적으로 깎는 정년연장형 방식을 택하고 있다. 특히 직원의 임금을 줄이는 대신 업무량과 강도를 낮추는 등 노사 합의에 따라 운영하고 있다는 게 은행권의 설명이다. 

윤두현 국민의힘 의원이 금융감독원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4대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의 임금피크제 적용자는 725명이다. 전 직원 대비 임금피크제 적용자 비율은 △KB국민은행 2.3% △우리은행 2.1% △신한·하나은행 0.1% 수준이다. 국책은행의 경우 △산업은행 8.9% △기업은행 7.1% △수출입은행 3.3%가 임금피크제를 적용받고 있다.
 
노조 "폐지 혹은 전면 수정" 요구 나선다

[그래픽=아주경제 그래픽팀]

금융노조 측은 임금피크제 도입 당사자인 일부 직원들이 임금피크제 적용 전과 같은 업무를 하고 있다며 소송을 불사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치고 있다. 해당 지침에 발맞춰 각 은행 노조들도 올해 임단협에서 임금피크제 폐지 또는 임금 삭감 폭을 줄이는 등 전면적인 제도 수정을 요구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한국노총은 지난 2일 산하 조직에 "개별 사업장의 임금피크제가 위법하다고 판단될 경우 적극적인 폐지나 보완 대책을 요구해야 한다"는 대응 지침을 배포했다. 전국사무금융노조도 성명을 내고 "충분히 일할 수 있는 나이에 희망퇴직으로 등을 떠미는 일은 더 이상 없어야 한다"며 "희망퇴직의 배경이 바로 임금피크제 도입인 만큼, 지금 즉시 임금피크제를 폐지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시중은행 중에선 KB국민은행 노조가 적극적으로 임금피크제 무효 소송을 준비하고 있으며, 일부 국책은행의 경우 이미 소송 중이다. KB국민은행 노조는 대법원 판결 이후 임금피크제를 적용받는 직원들과 간담회를 진행했으며 이번주부터 소송인단을 공개모집해 7월께 소송에 돌입할 계획이다. 류제강 국민은행 노조위원장은 "현재 임금피크제를 적용받는 인원은 343명이며 이 가운데 133명은 여전히 창구업무를 수행하고 있다"면서 "약 40%에 달하는 인원이 임금피크제 전과 동일한 업무를 하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KDB산업은행, IBK기업은행 등 국책은행들은 이미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산업은행 시니어 노조는 2019년 임금피크제로 깎인 임금을 돌려달라는 청구소송을 제기했고, 기업은행 현직자와 퇴직자 470명도 지난해 1월 사측을 상대로 임금피크 무효와 임금 삭감분을 반환하라는 소를 제기했다.

더군다나 국책은행은 시중은행과 비교해 임금피크제 적용 직원 비중이 더 높아 타격이 클 것으로 보인다. 금융당국은 내년 기준 국책은행 임금피크제 진입 인력은 약 1500명에 달할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만약 노동자 중심으로 임금피크제 개선이 이뤄진다면 기획재정부와 금융당국을 중심으로 논의 중인 국책은행 희망퇴직 제도에도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인사 적체 현상을 해소하기 위해 더 나은 조건의 희망퇴직 제도를 고민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국책은행 노조 측은 "지금은 우선 임금피크제 관련 논의를 진행하고 있는데 진전이 있다면 기획재정부와 명예퇴직 조건도 협의할 것"이라고 말했다.
 
금융권 "임금피크제 무효되진 않을 것"

7일 서울 시내 거리의 중년 남성들. [사진=연합뉴스]

금융권은 이번 판결로 그동안 운영해왔던 임금피크제 정책이 무효가 되거나 전면 개편되진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대부분 임금피크제 적용 직원의 임금을 줄이는 대신 강도가 낮은 업무로 전환시키고 있어 업무 조정이 없었던 대법 판결 사례와는 다르기 때문이다. 은행권 관계자는 "임금피크제를 도입하면서 임금 감액을 하기 전 합의 하에 충분히 보상 조치를 했으며 업무량과 시간도 크게 줄었기 때문에 대법 판례와 우리의 사례는 아예 다른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은행권은 이번 판결로 올해 노사 교섭에서 정년 연장, 임금피크제 개선 등을 요구해왔던 노조의 목소리에 보다 힘이 실릴 것이라고 우려했다. 특히 국책은행의 경우 희망퇴직 문제까지 거론될 것으로 보여 잔뜩 긴장하는 눈치다. 국책은행은 총 인력 정원이 정해진 가운데 임금피크제 대상 직원이 실무에서 제외되면서 일반 직원들의 업무 부담이 늘어나고 인사 적체가 발생하자 희망퇴직을 활성화해달라고 요청해왔다.

은행권 관계자는 "은행마다 소송 쟁점이 제각각이라 향후 상황을 지켜보면서 임금피크제 제도에 대한 전반적인 검토가 이뤄질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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