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윤학을 아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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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예지 기자
입력 2022-06-28 0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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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택 단지 안에 격리된 상하이 시민들 [사진=연합뉴스]

"너 혹시 윤학이라고 들어봤어?"

최근 중국 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가 진정세를 보이면서 중국인 양(楊)모씨(33)에게 안부 차 연락을 했는데 이같이 대답했다. 양씨는 안부 인사에는 대답하지 않고 속사포로 최근 힘들었던 일들을 내뱉었다. 그러면서 요즘 중국에서 윤학 열풍이 불고 있다며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다고 했다. 

윤학이란 최근 중국에서 떠오르는 유행어다. 한자 '윤택할 윤(潤)'의 중국식 발음인 '룬(rùn)'이 '도망치다·탈출하다'라는 의미의 영어 단어 'run'과 같은 표기인 데서 비롯됐다. 중국 젊은 세대들은 'RUN'에 '학문'을 뜻하는 학(學)을 붙여 중국을 탈출한다는 의미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지난해 중국 젊은 세대의 모습을 잘 반영해줬던 '탕핑(躺平·이생망)', '네이쥐안(內卷·질적 성장 없이 소모적인 경쟁)' 등 유행어와 비슷하다. 탕핑과 네이쥐안 모두 세속적인 삶에서 벗어나 아르바이트로 최소한의 생계를 이어가더라도 나만의 삶을 온전히 누리겠다는 가치관이 내재돼 있다.

일각에선 코로나19 팬데믹에 따른 중국의 제로 코로나 방역 정책이 이같은 현상을 부추겼다는 관측도 나온다. 거듭된 봉쇄로 인한 경제 불황과 대규모 실업 사태에 직면하자 중국 청년들이 이제는 모든 걸 포기하고 자포자기하고 '탈출'하려고 한다는 얘기다.

실제 중국에서 실업 공포가 급속히 사회 전반으로 퍼지고 있다. 이미 중국의 실업률은 2년여 만에 정점을 찍었다. 특히 5월 청년실업률은 18.4%로, 통계 작성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다. 설상가상 올해 여름 사상 최대인 1076만명의 대졸자가 배출돼 취업시장의 경쟁은 더욱 치열해질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세계 최대 인구 대국이라는 타이틀이 무색할 정도로 중국이 향후 3년 안에 인구 감소에 직면할 것이라는 우려도 커진 상황이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도 '중국의 인구 붕괴'를 경고할 정도다. 중국은 가파른 인구 감소를 막기 위해 각종 유인책을 담은 세 자녀 정책을 지난해 시행했지만 이렇다 할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실제 지난해 중국 여성의 1인당 출산율은 1.15명으로 일본의 2.1명에도 못 미쳤다. 여기에 제로 코로나 정책까지 시행하면서 젊은 세대들이 결혼과 아이를 낳는 것을 꺼리며 상황은 더 악화되고 있다. 

'이웃 나라 이야기'라고만 치부할 것이 아니다. 사실 우리라고 별반 다를 게 없기 때문이다. 중국의 이같은 현상은 한국의 'N포 세대'와 오버랩된다. 처음에는 연애·결혼·출산 3가지를 포기한 3포 세대였지만, 이후 셀 수 없이 많은 것들을 자발적 포기가 아닌 어쩔 수 없이 포기해야 하는 N포 세대가 됐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고 청년들에게 희망을 주기 위해 한국의 새 정부는 출범과 함께 다양한 정책을 펴고 있다. 윤석열 정부는 청년이 직접 정책 과정에 참여할 수 있는 '청년보좌역'을 신설하는가 하면, 서울시도 청년 대상 재무, 심리 등을 종합 지원하는 정책을 속속 마련했고, 경기도도 경기 청년 권리장전을 통해 주거·안전·노동 등 청년 5대 권리를 보장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무엇보다 일자리 창출이 시급하다. 당장 먹고사는 문제가 해결돼야 삶의 질을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도 중국과 마찬가지로 실업 문제가 심각하다. 현재 통계청 기준 한국의 청년실업률은 7.2%이다. 그러나 국제노동기구(ILO) 기준에 따라 취업·고시 준비생, 구직 단념자를 합한 실질 청년실업률은 20%를 훌쩍 넘을 것으로 추정된다. 청년 10명 중 2명은 실업자라는 얘기다. 

따라서 서울뿐만 아니라 지방 곳곳에 괜찮은 노동 시장을 만드는 등 사회 전반의 변화 추진에 노력해야 한다. 대한민국 미래의 중추가 이대로 무너지게 내버려 둘 수는 없다. 이제 막 미래를 향해 꿈을 펼쳐야 할 청년들에게 그런 포기와 우울감을 안겨서는 안 된다. 청년이란 용어가 허상이 아닌 것을 알려줘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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