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밀 등 수급 악화
  • 국제식량가격 인상이 국내 물가상승 압력 키워

7월 3일 서울의 한 재래시장의 곡물가게 [사진=연합뉴스]

한국 경제에 켜진 적신호가 더 선명해지고 있다. 매섭게 오르는 밥상 물가에 서민들의 비명은 날로 커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저성장과 물가 상승이 동시에 나타나는 '슬로플레이션' 국면에 진입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국제 식량 가격 상승이 국내 식료품과 외식 물가를 끌어올리는 '애그플레이션'까지 겹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지난 5월 가공식품 가격 상승률은 7.6%로 2012년 1월(7.9%) 이후 10년 4개월 만에 가장 높았다. 외식 물가도 비슷한 양상을 보였다. 같은 기간 외식 물가 상승률은 7.4%로 24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국제 식량 가격은 당분간 고공행진을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한국은행은 지난달 말 발표한 '물가안정목표 운영 상황 점검' 보고서에서 "최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주요 생산국의 수출 제한 등으로 국제 식량 가격의 상승세가 확대되고 있다"고 밝혔다. 또 "식량 급등기에 가공식품 가격으로의 파급 시차가 단축되고 상관관계도 뚜렷하게 나타나는 경향에 비춰 우크라이나 사태의 영향으로 올해 하반기 중 오름세가 더 확대될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4인가족 식비 100만원 돌파..."더 오를 수도"
밥상 물가가 비상이다. 최근 들어 4인 가족 식비가 월 100만원을 넘어서면서 서민 부담은 날로 커지고 있다. 지난달 말 통계청 마이크로데이터 분석을 보면 올해 1분기(1~3월) 국내 4인가구가 지출한 식비는 월평균 106만6902원으로 1년 전 같은 기간보다 9.7% 증가했다.

밥상 물가 상승으로 인한 부담은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대내외적인 요인으로 농축수산물과 가공식품의 가격이 계속 오르고 있고, 사회적 거리두기 해제로 외식 수요까지 늘어나고 있어서다.

일각에서는 지금의 가격상승 압력이 내년까지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도 나온다. 국제식량가격 상승이 올 하반기 국내 물가에 상승 압력으로 작용하고, 다시 시차를 두고 가공식품과 외식 가격에 반영될 것이라는 얘기다.

한국은행은 지난달 말 '최근 애그플레이션 현황·시사점' 보고서를 통해 "주요 전망기관들은 하반기 중 곡물 가격이 완만하게 하락할 것으로 보고 있다"면서도 "구조적 요인과 작황 부진, 수출제한 확대 등으로 상승세가 지속될 가능성이 작지 않다"고 밝혔다. 

또 "국제식량가격 상승은 식량 수입의존도가 높은 편인 국내 물가에 파급되며 올 하반기 중 물가에 상방 압력을 더할 것"이라며 "국제식량가격은 앞으로도 상당 기간 높은 수준을 이어갈 것으로 예상돼 가공식품, 외식 가격 상승 압력이 내년에도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밀 등 주요 곡물 가격 평년의 두 배가량 폭등
최근 국회입법조사처는 '세계 식량 위기론의 부상 배경과 대응 방향' 보고서를 통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코로나19 영향과 이상기후 확산 등으로 불안정하던 국제 식량 시장 상황을 더욱 어렵게 만들고 있다고 지적했다. 주요 곡물 가격은 평년의 두 배가량 폭등했고, 각국의 수출제한 조치 규모는 2008년 애그플레이션 때와 유사한 상황이다. 

유엔 식량농업기구(FAO)가 매달 24개 주요 농산물 품목의 국제가격 동향을 조사해 공표하는 세계식량가격지수는 지난 5월 기준 157.4포인트였다. 이는 기준연도인 2014~2016년 평균(=100)보다 57.4% 오른 것이다. 

올해 들어 유지류와 곡물 가격 폭등이 세계식량가격지수에 영향을 끼치고 있다. 밀, 옥수수, 대두 등 곡물 선물 가격도 크게 요동치고 있다. 시카고 상품 거래소의 5월 평균 밀 선물가격은 t당 420달러로 전년 동월(261달러) 대비 60.9%나 올랐다. 같은 기간 옥수수(13.1% 상승)와 대두(6.6% 상승) 가격도 뛰었다.

상대적으로 가격이 저렴하고, 안정적이었던 2020년과 비교하면 더 가파른 상승세다. 2020년 평균 밀 가격(202달러) 대비 지난 5월 기준 밀 선물 가격은 두 배 이상 뛰었다. 옥수수와 콩도 각각 117.5%, 76.0%나 급등했다.

앞서 전문가들은 농산물 수요 진작, 생산비용 증가 등으로 올해 국제 곡물가가 평년보다 높게 형성될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지금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라는 변수가 개입하면서 그 양상이 크게 악화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세계 밀 수출량에서 30%, 옥수수 수출량 가운데 15%, 해바라기씨유 수출의 62% 이상을 차지하는 농산물 수출 강국이다. 현재는 이들 국가에 재고가 있어도 국제 교역이 원활치 못한 상황이다.

올 하반기 이후에는 전쟁으로 인한 재배면적 감소로 국제 시장 공급 부족, 식량 가격 상승의 문제가 본격화될 가능성이 크다. 미국 농무부는 2022~2023년의 세계 곡물 생산량이 2021~2022년보다 265만t(0.95%) 감소한 27억6797만t에 그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밀·콩 생산·소비 기반 유지해야
러시아·우크라이나 사태 이전에도 세계 식량 가격은 이미 고공행진 조짐을 보였다. 문제는 앞으로다. 코로나19로 경제 활동을 멈췄던 주요국들이 움직임을 시작하면서 수요가 늘어났지만, 물류망은 아직 회복되지 못했다. 또 기후 위기에 따른 비정형적 이상기후가 빈번하게 발생하면서 생산도 불안한 상태다.

보고서에서는 주곡의 생산·소비 기반을 안정적으로 유지하면서 밀과 콩 생산을 늘려갈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윤석열 정부의 국정과제에 포함된 농업직불금 예산 증액과 식량안보 강화를 위한 선택직불제 확대의 조기 시행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해외농업자원개발 종합계획(2018~2022)'이 올해 완료되는 만큼 해외 농산물 생산·반입 모델과 프로세스를 전면 검토해 새로운 5개년 계획에 반영해야 할 때다.

또 취약계층의 농식품 접근성을 상시적으로 점검해야 한다. 일반적으로 저소득층 가구일수록 엥겔지수(가계지출 중 식비 차지 비율)가 높게 나타난다. 실제 한국의 소득 1분위(하위 20%) 가구는 올해 1분기 기준으로 가처분소득의 42.2%를 식료품·외식비에 지출하고 있다. 이는 같은 항목에 대한 소득 5분위(상위 20%) 가구의 지출 비중을 3배 이상 웃도는 수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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