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 식용 종식] 44년 기다린 종지부...정부는 막판 눈치보기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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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석준 기자
입력 2022-07-09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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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식용금지 큰 틀 잡았지만 유예기간 갈등

  • 대만·중국·홍콩 등 이미 법적으로 금지

  • 법제화 시도 번번이 국회 문턱 못 넘어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가 서울 용산 대통령실 집무실에서 반려견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모습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지난 5월 29일 공개됐다. [사진=페이스북 건희사랑]

수십 년간 논란이 된 개 식용 문제가 방점을 코앞에 두고 또 안갯속에 빠졌다. 개 식용 종식이라는 큰 틀로 방향이 잡혔지만 이해당사자들이 합의를 이끌어내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직접 협상 테이블을 마련해 이해당사자 간 갈등 중재에 나섰다. 하지만 정작 일각에서는 정부가 위원회 내부 갈등 속에서 모두가 받아들일 수 있는 사회적 합의를 도출한다는 명목으로 뒷짐 지며 시간만 보내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사회적 합의기구 운영 기간 무기한 연장...갈등 계속
9일 농림축산식품부 등에 따르면 ‘개 식용 문제 논의를 위한 위원회’ 운영 기간이 무기한 연장됐다.

지난해 12월 출범한 위원회는 애초 올해 4월까지 운영될 계획이었다. 하지만 지난달 29일까지 17차례(전체회의 8회·소위원회 9회)에 걸쳐 개 식용 종식을 두고 아직 합의점을 마련하지 못했다.

국무조정실과 농식품부가 주관하고 환경부·식품의약품안전처 등 관계 부처와 동물보호단체, 육견업계, 외식업계, 전문가 등으로 구성된 위원회는 이미 개 식용을 종식하는 방향으로 결정했다. 하지만 그 시기와 실행 방안 등 구체적인 부분에서 각 이해당사자들이 이견을 보이고 있다.

종식 시기를 두고 동물보호단체는 유예기간을 8~10년 정도로 제안했지만, 개 사육 농가 등 육견 업계는 업종 전환과 생계유지 등을 이유로 15년을 주장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 가운데 정부는 완벽한 사회적 합의를 지향한다는 입장이다. 위원회 관계자는 “초기에는 개 식용 문제에 대해 입장 차이가 컸으나 관련 토론을 통해 개 식용 종식이 시대적 흐름이라는 인식에 공감대를 형성하는 성과를 거뒀다”고 말했다.

이어 “종식 시기와 이행하기 위한 구체적인 실행 방안 등에 대해서는 아직 이견이 있는 상황인 만큼 이 부분을 집중적으로 논의할 계획”이라며 “개 식용 문제 해결을 위한 사회적 합의를 이루어내기 위해 위원회 운영을 지속하기로 하고 기한을 별도로 정하지 않기로 했다”고 덧붙였다.

일각에서는 관계 부처가 개 식용 문제에 본격적으로 개입한 만큼 갈등 해결을 위해 강경하게 대응하고 이른 시일 내에 결론을 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미 올해 4월까지였던 위원회 운영 기간을 2개월 추가 연장한 데 이어 무기한 연장을 선언하면서도 구체적인 성과를 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한 동물보호단체 관계자는 “유예기간이란 정책이나 제도, 법을 시행하는 데 준비와 정리할 수 있는 기간을 주는 것으로 1년이면 충분하다”며 “개 식용 문제를 비켜나가기 위한 꼼수로 보이고 (위원회 운영이) 사회적 합의를 끌어내기 위한 사회적 논의라 하더라도 실체와 기준도 없는 것을 어떻게 끌어내는 것인지 알 수 없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사회적 합의가 안 되면 개 식용 종식을 하지 않겠다는 것”이라며 “진정성 있는 대책 마련과 실천할 계획을 내놓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웃국가도 법으로 금지...한국은 입법 문턱 못 넘어

[사진=게티이미지뱅크]

해외에는 이미 법적으로 분명하게 개 식용을 금지한 국가들이 있다. 필리핀·홍콩·중국 등 아시아 국가들은 법적으로 개 식용이나 도축을 금지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는 대만 ‘동물보호법’이 꼽힌다. 위원회도 대만 사례를 점검한 바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대만은 1998년 동물보호법을 제정하고 공공장소에서의 개 도살 금지뿐 아니라 경제적 목적을 위한 특정 동물 사용을 금지했으나 한국처럼 관행적으로 용인돼왔다.

이에 대만 정부는 2003년부터 단계적으로 벌금 수준을 올리고 1년 이하 징역형을 내리는 등 처벌 수준을 강화해오면서 국민 인식 변화를 꾀했다. 대만 각 지방자치단체도 개와 고양이 식용을 금지하는 조례를 마련했으며, 중앙정부는 2017년부터 전국적으로 금지하고 이를 위반한 경우 처벌하도록 하는 개정안을 공포했다.

유제범 국회 경제산업조사실 산업자원팀 입법조사관은 ‘대만의 개 식용 금지와 관련한 동물보호법 개정의 주요 내용과 시사점’ 보고서에서 “대만이 개 식용 금지를 위해 2000년대 초부터 지속적이고 단계적인 입법 조치를 취해 왔고, 2017년에 이르러 전국적인 개 식용 금지를 위한 ‘동물보호법’을 개정한 것은 동물복지 측면에서 의미가 크다”고 설명했다.

국내에서도 개 식용을 금지하려는 움직임이 있었지만 입법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지난 20대 국회에서 표창원 의원이 대표 발의한 ‘동물보호법 일부개정법률안’은 동물 도살 행위에 대한 규제를 강화함으로써 사실상 식용 목적의 개 도살을 어렵게 해 식용 개 유통을 방지하고자 했으나 임기 만료로 폐기됐다.

서울시는 올해 1월 양민규 의원이 발의한 ‘개 식용 금지 문화 조성에 관한 조례안’을 입법예고했으나, 10대 서울시의회 임기가 끝나면서 사실상 폐기된 상태다.

개 도축이 불법으로 분류된 지는 44년이 지났다. 정부는 1975년 축산물 위생관리법에 따라 개를 합법적 도축과 식육검사가 가능한 가축에 포함했다가 1978년 제외했다. 현행법상 가축에 속하는 것은 소·말·양·돼지·닭·오리·사슴·토끼·칠면조·거위·메추리·꿩·당나귀 등 13종이다.

식약처가 고시한 식품에 사용할 수 있는 원료 목록 중 ‘식품공전’에도 개고기는 포함돼 있지 않다. 하지만 관례나 전통, 문화라는 명목 아래 개 식용 산업은 암암리에 꾸준히 이어져 왔다.

이에 가축은 도축부터 조리까지 정부나 지방자치단체로부터 정기 위생검사를 받지만, 개 식용은 도살 방법이나 가공 과정에서 위생 문제 일으켜 비판을 받기도 했다. 유 조사관은 “가축 도살은 허가받은 도축장에서 실시해야 하는데 개는 가축 범위에 포함되지 않아 임의 장소에서 도축해도 해당 행위에 법을 적용할 수 없고 실무에서 법 적용도 이와 같다”고 전했다.

정부는 최근 개 사육 현황과 영업 실태, 대국민 인식 등을 조사했지만 그 결과를 공개하지 않고 있다. 정부 차원에서 이뤄진 첫 공식 조사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위원회 내부에서 합의가 이루어지고 그걸 발표할 때 같이 공개하기로 결정했다”며 “논의 사항도 비공개로 진행되는 중”이라고 전했다.

한편 최근 개 식용 금지 문제는 윤석열 대통령과 배우자인 김건희 여사 덕분에 더 주목받고 있다. 윤 대통령 부부는 개 4마리와 고양이 3마리 등 반려동물 7마리를 키우는 동물 애호가로 유명하기 때문이다.

김 여사는 최근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윤석열 정부에서) 동물 학대와 유기견 방치, 개 식용 문제 등에서 구체적 성과가 나오길 바란다”며 영세한 식용업체들에 업종 전환을 위한 정책 지원을 하는 방식 등을 제안한 바 있다.

농식품부 통계에 따르면 윤 대통령 부부처럼 반려동물을 양육하는 가구는 2020년 기준 총 638만 가구로 국내 가구 비중의 27.7%를 차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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