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씨네 리뷰] 라미란·정일우·김슬기의 새 얼굴…영화 '고속도로 가족'

기자정보, 기사등록일
최송희 기자
입력 2022-11-06 11:01
    도구모음
  • 글자크기 설정
"낭만적이네요. 이 조명, 온도, 습도···." 한 예능 프로그램의 출연자가 남긴 말이다. 장소, 날씨, 몸 상태 등 하나하나가 모여 '분위기'를 만든다는 의미다. 영화도 마찬가지. 그날의 기분, 나의 경험이 영화의 '평가 기준'이 되기도 한다. 이처럼 '최씨네 리뷰'는 필자의 경험과 시각을 녹여 관객들에게 영화를 소개하는 코너다. 조금 더 편안하고 일상적으로 담아내고자 한다. <편집자 주>

[사진=영화사 설렘, 고고스튜디오]

배우들에게는 여러 이미지가 있다. 다양한 작품과 캐릭터를 오가지만 강렬한 역할을 맡거나 그 역할을 뛰어나게 소화한 이들은 특정 이미지에 갇혀버리기도 한다.

영화 '고속도로 가족'의 주연 배우인 라미란과 정일우·김슬기에게도 대표적인 이미지가 있다. 드라마·시트콤·예능 프로그램 등으로 천연덕스럽게 코미디 연기를 소화한 이들은 대중이 기억하는 몇몇 이미지로 남게 됐다.

지난 2일 개봉한 영화 '고속도로 가족'은 이들이 가진 이미지와 한계를 깬 작품이었다. 아주 일상적이고 내밀한 감정들을 그려낸 이들은 지금까지 보지 못한 낯선 얼굴을 드러내며 더욱 넓어진 연기 스펙트럼을 보여주었다.

"지갑을 잃어버려서 그러는데 2만원만 빌려주시겠어요?"

'기우'(정일우 분)와 '지숙'(김슬기 분)은 어린 딸과 아들을 데리고 고속도로 휴게소를 전전하며 살아간다. 텐트를 집, 밤하늘의 달을 조명 삼아 사는 이들은 다시 마주칠 일 없는 휴게소 방문객들에게 돈을 빌려 캠핑하듯 유랑하며 살아간다.

한편 중고 가구점을 운영하는 '영선'(라미란 분)은 사고로 잃은 아이를 그리워하며 살고 있다. 때마다 수목장을 찾아 그리움을 달래는 그는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우연히 '기우'와 아이들을 만나고 2만원을 빌려준다. 그리고 며칠 뒤 우연히 같은 휴게소에서 '기우'의 아이들을 만나게 된 '영선'은 이를 수상하게 여기고 위험한 환경에 노출된 아이들을 걱정해 경찰에 신고한다.

이 일로 '기우'와 가족들은 헤어지게 되고, '영선'은 오갈 데 없어진 '지숙'과 아이들을 거둔다. 새로운 일상이 주는 작은 행복에 차차 적응해가던 것도 잠시, 이들 앞에 '기우'가 나타나게 되고 상황은 점점 예측할 수 없는 방향으로 흘러간다.

[사진=영화사 설렘, 고고스튜디오]

영화는 계속해서 모순과 부조화적인 상황과 관계를 보여준다. 사회로부터 내몰린 이들이 일련의 사건으로 가족이 되지만 한편으로는 서로 가족을 해체하고 망가뜨리는 데 일조하기도 한다.

'영선' 또한 마찬가지다. 그는 사회적 재난으로 가족을 잃고 큰 상실감을 느끼는 인물이다. 누군가 쓰다 내놓은 가구를 고치고 닦아 쓰임새를 찾아주지만 정작 자신은 쓰임새를 잃고 방황한다. '지숙'과 아이들을 만나 변화하고 상처를 치유하는 과정에서도 부조화는 일어난다. '지숙'과 아이들 역시 '영선'으로 하여금 안락한 삶을 얻고 희망을 되찾지만 동시에 '기우'의 빈자리를 여실히 느끼게 된다.

영화는 동화 같은 톤앤매너를 취하고 있지만 그 안을 들여다보면 부조리한 비극으로 가득 차 있다. 사회의 안전망 바깥에 놓인 인물들과 슬픔에 잠식된 시간이 켜켜이 쌓여 있다. 우리가 언제 어디선가 한 번쯤 마주쳤을지 모르는 인물들과 그들의 결말을 마주한 순간 물밀듯 밀려오는 불편함과 먹먹함은 영화가 말하는 모순과 부조화를 상기시키곤 한다.

'고속도로 가족'의 아쉬운 점은 많은 장면과 설정이 그리다 만 것 같은 인상이 남아서다. 길고양이를 돌보듯 '지숙'과 아이들을 거둔 '영선'의 심리가 무겁게 와닿지는 않고, 자본주의 사회 속 무너져내린 가장 '기우'의 서사도 관객들을 설득하기는 어렵다. 캐릭터, 서사의 빈칸이 많은데 그것들을 배우 개개인의 연기력에 기대고 있지는 않은지 살피게 된다.

[사진=영화사 설렘, 고고스튜디오]

앞서 언급한 대로 배우들의 연기가 인상 깊다. 올해 '정직한 후보' '컴백홈' 등으로 코미디 연기의 정수를 보여주었던 라미란은 엄청난 상실을 경험한 '영선'의 내면을 차분히 톺아낸다. '기우' 역의 정일우는 크나큰 감정의 진폭을 오가며 낯선 얼굴을 보여준다. 두 주연 배우의 연기 변신도 인상 깊지만 배우 김슬기와 아역배우 서이수·박다온의 활약이 오랜 여운을 남긴다. '영선'과 '기우'처럼 극적인 감정 연기를 펼치는 캐릭터는 아니나 김슬기·서이수·박다운으로 하여금 관객들이 조금 더 진득이, 영화에 몰입할 수 있었다. 지난 2일 개봉. 관람 등급은 15세 이상이고 상영 시간은 129분이다. 제27회 부산국제영화제 한국 영화의 오늘-파노라마 섹션 공식 초청작이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컴패션_PC
0개의 댓글
0 / 300

로그인 후 댓글작성이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닫기

댓글을 삭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이미 참여하셨습니다.

닫기

이미 신고 접수한 게시물입니다.

닫기
신고사유
0 / 100
닫기

신고접수가 완료되었습니다. 담당자가 확인후 신속히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닫기

차단해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사용자 차단 시 현재 사용자의 게시물을 보실 수 없습니다.

닫기
실시간 인기
기사 이미지 확대 보기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