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치용의 비욘드 ESG] 헉슬리가 '포드 기원'을 완전히 철회하려면

기자정보, 기사등록일
안치용 교수
입력 2023-03-21 06:00
    도구모음
  • 글자크기 설정

[안치용 교수]


자동차 역사를 한마디로 정리하면 ‘T→S’로 요약할 수 있다. ‘T’는 ‘모델T’를 말한다. ‘모델T’는 1908년 포드사에서 내어놓은 자동차 모델로 21세기 들어 테슬라의 ‘모델 S’가 나오기 전까지 자동차 역사에서 가장 의미 있는 차종으로 평가받는다.

◆모델T=‘모델T’는 1908년에 첫선을 보인 후 1927년까지 생산된 최초의 대량생산 자동차다. 대량생산은 대량소비를 전제하기에 포드사는 보통 사람이 크게 무리하지 않고 살 수 있는 수준으로 가격을 낮춘다. ‘모델T’가 미국에 자동차 시대를 여는 장면이다. 그전까지 자동차는 부유층이 누리는 사치품이었다. 세계 최초 ‘국민차’로도 평가받는 포드사 ‘모델T’가 연 것은 대량소비 자동차라는 특정한 생활문화에 그치지 않았다. ‘모델T’로 상징되는 이동문화 혁신은 나아가 인간 삶 전반의 변화를 견인하며 석유문명 도래를 확정하는 ‘패러다임 시프트’를 만들어낸다.

그 시절 ‘모델T’ 별명은 ‘틴 리지(Tin Lizzie·깡통 리지)’였다. 별명 유래가 재미있다. 1922년 미국 콜로라도주에서 열린 자동차 경주에 노엘 불록이란 사람이 ‘모델T’를 타고 출전하면서 자기 차를 “늙은(또는 낡은?) 리즈(Old Liz)”라고 불렀다. 이름대로 이 차는 엔진부를 덮는 후드가 없었고 페인트칠이 모두 벗겨진 상태였다.
놀랍게도 이 고물 자동차가 경주에서 1위에 올랐다. 다른 차들이 자잘한 기계 고장으로 경주 중에 잠깐씩 퍼졌지만 ‘리즈’는 사소한 고장 하나 없었다. 주행 속도가 나쁘지 않은 편이어서 그 사실만으로 시간 지체 없이 완주하여 손쉽게 우승하였다. 뻔쩍뻔쩍하는 다른 차들을 제치고 깡통 고물차가 1위에 올랐으니 엄청난 화제가 됐다.

당시 미국 언론은 ‘리즈’의 우승을 대서특필했다. ‘깡통 리즈’는 깡통과 우승이라는 선명한 대비 속에 미국 국민에게 ‘모델T’ 성능을 각인한다. ‘깡통’이란 수식어가 높은 가성비 외에 역설적으로 품질과 신뢰까지 미국 소비자 가슴에 심어주는 데 크게 기여한 셈이다.

◆포디즘=자동차 왕으로 불리는 포드사 창업주 헨리 포드는 “차 가격을 1달러 내릴 때마다 새로운 고객 1000명 더 생긴다”는 말을 남겼다. 1000명이든 몇 명이든 의미 있는 수준으로 새로운 고객을 창출하려면 차 가격을 내려야 한다는 이야기인데, 쉬운 일이 아니다. 말 그대로 ‘패러다임 시프트’가 가능해야 한다.
포드는 혁신적인 컨베이어 벨트 조립 방식의 도입으로 대량생산을 가능하게 만들면서 동시에 제조원가를 떨어뜨렸다. 1913년 말에 컨베이어 벨트 조립 방식이 들어오면서 자동차 섀시 조립시간이 대당 12시간 30분에서 2시간 40분으로 줄어들었다. 차값이 대당 2000달러를 넘어서는 시대에 이미 파격적으로 3분의 1가량인 850달러로 판매를 시작한 ‘모델T’는 이에 따라 300달러 이하로까지 판매가격을 낮출 수 있게 된다. 컨베이어 벨트 조립 라인을 핵심으로 한 자동화·규격화·단일화한 생산체계를 흔히 포디즘이라고 부른다. 이 포디즘이 대량생산과 대량소비 시대를 연 일등 공신이다.
포디즘은 하나의 생산체계를 넘어서 현대사회를 지탱하는 이념으로 자리 잡는다. 포디즘은 소득과 소비를 모두 늘리는 데 주춧돌이 돼 미국이 주도한 20세기 자본주의 경제 체제의 명실상부한 산파가 된다. 소비수준을 높이고 물질의 풍요를 주는 현대사회를 조금 과장하면 포디즘이 열었다고 말할 수 있다.
문제는 포디즘과 함께 환경 파괴와 자연 약탈, 그리고 석유·석탄의 화석연료가 주도하는 문명이 개화했다는 것. 빛이 강하면 그림자가 짙다고, 지구온난화라는 인류 공통 위기를 불러온 데에 포디즘과 ‘모델T’가 상징적이고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평가에 이제 큰 이견이 없다.

◆모델S=‘모델S’는 테슬라가 2012년에 출시한 전기자동차다. 간단히 말해 인류가 만든 전기자동차 중에서 성능 면에서 내연기관 자동차와 경쟁이 가능한 최초 모델이다. ‘모델T’와 ‘모델S’는 둘 다 최초 발명품이 아니라 시장에서 처음으로 변화와 반응을 끌어낸 차종이란 공통점을 갖는다. ‘모델S’는 시제품 수준에 머물지 않고 시장에서 의미 있는 판매 대수를 기록했다.
평가가 좋았다. 출시 이듬해인 2013년에 ‘세계 올해의 차’ 친환경 부문에 선정됐다. 2019년 미국 자동차 잡지 모터트렌드는 잡지 역사 70년(1949~2019년)래 최고 자동차로 ‘모델S’를 뽑았다.

◆전기자동차=전기자동차(Electric vehicle·EV)는 전기에너지를 동력원(動力源)으로 사용하는 자동차다. 플러그를 꽂아 놓고 전깃줄을 늘려가며 주행할 수가 없기에 전기자동차는 전기에너지를 충전해서 사용한다. 따라서 전기자동차에서 축전지, 즉 배터리의 성능이 성패를 좌우하게 된다. 배터리를 '새로운 석유'라고 부르는 이유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배터리 산업에서 경쟁력을 갖춘 한국은 옛날 기준으로 산유국이라 할 수 있다.
흥미로운 점은 전기자동차가 내연기관 자동차보다 이른 시점에 개발됐다는 사실. 1828년 헝가리 사제 아니오스 예들리크가 소형 전기차 모형을 만들고, 1834년 스코틀랜드 발명가 로버트 앤더슨이 사람이 탈 수 있는 일회용 전기차를 만든 게 전기자동차 최초 기록이다. 당시에 충전 기술이 없었기에 실제로 탈 수 있는 전기차는 납축전지가 발명된 1859년 이후에 만들어지게 된다. 프랑스 발명가 귀스타브 트루베가 1881년에 최초로 자동차로 평가받을 만한 충전식 전기자동차를 선보였다. 속도 면에서도 전기자동차가 내연기관 자동차보다 먼저 시속 100㎞ 속도를 돌파했다.

◆나중 된 자 먼저 되고=내연기관보다 먼저 자동차 역사에 등장한 전기자동차는 주지하듯 기술적 한계와 편의성 등 여러 요인으로 석유를 기반으로 하는 이동 수단에 밀려나 오랫동안 역사에서 사라졌다. 영화 '자이언트'에서 극적으로 표현했듯 미국 텍사스주에서 석유가 나오는 등 미국과 세계 전역에서 유전이 발견되면서 또 차량이 말을 대체한 20세기 두 차례 세계대전과 맞물려 내연기관을 탑재한 자동차가 보편적 이동 수단으로 입지를 확고히 한다. 전장의 탱크는 석유를 가공한 연료가 제때 공급되기만 하면 언제든 작전에 투입될 수 있지만 전기를 충전해 기동하는 탱크를 20세기에 상상하기는 힘들었다.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전기자동차가 무대로 복귀한 시점은 내연기관 차량이 심각한 수준의 환경문제를 일으켜 걱정의 대상이 된 1990년대 들어서다. 현대적인 의미에서 전기자동차라고 부를 만한 자동차는 21세기 들어 제대로 개발되기 시작한다.

◆자동차의 새로운 정의=‘모델S’는 전기자동차 시대를 본격적으로 열면서 자동차의 본질을 새롭게 정의한다. 이동 수단이라는 점에서 내연기관 자동차와 동일하지만 현대 문명에서 자동차의 의미를 완전히 뒤바꾸었다는 점에서 ‘모델T’와 마찬가지로 ‘패러다임 시프트’를 만들어냈다. 내연기관 자동차가 100년에 걸쳐 축적한 성능을 전기자동차가 10년 만에 따라잡은 데에는 반도체 등 21세기 첨단 기술이 한몫했지만 ‘패러다임 시프트’로 표현했듯 절실한 시대의 요구 또한 반영됐다.
예컨대 노르웨이가 2025년까지, 중국과 미국 캘리포니아주는 2035년까지 내연기관 자동차 판매를 전면 중단할 계획이다. 이 밖에 세계 많은 국가가 이르면 몇 년 이내에 혹은 수십 년 이내에 내연기관 자동차를 도로에서 퇴출하겠다고 밝힌 상태다. 실제 계획대로 그 시점에 내연기관 자동차가 사라질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내연기관 자동차가 언젠가는 도로 위에서 완전히 없어진다는 건 기정사실이다. 예상보다 빨리 없어질 수도 있다. 지구온난화와 기후위기가 그만큼 심각하기 때문이다. 자동차가 사람과 화물을 효율적으로 이동하고 운송해야 하지만 단지 그 일만 해서는 안 되고 그 일을 하면서 더는 지구에 부담을 주어서는 안 된다는 데에 의견이 일치한다.

◆전기차 전환 이후엔?=영국 파이낸셜타임스에 따르면 2021년 12월 유럽에서 전기차 판매량이 사상 처음으로 디젤 차량을 앞질렀다. 정부의 보조금 지원과 엄격한 내연기관 자동차 규제로 신차 판매 중 20% 이상을 전기차가 차지했다. 이 수치가 앞으로 계속 높아질 텐데 그렇다면 우리는 올바른 길을 가고 있는 것일까. 꼭 그렇지는 않다.

올더스 헉슬리의 소설 <멋진 신세계>(1932년)에는 예수 탄생을 기준으로 BC와 AD를 쓰듯 ‘모델T’를 생산하기 시작한 1908년을 ‘0년’으로 하는 이른바 ‘포드 기원’을 쓴다. 전술한 대로 ‘모델T’의 문명사적 의의가 그만큼 크다는 사실이 소설을 통해 확인된다. 그렇다면 누군가 ‘테슬라 기원’이란 말을 쓸 가능성이 있을까. 전무하다. ‘모델T’는 내연기관을 쓰는 자동차로 그 자체로 에너지가 특정되지만 ‘모델S’가 쓰는 전기는 2차 에너지여서 실제 투입된 에너지의 특정이 불가능하다. 만일 전기를 화석연료를 써서 생산하고 그 전기로 전기자동차를 운행한다면 한마디로 도루묵이 된다. ‘테슬라 기원’이 불가능한 이유는 바로 이 전기에서 찾아진다.
전기자동차로 그래도 반은 시작했다. 남은 반은 올바른 전기를 생산하고 공급하는 체계를 갖추는 일이다. 그때서야 비로소 신기원이 열리게 된다.


안치용 필자 주요 이력

△ESG연구소 소장 겸 ESG코리아 철학대표 △아주대 융합ESG학과(석사과정) 특임교수 △지속가능저널 발행인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컴패션_PC
0개의 댓글
0 / 300

로그인 후 댓글작성이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닫기

댓글을 삭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이미 참여하셨습니다.

닫기

이미 신고 접수한 게시물입니다.

닫기
신고사유
0 / 100
닫기

신고접수가 완료되었습니다. 담당자가 확인후 신속히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닫기

차단해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사용자 차단 시 현재 사용자의 게시물을 보실 수 없습니다.

닫기
실시간 인기
기사 이미지 확대 보기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