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초대석] 진종욱 국표원장 "글로벌 표준 쟁탈전 격화…우리 기술로 주도권 잡는다"

기자정보, 기사등록일
박기락 기자
입력 2023-03-21 05:00
    도구모음
  • 글자크기 설정
  • 해외 인증 어려움에 기업 애로 증가…기술·비관세 장벽으로 작용

  • 한국인 최초 ISO 회장 배출…연간 80종 제안 '표준 강국' 반열에

3월 16일 아주경제 본사에서 진종욱 국가기술표준원 원장이 인터뷰를 하고 있다.[사진=유대길 기자 dbeorlf123@ajunews.com]


"우리가 개발한 기술을 국제 표준으로 만들면 글로벌 시장을 선점하는 데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 있습니다. 오늘날 세계 각국이 신(新) 산업의 주도권을 잡기 위해 치열한 표준 전쟁을 벌이고 있는 이유입니다."

진종욱 국가기술표준원 원장은 지난 16일 아주경제와 인터뷰를 하며 국제 표준의 중요성에 대해 이같이 설명했다. 

자체 스마트폰 충전 단자를 고집했던 애플이 올가을 출시될 차기 모델 아이폰 15부터 USB-C 타입 충전 포트를 적용한다. 지난해 유럽연합(EU) 회원국 27개국이 스마트폰 충전단자를 C 타입으로 통일하는 내용이 담긴 법안을 최종 승인한 결과다. C 타입 충전 포트가 없는 스마트폰 제품의 유럽 수출을 제한하는 이 법은 10년 넘게 자체 충전 단자를 고수했던 애플의 콧대를 꺾었다. 

애플의 사례처럼 국제·국가 표준은 수출을 위한 기초이자 사실상 첫 단계라고 할 수 있다. 수출로 먹고사는 우리나라 역시 표준 관리를 소홀히 할 수 없는 이유다. 
 
글로벌 시장에서 표준 경쟁은 점점 더 격화하고 있다. 자유무역협정(FTA)의 가속화로 많은 관세 장벽이 무력화하면서 각국이 스스로에게 유리한 국내 표준을 만들거나 자국 표준을 국제 표준으로 만드는 방식으로 타국의 기술이나 제품 진입을 방해하는 등 기술·비관세장벽을 높이고 있는 탓이다. 

결국 수출 경쟁력을 유지하려면 불리한 해외 표준을 개선하거나 우리 기술을 국제 표준으로 만드는 게 중요하지만 민간 기업의 힘만으로는 쉽지 않은 일이다. 

국가 표준 정책을 총괄·조정하는 국표원은 국제표준화기구(ISO) 등 국제 기구에서 정부 대표 기관으로 활동하면서 우리 기술의 국제 표준화 첨병 역할을 맡고 있다. 또 세계무역기구(WTO)와 FTA 협상 과정에서 무역기술장벽(TBT) 대응을 담당하며 해외 인증으로 인한 애로 해소나 국내 기술 규제에 대한 영향 평가, 법정 인증제도의 실효성 검토 등 업무도 담당한다.

진 원장은 올해 국표원의 핵심 업무로 '해외 인증 지원'을 꼽았다. 해외 각국은 국민안전, 환경보호 등을 목적으로 다양한 인증 제도를 운영하는데 우리 기업이 해당 인증을 획득하는 데 적지 않은 비용과 인력이 소요된다. 최근에는 선진국을 중심으로 탄소중립과 관련한 인증 수요도 증가해 기업 애로가 늘어나는 추세다. 

지난해 EU가 디스플레이 제품 에너지 효율 규제를 강화하면서 우리 기업의 8K TV 수출이 중단될 위기에 처한 게 대표적인 예다. 예정대로 규제가 시행될 경우 연간 7500억원 규모의 수출 차질이 예상됐다. 국표원은 지난해 12월 현지 양자 면담을 통해 제품 출하 기준을 협의한 끝에 수출 중단 위기를 막을 수 있었다. 

진 원장은 "우리나라의 시험·인증 기관과 해외 기관 간 상호 인정 범위를 확대할 계획"이라며 "국내 기관에서 해외 인증에 제대로 대응하면 시험 성적서 발급이나 시험 시료의 해외 발송에 따른 비용, 시간을 줄이고 문화적 차이로 인한 애로 사항도 해소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이와 함께 국표원은 신청서류 누락 등으로 인증이 지연되거나 불필요한 시험 평가를 받는 상황을 방지하기 위해 국가·품목별로 해외 인증 관련 통합정보 제공과 교육‧컨설팅을 지원하고 있다. 올해는 수출 기업에 대한 밀착 지원을 위해 '해외 인증 지원단'을 신설하기도 했다. 

국표원의 적극적인 표준 정책 추진으로 우리나라는 글로벌 표준 강국 반열로 올라서는 중이다. 2000년대만 해도 KS 표준을 국제 표준에 맞추는 데 급급했으나 이제는 연간 80여 종의 국제 표준을 제안하는 위치로 격상됐다. ISO는 이사회에 참여할 20개국을 선출하기 위해 분담금 규모나 현재 간사를 맡고 있는 기술위원회 개수 등을 종합해 국가별 순위를 발표하는데 올해 기준 우리나라는 124개국 중 8위를 차지했다. 

특히 지난해에는 우리나라 최초로 ISO 회장에 조성환 현대모비스 대표가 선출되는 등 국제 표준 시장 내 위상이 강화되는 추세다. 국표원도 최초의 한국인 ISO 회장을 지원할 '국제표준화기구전략대응팀'을 신설해 개도국 참여 확대와 혁신 속도에 맞춘 표준 보급 촉진 등 조 회장의 공약에 부응하는 방향으로 국제 표준화 정책·전략 실현을 도울 예정이다. 

진 원장은 "ISO는 표준 수 기준으로 세계 최대 국제 표준화 기구로 가장 넓은 분야의 표준을 다루고 있다"며 "우리나라가 국제 표준 관련 핵심 정책에 주도적으로 참여하면서 글로벌 리더십을 확보하는 기틀을 마련했다"고 평가했다. 
 

3월 16일 아주경제 본사에서 진종욱 국가기술표준원 원장이 인터뷰를 하고 있다.[사진=유대길 기자 dbeorlf123@ajunews.com]

 
"소비자 안전 강화, 불필요한 기업 부담 완화"

국민의 안전과 직결되는 전기용품, 생활용품, 어린이 제품의 안전 관리도 국표원의 주요 업무다. 제품 안전 업무는 제품이 시장에 출시되기 전 소비자 위해성 여부를 판단하고 확인해 KC 인증을 부여하는 사전 관리 활동과, 제품 출시 후 시장 조사를 통해 불법·불량 제품을 리콜하는 등의 사후 관리 활동으로 구분된다. 

진 원장은 "소비자 안전은 강화하면서 불필요한 기업 부담은 완화하는 방향으로 올해 제품 안전 정책을 이끌어 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제품을 시장에 출시하기 전에 적용하는 사전 관리 수준의 적절성은 면밀히 검토하되 소비자 안전과 관련성이 낮거나 다른 인증 제도와 중복되는 안전 기준은 과감하게 정비한다는 방침이다. 

특히 시장에 유통되는 제품의 사후 관리를 더욱 촘촘하게 실시하고 소비자 안전사고 발생 등 사회적 이슈를 일으킨 제품에 대해서는 사고 원인을 철저히 규명할 계획이다. 필요할 경우 리콜 추진 등 안전 조치도 적시에 실시한다. 

국표원은 혁신기술을 활용한 신제품의 시장 출시를 돕는 '규제샌드박스 제도'를 활용, 안전성을 확보한 신제품의 시장 출시도 적극 지원하기로 했다. 

진 원장은 "제품 안전과 관련한 규제샌드박스 실증특례의 활성화를 위해 신속한 예비안전기준 마련, 실증특례 시험 대기 기간 단축, 실증 종료에 맞춘 KC 안전기준 개정 등을 추진할 것"이라며 "필요 시 제품 성능과 안전성 개선을 위한 연구개발(R&D) 사업도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탄소중립 새 규제 떠올라…국제표준에 韓 의견 반영

EU 등 주요 선진국이 탄소중립 정책을 적극 추진 중인 가운데 관련된 환경 규제가 새로운 비관세 장벽으로 부상하는 중이다. 이에 국표원도 제품별 탄소 발자국(기업 등이 발생시키는 직간접적 온실가스 총량) 산정을 위한 국제 표준 개발에 나섰다. 지난해 4월에는 한국제품인정기구(KAS)를 한국인정기구(KOLAS)에 통합한 데 이어 올 1월부터 제품 탄소 발자국 검증기관 인정 제도를 도입해 탄소중립 녹색 성장과 글로벌 환경 규제에 대응해 나가고 있다. 

진 원장은 "탄소중립 규제 대응에 필요한 탄소 발자국 산정 방법 등은 향후 국제 표준을 기반으로 보다 구체화될 것으로 예상한다"며 "우리의 의견을 국제 표준에 반영하기 위해 주요 제품별 탄소 발자국 산정을 위한 기준 개발을 추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국표원은 국제 표준이 아직 명확하게 정립되지 않은 미래·유망산업 분야의 표준 제정을 선점하기 위한 노력도 병행하고 있다. 

ISO는 새로운 분야의 국제 표준 제정이 필요할 경우 표준화 평가 그룹을 신설해 전략과 로드맵을 수립하고, 회원국의 투표로 표준 제정 활동을 수행하는 기술위원회 신설을 결정한다. 이 과정에서 국표원은 표준화 평가 그룹 의장국과 신설되는 기술위원회의 간사국 수임을 추진 중이다. 국제 표준화 시장에서 목소리를 높이기 위한 행보다. 

진 원장은 "현재 양자기술과 메타버스에 대한 표준화 평가 그룹이 신설돼 양자기술은 우리나라가 의장을 맡고 있다"며 "향후 기술위원회 신설을 주도해 간사국 지위까지 꿰차 보겠다"고 포부를 드러냈다.


▲진종욱 원장은 

진종욱 원장은 부산 동아고와 연세대 화학공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컬럼비아대에서 국제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기술고시 29회로 공직에 입문해 산업통상자원부 에너지환경팀장과 지식경제부 기후변화정책팀장·디자인브랜드과장, 산업부 지역산업과장·기업협력과장·산업기술정책과장 등을 두루 역임했다.

이후 국가기술표준원 적합성정책국장, 주중국 한국대사관 공사참사관, 산업부 경제자유구역기획단장 등을 거친 뒤 지난 2월 국가기술표준원 원장으로 취임했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컴패션_PC
0개의 댓글
0 / 300

로그인 후 댓글작성이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닫기

댓글을 삭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이미 참여하셨습니다.

닫기

이미 신고 접수한 게시물입니다.

닫기
신고사유
0 / 100
닫기

신고접수가 완료되었습니다. 담당자가 확인후 신속히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닫기

차단해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사용자 차단 시 현재 사용자의 게시물을 보실 수 없습니다.

닫기
실시간 인기
기사 이미지 확대 보기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