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전기차 '옥석 가리기' 심화에…지역 경제까지 휘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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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원 기자
입력 2023-06-07 1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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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링훙광 미니EV [사진=웨이보]

중국 전기차 시장 경쟁이 과열되면서 현지 전기차 기업들이 줄줄이 문을 닫고 있다. 이는 지역 경제에까지 심대한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펑파이·매일경제신문 등 현지 매체에 따르면 지난달 10일 레이딩자동차가 파산을 신청했다. 한때 홍콩 출신 글로벌 스타 유덕화와 중화권 톱스타 황효명을 광고모델로 기용할 정도로 잘나가던 중국 전기차 브랜드였다. 이제는 석 달에 한 대도 겨우 판매하는 신세로 전락해 계약 분쟁, 채무불이행 소송 등에 시달리다 결국 폐업을 선언했다. 최근 임금 체납 문제로 중국 내에서 이슈가 됐던 아이츠자동차 역시 사실상 폐업 수순을 밟고 있다. 보름 사이에 전기차 업체 두 곳이 증발한 것이다.

천스화 중국자동차공업협회 부비서장은 지난달 “현재 중국 자동차 산업이 직면한 문제는 장기적 흐름의 결과”라며 “향후 중국 내 자동차 기업들은 월드컵 토너먼트 같은 양상을 보이며 100곳에서 10곳으로 줄어들 것”이라고 전망했다.

사실 중국 자동차 산업의 ‘옥석 가리기’는 이미 지난 몇 년 동안 지속되어 왔다. 2018년 중국 자동차 기업은 478곳에 달했다. 당시 월스트리트저널이 중국의 자동차 기업 수를 놓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고 표현했을 정도였다. 그러나 올해 1분기 기준, 신에너지차와 내연기관차 기업을 모두 포함해 생산능력을 유지할 수 있는 업체는 100여 곳밖에 되지 않는다. 불과 5년 만에 300곳 이상이 사라지거나 중국 시장에서 철수했다.
 
쓸쓸한 퇴장
레이딩자동차는 2008년 저속전기차 업체로 출범한 후 10년 동안 성장 가도를 달렸다. 하지만 2018년 중국 정부의 저속전기차 규제로 사업이 어려워졌고 레이딩자동차는 이듬해 전기차 기업 예마자동차를 인수하며 순수전기차 생산에 돌입했다. 2021년 출시한 경형 순수전기차 모델 '망궈'는 연간 판매량 3만대 이상도 기록했다.

하지만 순수전기차로 사업을 전환하면서 견고한 기술적 기반을 마련하지 못했고 코로나 봉쇄, 원자재 가격 인상 등 문제가 중첩되면서 자금난에 처하게 됐다.

푸창 아이츠자동차 창업자는 볼보 차이나 회장 겸 최고경영자(CEO) 출신으로 업계 주목을 한 몸에 받으며 등장했다. 2019년 말 첫 번째 전기차 모델 ‘U5’를 출시함과 동시에 글로벌시장 공략에 나섰다. 이후 유럽에 진출, 독일·프랑스·네덜란드·벨기에·덴마크 등에 U5를 수출했다. 또 독일 뮌헨에 유럽 본사와 연구개발센터를 두기도 했다. 하지만 해외시장 공략이 실패로 돌아갔고 핵심 경영진을 물갈이하며 새롭게 투자도 유치했지만, 발전 동력을 확보하지 못해 중국 국내 시장에서도 힘을 쓰지 못했다.
 
성장 둔화에 ‘가격인하전’까지…경쟁력 없으면 도태
이들의 실패는 시장 성장 둔화 및 가격 경쟁 격화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라는 분석이다. 중국자동차공업협회 데이터에 따르면 올해 1~4월 중국의 자동차 판매량은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55만대 증가했다. 하지만 수출 판매량(65만대)을 제외하면 코로나19 발생 이전인 2019년은 물론 지난해에 비해서도 줄어든 것이다.

천스화 중국자동차공업협회 부비서장은 이에 대해 "국내 시장 수요는 여전히 약한 편"이라며 "공급 물량은 넘치는데 계약률이 이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에 더해 테슬라가 촉발한 가격 인하 경쟁으로 대부분 기업이 손해를 감수하며 차를 팔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올해부터 중국 당국이 전기차 생산업체를 대상으로 지급했던 보조금을 폐지했다. 원가 및 제품 경쟁력이 없는 기업들은 시장에서 도태될 수밖에 없는 환경이 되었다.

중국의 한 업계 전문가는 펑파이와의 인터뷰에서 “최소 40만~50만대는 팔아야 규모의 경제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데 신생기업들의 연간 판매량은 십만대 언저리”라며 “자금 수혈에 나서지 않으면 위기를 피할 수 없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옥석 가리기가 심화하면서 앞으로 더 많은 레이딩과 아이츠가 나올 예정이다. 주화룽 창안자동차 회장은 지난달 8일 열린 2022 창안자동차 실적발표회에서 "중국 자동차 시장의 옥석 가리기로 지난 3년간 문을 닫은 업체가 75곳에 달한다”며 “연초 시작된 가격 인하 러시가 전기차에서 내연기관차까지 확대된 만큼 하반기에도 치열한 경쟁이 이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전기차 성패에 따라 울고 웃는 지역들
레이딩자동차의 본사는 산둥성 웨이팡(濰坊)에 있다. 2021년 웨이팡의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9.7%로, 산둥성 내 1위에 올랐다. 중국 전국 도시 GDP 순위에서도 35위를 달성했다. 하지만 지난해 레이딩자동차의 입지가 흔들리면서 상황은 반전됐다.

웨이팡의 GDP 성장률은 3.7%로 고꾸라졌다. 성 평균(3.9%)마저 밑돌았다. 올해 1분기 GDP는 1613억3000만 위안(약 29조6200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8억5000만 위안 감소하며 마이너스 성장세를 보였다. 같은 기간 산업이익은 41.2%나 폭락했다.

웨이팡은 ‘산둥성의 다크호스’로 불릴 만큼 막강한 제조업 저력을 자랑했다. 웨이팡의 급격한 추락이 더 의아한 이유다. 제조업 규모에 있어 산둥성에서 선두를 달리는 지난·칭다오·옌타이 등 도시들을 가볍게 뛰어넘으며 2년 연속 산둥성 내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이처럼 튼튼한 제조업 기반이 있음에도 레이딩자동차 파산에 지역 경제가 직격타를 맞았다.

지역 산업의 관점에서 볼 때 자동차 제조는 업·다운스트림을 아우르는 거대한 밸류체인을 형성한다. 전자 제품의 경량성과 항공우주의 고부가가치성에 비해 완성차 공장은 운송비 부담이 큰 탓에 산업집적도가 높아야 유리하다. 기업 한곳이 무너질 경우 도시 내에 집적해 있는 수백 곳의 공급업체가 직간접적으로 타격을 입게 되는 구조다. 중국 전기차 업체들이 저가의 제품을 내놓을 수 있었던 비결 중 하나가 운송비를 낮춰 제조원가를 절감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인구 약 380만명의 중소도시인 광시성 류저우(柳州)는 한때 중국의 전기차 수도로 꼽혔다. 지난해 BYD, 테슬라 제품보다도 많이 팔린 ‘우링훙광 미니EV’(상하이GM우링)를 등에 업은 류저우는 중국 전국 신에너지차(BEV·HEV·FCEV) 생산량 3위를 달성하기도 했다. 우링훙광이 범국민적인 인기로 시장을 선점할 수 있었던 것은 브랜드 자체의 힘도 있지만 시 차원의 공세적인 지원 덕분이라는 시각이 우세하다. 충전 인프라 확충, 보조금 지원, 주차시설 확대 등 지방 정부가 전기차 산업을 키우기 위해 갖가지 부양책을 총동원한 결과다.

일례로 류저우는 전기차 충전소가 주유소보다 많다. 다른 도시에서는 1시간 충전을 위해 4시간 줄을 서야 하는데 류저우에서는 잠시도 기다릴 필요가 없다. 전기차 보급과 관련된 프로젝트라면 성공 여부에 관계없이 지방 정부에서 전폭적으로 자금을 투입했다. 류저우식 전기차 도입방식을 중국에서 ‘류저우 모델’이라고 일컫는다.

그러나 올해 들어서는 류저우 모델도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중국승용차시장정보연합회(CPCA)에 따르면 올해 1~4월 우링훙광 미니EV 판매량은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26.5% 감소했다. 이에 지난해부터 류저우의 산업 부가가치는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했다. 자동차 산업 총생산량 역시 0.3% 감소했다.

우링훙광의 부진은 여타 기업과 마찬가지로 전기차 시장 위축과 업계 경쟁 심화의 이유도 있지만 류저우 모델이 한계를 드러냈다는 평이다. BYD·지리·창안 등 선두 기업들이 합리적인 가격의 경형 전기차를 선보이면서 우링훙광이 경쟁력을 잃게 됐다.

관웨이룽 류저우 과학기술국 국장은 지난해 12월 신에너지차 산업체인 관련 브리핑에서 “류저우의 자동차 산업은 차제 내외장 부품, 경량화 등에서 강점이 있지만 에너지 시스템, 스마트 네트워크 등 신흥 분야에서는 기술과 인재가 상대적으로 부족하다”며 류저우 자동차 산업의 업그레이드 필요성에 대해 언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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